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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어렵다고 좋은 것 아니다 … 그린 근처서 생각 많이하도록 만들었다”





‘한국 최고의 코스 디자이너’ 송호 대표에게 듣는 골프장 설계



충북 음성의 진양밸리 골프장에서 자신의 코스 디자인 철학을 설명하고 있는 골프 설계가 송호 씨. 비전힐스, 프리스틴 밸리, 남촌, 크리스탈 밸리 등을 설계한 송 씨는 “아름답고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며 다시 보고 싶은 골프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음성=김상선 기자]







“찢어진 롱스커트 홀입니다.”



지난 15일 충북 음성의 진양밸리 골프장 크리크 코스 7번 홀.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선 송호 골프디자인그룹 송호(53)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설계한 이 홀은 왼쪽 언덕이 페어웨이를 3분의 2쯤 가리고 있다. 페어웨이가 보일 듯 말 듯한 이 홀은 치마에 트임이 있는 섹시한 중국의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닮은 듯도 했다.



골프(GOLF)는 Gentlemen Only Ladies Forbidden(남성 전용, 여성 금지)의 약자라는 말이 있다. 남성 중심 사상을 가진 마초들의 우스갯소리다. 골프는 남자들이 만든 게임이며, 코스는 정복해야 할 여성으로 비유되곤 한다. 섹슈얼리티는 골프의 주요한 요소다. 한국 최고의 코스 디자이너로 꼽히는 송호 대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코스는 여자다. 골프는 여자를 만나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코스는 아름다워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 하는 동시에 다시 보고 싶어야 한다. 코스가 아름다운 것은 레이 아웃과 마무리 작업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매끄러운 여인의 몸매를 보듯 코스의 선이 아름다운 골프장이 재미있다.



청순함·귀여움·이지적 아름다움·섹시함 등 남성이 좋아하는 스타일도 다양하듯 코스도 개성이 있다. 코스의 마무리는 여성의 멋진 옷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같은 것이다. 그러나 외모만으론 오래 못 간다. 예뻐도 금방 질리는 여성은 몇 번 만나고 말게 된다. 때론 냉정하게 튕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따뜻해야 매력적이다. 코스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홀과 쉬운 홀이 리듬감 있게 어울려야 한다. 오래 만날수록 새로운 매력이 나타나는 깊이 있고 현명한 여성이 있다. 그런 사람과 결혼해야 3대가 편하다. 그동안 몰랐던 매력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코스가 좋다. 매력과 감동, 애절함을 주는 코스가 최고의 코스라고 생각한다.”









송호 대표



대한민국 골프 설계의 역사는 짧다. 1942년 일본 오픈에서 우승한 한국 최초의 프로 고 연덕춘씨가 60년대 초반 서울 한양골프장을 설계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골프 설계 1세대는 1980년대에 나타난 장정원·임상하·김명길씨 등이다. 장정원씨는 육군 측지담당 장교로 근무하다가 태릉CC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받고 골프 설계를 시작한 경우다. 김명길씨도 군에서 공군 골프장을 만들면서 코스 설계에 뛰어들었다. 송 대표는 공군에서 김명길씨 밑에서 장교로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매우 깐깐한 선배였는데 어느 날 그가 ‘토목과를 나왔으니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창의력이 필요하며 남들이 안 해본 길을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만든 골프장은 송추CC다. 송씨는 “어려서 뭘 모르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아직도 송추CC는 코스가 예쁘고 아기자기해 매니어가 많다. 송씨는 “재능이 약간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미술 선생님이셨고, 나도 그림을 그리는 것을 즐긴다. 어릴 때부터 수학보다는 그림이 더 좋았고 그래서 지금도 계산이 서툴다”고 했다. 화가들은 화풍이 바뀐다. 송 대표도 그렇다. 40대에 만든 그의 작품은 비전힐스, 프리스틴 밸리, 남촌, 크리스탈 밸리 등이다. “패기가 넘치던 때라 변별력이 있고, 어려운 골프장을 만들려고 했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모험에 대한 보상과 응징이 철저했다. 그러나 50대가 되니 부드럽고 편한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요즘 생각은 이렇다. “어려운 코스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어려워 봐야 프로만 재미있는 골프장이 된다. 돈 내는 사람은 아마추어다.”



