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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열풍 진원지 … 삶의 이치에 빠져 수업 끝나도 토론 삼매경

1 수업이 시작되기 전 수강생들이 한옥 마당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승종 네무스텍 대표, 임정아 성공회대 인문학습원 부원장, 나기철 솔루덴스 대표, 조봉한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심실 uni-pro 회장, 신영복 성공회대 인문학습원장, 박종식 경동제약 고문.
돌건물을 지나 옛날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즈넉한 한옥 마당이 나온다. 문득 차들의 소음조차 유리벽으로 막아버린 듯 조용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안온하고 경건한 공간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이곳은 부산해진다. 주요 기업체 CEO, 교수, 변호사들이 문사철(역사·문학·철학)에 예술까지 공부하기 위해 모이는‘야학’이 되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인문학습원(원장 신영복)이 주도하는 ‘CEO와 함께하는 인문공부’ 과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거세게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이 발화된 곳이 바로 여기다.특이한 점은 화요일 과정의 명칭은 ‘심화반’이라는 점. 이미 일반 과정을 마친 사람들이 “너무아쉽다. 더 공부하고 싶다”고 요구해 만들어졌다.

현장!-매주 화요일 열리는 성공회대 ‘CEO와 함께하는 인문공부’ 심화과정 가보니

매주 강사와 주제가 바뀌는 일반 과정과 달리 심화반은 한 강사가 3주간 강의한다. 총 석 달 과정이다.지난해 9월 시작된 심화1기에서는 철학과 사상을 다뤘다. 신영복 원장이 ‘주역과 유가학파’‘노자와 장자’ ‘묵가와 법가’를 직접 강의했다. 이어 ‘한국의 철학 사상’(김교빈 호서대 문화기획학과 교수), ‘근현대의 사유와 탈근대의 모색’(김재희 대진대 연구교수), ‘한국의 문화와 예술’(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이어졌다. 올 3월 시작된 2기에서는 ‘미술로 보는 서양 근현대’(미술평론가 이주헌), ‘근현대 과학사상의 이해’(과학평론가 주일우), ‘우리 옛 문화의 새로운 이해’(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클래식, 서양 근현대사의 거대한 벽화’(문화평론가 정윤수) 등 예술과 과학을 공부했다. 지난 9월 시작된 3기의 테마는 역사다. 고전번역가 남경태씨가 ‘동서 제국의 생성과 차이’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겸재 정선
과 관아재 조영석’ 등을, 문학평론가 임헌영씨가‘일제 치하 문학의 전개과정’ 등을, 그리고 지난 16일부터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이 ‘조선의 개국과 유교 정치’ 등에 대해 열강하고 있다.

2 수업받는 모습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꼽는 것은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은 “웬만한 ‘최고경영자 과정’이라면 수업 후 인맥 쌓기용 ‘3교시’가 시작되지만 이곳에서는 골프나 술약속 같은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수업 분위기가 그렇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며 여러 가지를 얻는다.“뭘 새삼 배우러 오진 않는다. 대신 생각의 단초를찾아낸다”(박진선 샘표식품 사장)거나 “세상이치를 하나씩 깨닫는 재미가 쏠쏠하다”(심실 유니프로 회장)거나 “사람들 생각의 뿌리가 인문학이다. 뿌리를 알면 생각에 어떻게 어프로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디자인도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고 말하기도 한다.보다 실질적인 아이디어를 챙기기도 한다. 목욕탕 용품 전문업체인 세비앙의 류인식 대표는“박연폭포를 보면서 샤워기를 저렇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욕실의 개념은 여전히 서양 아파트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조상은 냇가나 우물가에서 목욕을 해오지 않았나.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타운하우스 같은 곳이라면 전혀 새로운 개념의 욕실을 선보이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박종식 전 경동제약 대표이사도 인문과정에 푹 빠진 사람 중 하나다. 일반 2기 과정을 공부하다가 아예 지난해 가을부터는 고문으로 물러앉고 대신 성공회대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동안 먹고사느라 바빴는데 인문과정을 듣다 보니 공부가 더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해져 다시 학생이 됐다”고 했다.

이들은 이날 역사학자 이덕일 선생과 함께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릴 적 국사 책에서 배운 한사군이과연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그것이 어디에 있었다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등에 대해 수업이 끝나도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신영복 원장은 이 강좌에 대해 수강생들이 보내는 신뢰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미셸 푸코의말을 빌려 말했다. “철학은 망치로 한다.” 갇혀 있는 우리의 경직된 사고를 깨뜨려야 하고 그 역할을 지금 인문학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신 원장은 “지금 왜 인문학이 인기일까. 외국에서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가 함께 발달했지만 우리는 압축성장 덕분에 뒤처진 분야가 생겼다. 경제적으로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1960~70년대가 블루칼라 시대, 80~90년대가 화이트칼라 시대, 2000년대가 CEO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골드칼라 시대였다면, 이제 2010년을 필두로 한 새천년의 새로운 10년은 휴먼칼라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사회 주요 포스트에 있는 리더들이 문사철을 공부함으로써 소통의 능력이생기면 그게 바로 사회적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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