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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옷’ 찾아입은 한석규 … 오랜 슬럼프 벗어나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한석규(46)가 돌아왔다. 1990년대 중·후반 ‘닥터봉’ ‘초록물고기’ ‘넘버3’ ‘은행나무 침대’ ‘쉬리’ 등 숱한 화제작으로 한국영화 중흥기의 한복판에 서 있던 배우가.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몇 번의 흥행실패가 이어지면서 아쉬움 속에 묻히는 듯 했던 배우가. 25일 개봉하는 손재곤 감독의 서스펜스 코미디 ‘이층의 악당’에서 그는 대한민국 대표 연기파 배우의 건재함을 알린다.



서스펜스 코미디 ‘이층의 악당’ 문화재 사기꾼 역

데뷔 작의 상대 김혜수와 재회



표정 눈빛 하나하나, 호흡 척척










1990년대 흥행 보증수표로 불렸던 한석규. ‘닥터봉’ 이후 김혜수와 15년 만에 재회한 영화 ‘이층의 악당’은 한때 한국영화 최고 배우로 불리던 그의 매력을 확인시켜준다. [오종택 기자]



그가 맡은 역은 문화재 사기꾼 창인. 딸을 홀로 키우는 골동품가게 주인 연주(김혜수)의 집에 세입자로 위장해 들어간다. 20억원 상당의 국보급 도자기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한정된 공간(이층양옥)과 제한된 시간(며칠), 스톱워치를 누른 것처럼 긴박감이 깔리는 가운데 터지는 웃음이 그만이다. 표정 하나, 눈빛 하나, 욕설 한마디까지 두 배우의 호흡은 딱딱 맞아떨어진다. 온도와 습도를 딱 맞췄을 때 만개하는 화분을 보는 느낌이랄까.



 “15년간 18편을 했어요. 마음 같아선 잠시도 쉬지 않고 하고 싶었어요. 40대가 남자로서, 배우로서 얼마나 무르익은 나이인가요. 완성도 높은 장르영화, 딱 반 발자국 정도 흐름을 앞서가면서도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그런 영화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요. 그런데 꼭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찾아오지 않더군요.”



 그는 ‘이층의 악당’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참 진폭이 넓은 코미디”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천방지축 물정 모르고 까부는 창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이 다 조금씩 슬픈 구석을 가진 게 참 좋았어요. 남편이 갑자기 죽고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40대 주부, 어렸을 때와 너무 달라진 외모 때문에 왕따 당하는 사춘기 소녀, 그들의 감정에 점차 감염되는 남자…. 그들에게 깔린 쓸쓸함을 점점 꼬여가는 상황과 함께 웃음으로 풀어내죠.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의 빌리 와일더 감독 작품 같은 느낌? 한국영화로 치면 ‘반칙왕’ 같은 진지함과 웃음이 공존하는 코미디죠.”



 ‘이층의 악당’이 더 각별한 건 15년 전 스크린 데뷔작 ‘닥터봉’의 상대 김혜수와 재회해서다. “언제부터인가 혜수를 관객으로서 정말 좋아하게 됐어요. 대한민국에서 여배우가 주연으로 25년을 버틴다는 사실, 얼마나 대단한가요. 혜수는 연기에 대해 정말 가혹하고 엄격해요. 머무르려 하지 않고 자신을 깨부수기 위해 늘 도전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15년 전 통통 튀는 젊음으로 신선했던 두 사람은 이젠 한껏 무르익은 모습으로 조화를 과시한다.



 “나만 생각하던 시절이 저도 있었죠. 지금은 상대의 액션을 어떤 리액션으로 받아줄까에 집중해요. 혜수가 나한테 주는 액션을 가장 좋은 리액션으로 받아주는 게 곧 나의 액션이죠. 특히 코미디는 서로의 액션과 리액션을 조절하면서 가지 않으면 금세 오버하게 돼요. 혜수도 이심전심 아니었을까요? 다음엔 ‘화양연화’ 같은 아름다운 멜로영화에서 같이 만났으면 하는 욕심도 나네요.”(웃음)



 그는 한동안의 부진에 대해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다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제가 잘 할 수 없는 건데도 욕심을 낸 적이 있었죠. 지금의 제 목표는 어울리지 않는 변신보다는 괜찮은 변주를 하는 거에요.” 그는 “가끔 내가 똑같은 걸 반복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스스로 낯이 화끈거릴 때가 있다”고도 말했다. 후배들에게 가끔 한다는 얘기는 스스로를 향한 듯 했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라고 해요. 배가 불러 자만하는 순간 슬럼프가 온다고요. 연기를 계속 하는 이유도 결국 이번에 부족한 부분을 다음에 채우기 위해서죠.” 한때 모든 걸 다 가진 듯 했던 ‘풍요’의 배우가, 이제 ‘결핍’을 얘기한다. 한석규가 정말 돌아왔나 보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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