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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기본’을 다시 생각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지난 주말 고양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아람극장에서 ‘마린스키 발레’를 만났다. ‘백조의 호수’였다. 볼쇼이 발레단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마린스키 발레단의 역사는 무려 227년. 안나 파블로바, 바츨라프 니진스키, 루돌프 누레예프 같은 전설적인 무용수들이 마린스키에서 태어났다. 모든 게 서울 중심인 우리나라에서 일개 지방 문화재단이 대단한 기획공연을 성사시킨 셈이다. 그것도 중개업자에 의존하지 않고 러시아 측과 직접 접촉해 유치에 성공했다니 칭찬받을 만하다.



 ‘기본기의 힘’과 ‘정통(正統)의 아우라’를 느꼈다. 발레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내 눈을 믿지 못해 함께 공연을 본 매니어에게 물었더니 아무 말 않고 엄지손가락부터 치켜들었다. 발레는 한국에서 관객층이 매우 얇다. 그나마 유명세가 있는 ‘백조의 호수’가 거의 먹여 살린다는 말까지 있다. 백조를 ‘남성 백조’로 새롭게 해석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가 최근 2, 3년씩 사이를 두고 네 번이나 내한공연을 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것도 기본적으로 원작의 유명세 덕분이었다. 역시 원작은 원작이요, 정통은 정통이다. 마린스키는 ‘원전(原典) 백조의 호수’를 통해 오랜 세월 닦인 기본기와 탄탄한 기초의 위력을 과시했다.



 닷새간 ‘지젤’ ‘백조의 호수’와 갈라로 꾸며진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은 이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동양인 단원인 유지연(34)씨의 고별무대이기도 했다. 한국 발레계에서 유씨의 기량은 쉽게 표현하자면 축구의 박지성, 수영의 박태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수준이다. 중학교 3학년 때인 1991년 러시아 발레 교사의 눈에 띄어 마린스키 극장 부설 발레 학교인 바가노바 아카데미에 유학을 갔다. 95년 전과목 만점으로 수석 졸업하고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했다. 지난해엔 수석 캐릭터 무용수로 승진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안나 파블로바의 전설이 서린 ‘빈사(瀕死)의 백조’를 선보였다.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유학 시절 힘들 때 무엇으로 버텼나.



 “세계 최고의 발레단에 들어가겠다는 ‘꿈’으로 버텼다. 노력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도 필요했지만, 나에겐 꿈이 가장 큰 힘이었다.”



 -한국에서 배운 발레가 유학 가서도 통했나.



 “어릴 때부터 발레를 한 덕에 처음엔 어려운 테크닉을 내가 더 잘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그러나 기본기에선 다른 학생들보다 처졌다. 기본기가 떨어지니 쉽게 지치고 자주 다치곤 했다. 우리나라는 기교 중심이지만 러시아는 기본기가 우선이다. 그게 200년 이상 쌓인 지혜이고 힘인 것 같다.”



 유씨는 “마린스키에서 백조의 군무(群舞)를 추는 발레리나 한 사람 한 사람은 세계 어딜 가든 주역 무용수로 뛸 수 있는 기량을 갖고 있다”며 “그래서 세계 최고”라고 말했다.



 그렇다. ‘백조의 호수’의 공연 수준은 백조의 군무에서 갈린다. 나는 아쉽게도 마린스키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인 울라냐 로파트키나는 못 보고, 빅토리아 테레시키나가 주역으로 나선 토요일 공연을 관람했다. 그래도 다른 관중처럼 나도 그녀에게 압도됐다. 그녀를 받쳐 준 게 바로 세계 최고의 군무였다. 비유하자면, 주역 무용수와 다른 무용수의 관계가 보통의 발레단에서는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면, 마린스키에서는 군학일봉(群鶴一鳳)이 아닐까. 많은 닭 속의 학이 아닌, 수많은 학 속에 우뚝 선 봉황새 말이다. 군무가 발레의 격(格)을 결정한다.



 어디 발레뿐일까. 저변(底邊)이 받쳐줘야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간다. 그 수준은 ‘기본’과 ‘기초’를 얼마나 중시하느냐 여부에서 갈린다. 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 선수가 한국 수영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지만, 제2, 제3의 박태환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제2, 제3의 김연아도 마찬가지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리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박태환 같은 천재에게 목을 매는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본’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때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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