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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ssue&] 건축가 설 자리는 없는 ‘디자인 한국’







정영균
희림건축 사장




서울 남산공원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식에서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건축가가 홀대받았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개관식에서 자리도 제대로 잡지 못한 건축가가 결국 행사 도중에 자리를 떴다는 소식이었다. 국내 건축가들은 “건축가들이 푸대접받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입을 열었다. 건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도를 나타내는 사례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국내에서 건축 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낮다. 건축주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보는 건축 디자이너들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전국에 수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있지만 누가 디자인했고, 그 건축물에 어떤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이러니 기공식이나 준공식 같은 공식 행사에서도 건축가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실력이 떨어져서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요즘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건축가들은 맹활약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쟁쟁한 업체들을 제치고 유명 호텔이나 최고급 건축물의 설계와 디자인을 맡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세계의 자본이 몰리는 중동·중앙아시아뿐 아니라 옛 소련 지역의 석유 강국,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의 국제 공모전에 한국 건축가들이 잇따라 당선해 많은 프로젝트를 따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들어서는 크레센트 호텔 등 난이도 높은 건축물뿐 아니라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주요국의 신도시 설계도 수주했다.



 한국 건축가들이 기술력과 심미안을 세계에 전하고 감동을 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상을 갖춘 것은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건설사와 건축업계의 세계 진출이 활발해졌고 그에 따라 설계·디자인 능력을 많이 축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필자도 해외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다. 1년여 전 베트남 외교부 청사 착공식에 초청받았을 때도 베트남 정부는 필자를 3명의 연사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다시 얘기를 국내로 돌려 보자. 국내 건축 디자인에 대한 낮은 인식은 불합리한 설계비 계약 관행에서도 나타난다.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현상 설계를 예로 들어 본다. 공공기관은 건축설계안을 뽑을 때 공고 금액을 내걸고 디자인 경쟁을 통해 업체를 선정한다. 그런데 디자인 경쟁을 통해 체결하는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을 뽑은 뒤에는 공고 금액과 관계없이 설계비를 크게 깎는다. 현행 국가계약법(약칭)의 계약 방법이 가장 싸게 사도록 하는 물품구매 방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수 작품을 뽑고도 비용은 적게 치르려는 의도로는 좋은 건축 디자인을 기대할 수 없다.



 현 정부는 ‘창의적인 디자인 강국’을 국정 과제로 내세우며 우리 건축 디자인 산업의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디자인을 경제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다. 그렇다면 건축 디자인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창의적인 디자인 강국’은 치적용 프로젝트의 도구로만 존재하는가. 건축 디자인은 건설산업에 종속된 용역서비스도 아니고 폼을 낼 때만 적당히 내세우는 전시용도 아니다. 국내 건축 디자인 산업은 반드시 재정립돼야 한다. 국가의 품격과 경쟁력을 높이는, 당당하게 평가받아야 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 대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매년 가장 우수한 건축적 성과를 보인 건축가를 선정해 시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상을 받은 32명 중 일본 건축가는 4명이나 된다. 우리는 아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성과나 실력이 뒤져서라기보다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건축 디자인에 대한 낮은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축 디자인의 가치에 대한 인식 변화로 가까운 장래에는 한국에서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영균 희림건축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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