그래서 그가 요즘 설계하는 코스는 페어웨이가 넓은 편이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아마추어 골퍼가 벌벌 떨게 하는 코스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린 적중률이 떨어지는 아마추어를 위해 그린도 크게 만든다. 대신 그린엔 굴곡을 넣어서 독립적인 여러 개의 섹터로 나뉘도록 한다. 그 굴곡 때문에 핀 근처에 공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버디를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송호가 만든 코스에선 그린 근처에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송 대표는 “골프는 스윙 기술 테스트가 아니다. 상상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롱 샷엔 상상력이 없다. 3차원의 굴곡진 땅에서 상상력이 나온다”고 했다. 퍼터는 한 홀에 평균 두 번씩 잡는 가장 많이 쓰는 클럽이며 그래서 그린은 골프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송 대표는 “젊을 땐 삼합이란 음식의 그 진한 맛, 끝맛을 몰랐다. 그린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은 묵은 김치나 청국장처럼 진하고 깊다”고 했다.



그는 골프 설계 부문에선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다. 설계 역사가 짧은 한국에 그런 길도 없었다. 그러나 세인트포·이스트밸리·남촌 등 그가 만든 코스는 모두 수준급이란 평가를 듣는다. 일부는 국내 최고로 꼽힌다. 특별한 백그라운드도 없는 그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을까. 그는 “내가 만든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니다. 스펀지가 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년에 2~3차례 해외에 나가 명 코스를 돌아본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의 미학, 피트 다이의 전략, 톰 파지오의 편안함을 계속 배우고 공부한다. 특히 스코틀랜드에 갈 때 강한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엔 자연이라는 신이 만든 코스가 많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도 그렇지만 역시 오래된 링크스인 프레스트윅과 노스버윅에서 매우 깊은 영감을 받았다. 신에게 감사하고 신이 만든 땅에 홀들을 살짝 얹어 넣는다는 겸손함을 갖게 한다”고 했다. 그는 BA비스타 골프장이 보이는 중부 고속도로를 지나갈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27홀이 들어갈 크기의 땅에 내가 산을 오밀조밀 깎아 36홀을 설계했는데 그 산을 볼 때마다 속이 뜨끔뜨끔해요.”



그동안 설계는 골프장 오너와의 투쟁이었다. 멋지게 설계해 놨는데 골프장 주인이 바꾸라고 하는 바람에 그의 그림은 본질을 잃고 찢기고 봉합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다. “C급이 A급을 고치는 수난은 안 겪어 본 사람은 잘 모를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작품을 B 이상으로 맞추려 노력했고,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제 업계에서 “송호가 하면 잘한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에 오너의 기에 눌리지 않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그의 작품이 나올 듯싶다. 그는 현재 거제도에 골프장 설계를 하고 있는데 이게 괜찮은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골프장을 만드는 것은 문화유산을 만드는 것과 같다. 올드 코스는 골프 성지 순례자들로 붐비고, 페블비치는 호텔 1박을 포함해 800달러 정도를 줘야 라운드할 수 있다. 오래 전에 만든 이 코스들로 인해 두 나라가 큰 돈을 벌고, 국가 브랜드 가치도 올라갔다. 한국에도 이런 코스가 필요하다. 미국인 설계자는 한국에서 돈을 받고 만들어주고 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에 길이 남을 코스를 만들고 싶다. 골프는 시간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것이다. 골프의 매너와 에티켓, 정신이 널리 퍼져 공정한 사회가 될 기반도 된다. 내가 아는 것은 남자의 명예밖에 없다.”



음성=성호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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