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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20~30대만 있나요 … 주름살 는다고 걱정할 필요 없어요”





한국 배우 최초로 해외영화제 평생공로상 받는 윤정희씨



이창동 감독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주름살”이라고 말했던 배우 윤정희씨의 모습. 윤씨는 16년 만의 컴백 작품 ‘시’로 원로배우의 저력을 과시했다. [김경빈 기자]



영화배우 윤정희(66)가 30일 개막하는 제34회 카이로 국제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받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1979년), 소피아 로렌(98년), 알랭 들롱, 카트린 드뇌브(99년)를 비롯한 지구촌 영화 스타들이 받았던 상이다. 해외영화제를 통틀어 한국배우가 평생공로상을 받는 건 처음이다. 윤씨는 이번 영화제 심사위원으로도 초청받았다. 한국영화와 한국배우의 파워를 실감케 하는 뉴스다.



 윤씨로서는 겹경사를 맞았다. 그는 지난달 열린 제47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영화 ‘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6년 만의 컴백이었는데 대종상 사상 최고령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됐다. ‘아저씨’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원빈은 무려 33살 아래. 윤씨가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분례기’(71년) ‘만무방’(94년)에 이어 세 번째다.



 12일 서울 한남동 일신문화재단에서 윤씨를 만났다. 남편이자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백건우(64)씨가 연습실로 쓰는 장소다. 얼마 전 오른쪽 손목뼈에 금이 가 깁스를 한 아내를 위해 남편은 손거울을 들어주고 차를 끓여줬다. 인터뷰를 진행한 2시간 30분 내내 옆방에선 혼자 듣기 아까운 피아노 선율이 들려왔다.



 “몬트리올·도빌 등 해외영화제 심사를 여러 차례 하긴 했지만, 카이로 영화제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어요. 조직위원회로부터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죠. 듣던 대로 칸 영화제의 위력이 대단하구나 싶더군요. 한국 영화가 이렇게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도 실감하고요.”



 이창동 감독의 ‘시’는 5월 제63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을 때,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특히 시 쓰는 할머니 미자 역의 윤정희에 대해서는 르몽드를 비롯한 프랑스 언론들이 앞다퉈 호평을 했다. 8월 ‘시’가 프랑스에서 개봉됐을 때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유력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실린 ‘시’에 대한 기사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솔트’의 할리우드 톱스타 앤젤리나 졸리를 언급하며 시작될 정도였다. 이 잡지는 ‘앤젤리나 졸리는 잊어라. 진정한 히로인은 윤정희다. 칸에서 윤정희가 받았어야 할 여우주연상을 쥘리에트 비노슈가 훔쳐갔다’고 평했다.



 “보는 사람마다 ‘아깝게 됐다’며 안타까워해주니 아쉬움보단 기쁨이 훨씬 크더군요. 제가 비노슈였다면 좀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상은 자기가 탔는데 다른 배우가 이렇게 칭찬을 받으니 말이에요.”



 윤씨는 67년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에 1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데렐라처럼 등장했다. 7년간 280여 편에 출연하면서 여우주연상만 20회 넘게 받는 등 연기력과 스타성을 인정받았다. 76년 결혼 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면서 활동이 뜸해졌다. ‘시’는 그를 동시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게 해준 ‘부활’의 작품이었다.



 “10월 부산영화제 갔을 때 길거리에서 중고생들이 날 보더니 ‘‘시’에 나오는 선생님!’하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사인을 부탁하는 거에요. ‘시’가 아니었다면 제가 아무리 왕년의 스타였더라도 요즘 관객들이 어찌 저를 알겠어요. 관객들이 ‘배우 윤정희’를 새롭게 발견한 거죠. 그게 제가 ‘시’로 얻은 가장 큰 자산이고 기쁨이에요. 나이가 더 들어서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어요.”



 그는 16년 동안 “초조함보다 즐거운 마음을 갖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내 나이에 맞는 작품이 언젠가 꼭 찾아올 거라고 믿었어요. 그레타 가르보처럼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만 보여주고 은둔하는 여배우의 마음, 저도 이해해요. 그런데 영화는 삶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삶에 20대, 30대만 있나요. 80대, 90대 넘어서도 표현할 수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주제가 분명 있을 거에요.”



 후배들에게도 한마디 해달라고 청했다. “제가 청룡영화제 심사위원을 오랜 기간 했어요. 해마다 여배우들이 바뀌더군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니 왜 초조하지 않겠어요. 한국은 젊음에 대한 강박감이 너무 심해요. 여배우들, 주름살 는다고 절대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이에 걸맞은 좋은 작품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커리어를 아끼세요. 불안하면 절 찾아오세요. 제가 한 잔 살게요.”



 신·구의 갈등이 아직 가시지 않은 한국 영화계에 대해서도 원로로서 그는 안타까움을 비쳤다.



“한국영화사는 60, 70년대가 황금기였어요. 신상옥·유현목·김수용·이성구·강대진 감독, 배우 김승호·황정순·복혜숙 등 대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후배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카이로 영화제에서 왜 윤정희한테 평생공로상을 주겠어요. 어려운 시대, 많은 작품을 했고 지금까지 현역으로 있는 그 역사를 인정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후배가 우릴 인정 안 해준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어요. 부산영화제에서 신영균·신성일·남궁원 이런 분들 만났을 때 제가 그랬어요. ‘우리가 먼저 후배들을 안아줍시다’라고요. 우리가 먼저 밥 먹자고 하고, 먼저 안아주는데 마다할 후배가 어디 있겠어요.”



글=기선민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카이로 국제영화제=1976년 시작됐다. 중동권에서 가장 큰 규모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칸·베를린·베니스영화제와 더불어 세계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인정하는 11개 경쟁영화제에 속한다. 2000년 장문일 감독이 ‘행복한 장의사’로 신인감독상을 받았으며, 2003년 한국영화특별전이 마련되기도 했다.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이집트 출신 배우 오마 샤리프(78)가 명예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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