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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을 향한 발돋움, 전통공예의 업그레이드

1 승지민 작가가 도자상회기법으로 달항아리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8일 오후 시청 앞 서울광장.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커다란 달항아리를 끌어안고 그림을 그린다. 백합꽃도 그리고 대나무도 그린다. ‘도자상회기법’이다. 유약을 입힌 백자 위에 색색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가마에 다시 구우면, 백자는 색감이 바래지 않는 옷을 입는다. 그런데 달항아리에 그려진 그림들이 썩 전통적이지는 않다. 유화기법으로 그려진 꽃과 나무는 그럼에도 전통의 멋 달항아리와 묘하게 어울리며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G20 성공기원 C&C20 전통공예문화대전, 서울광장 8~13일

G20 정상회의의 성공을 기원하는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지식경제부가 주최하고 ㈔한국전통공예산업진흥협회가 주관한 C&C20 전통공예문화대전이 8일부터 13일까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지난 1월 청와대 사랑채 개관과 함께 도자·옻칠·나전 등 우리 전통공예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30개 분야의 공예작가를 중심으로 김치와 다도, 고전머리와 한복 분야의 장인까지 가세해 전통문화의 제조과정을 공개한 자리다. 한국인의 풀뿌리 의식주 문화를 지탱해 온 전통 공예상품의 맛과 멋을 내·외국인에게 소개하고 그 산업화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었다.

사우스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미국인 프레드는 도자상회기법으로 장식된 달항아리가 탐나는 듯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G20을 기념하여 열리는 비상업적 행사이니만큼 공식적으로 금전거래가 금지되어 판매할 수 없다”는 말에 실망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가 못내 아쉬운 듯 다시 찾아와 “나중에라도 꼭 사고 싶다”며 명함을 챙긴다.

2 박공예로 만든 장식품.3 완초공예로 만든 조명기구.
“문화를 팔자.” 이번 행사를 위해 서울광장에 모인 공예가들의 공통목표다. 2010년은 전통공예인들에게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우리 문화를 진흥시키고 해외에 알리려는 노력이야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지만 영상이나 공연, 미술, 소리, 춤 등에 치중돼 왔던 것이 사실. 정작 모든 문화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에 관련된 전통공예 분야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소외돼 왔고, 자연 전통 공예인들은 사기 저하는 물론 생계조차 위협받으며 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침체된 분위기를 전환시키게 된 계기가 바로 올해 시작된 청와대 사랑채 시연이다. 2010년 1월 4일 사랑채 개관을 앞두고 청와대 홍보기획실이 사랑채를 선조들의 의식주가 집약된 전통공예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기획하면서부터다. 1월 5일 중요무형문화재 3명의 동시 시연을 필두로 각 시·도 무형문화재와 각 분야 장인들이 매일 교체 시연행사를 하고 있다. 관람객 출구조사 결과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물론 공예인들의 사기 진작과 저변 확대에도 한몫하게 됐다. 이런 추세를 살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G20 정상회의에 맞춰 전통 공예문화를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산업화의 초석을 다지고자 기획한 것이 이번 행사다. G20 기간 중 유일하게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받은 민간행사다.

지금까지 공예는 공예일 뿐, 공예를 산업으로 보는 시각은 부족했다. 최근 한식을 통해 한국을 알린다며 국가정책으로 ‘한식세계화’를 외치지만, 김치와 막걸리를 수출하면서도 음식을 담는 그릇, 잔, 병, 상, 보를 만드는 도자공예, 규방공예의 중요성에 대해 정책입안자들의 인식은 아직 떨어진다는 것이 한국전통공예산업진흥협회 하종철 회장의 주장이다.

“막걸리가 일본에서 인기라지만 양은 주전자에 담아 팔면 1000엔 이상 못 받습니다. 일본의 정종도 술맛보다는 도쿠리가 더 인기인 것처럼, 막걸리 병과 잔을 개발해서 차별화시키면 세계 시장에 고급화 전략으로 승부할 수 있거든요. 음식만 수출할 게 아니라 동시에 문화도 수출해야 고급시장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TV드라마의 한류 열풍에 이어 음식에서도 한류가 대두하는 이때가 바로 전통공예가 함께 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과 정책입안자들의 공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통 공예문화가 비즈니스로 연결되기 위해선 디자인과 실용성, 대량 생산 등의 면에서 개선돼야 할 부분도 많다.

그런 점에서 이번 행사에서 두드러진 분야는 박공예와 완초공예, 도자상회기법과 녹청자 등을 꼽을 수 있다. “양반들이야 도자기를 썼지만 박이야말로 서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소재였어요. 그런데 소재특성상 씻으면 반드시 말려 써야 하는 단점 때문에 현대인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그릇 안쪽에 옻칠을 해서 커피잔도 만들고 주전자도 만들어 얼마든지 씻고 말리지 않아도 쓸 수 있도록 해결했죠.” 박공예가 강은수씨의 말이다. 또 흔히 볼 수 있는 조롱박이나 표주박 외에도 뱀처럼 꼬인 모양 등 특이한 모양의 박에 인두로 그림을 그린 각종 장식품들이 전통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멋을 풍겼다. 외국의 박과 접붙여 품종을 개량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박을 생산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자기의 오랜 장식기법인 하회기법은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백자 자체가 소박한 것이 되어 버렸죠. 하지만 민화나 단청, 궁중복식에서 볼 수 있듯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색감을 지닌 민족이에요. 상회기법은 중국이나 일본, 유럽에서 발전한 기법이지만 우리의 전통백자에 적용함으로써 전통을 현대화할 수 있고, 오히려 한국의 정서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어요.” 유럽자기나 일본의 이마리자기처럼 도자기에 화려한 색상을 수놓는 상회기법작가 승지민씨의 달항아리는 화려함과 소박함을 동시에 지닌 매력 때문인지 특히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 밖에 돗자리를 짜는 왕골로 벽시계와 조명, 장신구를 만드는 완초공예, 고려청자의 규범적인 정형미를 벗어던지고 서민을 위해 대량생산되던 투박한 재질의 녹청자 등은 그 거친 느낌으로 인해 오히려 현대인의 감각에 어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격조 높은 철학이 동반되는 것으로 인식되며 고가에 거래되는 예술작품과 달리 우리의 삶, 의식주 자체를 지탱해온 공예문화는 생활에 밀착된 것이기에 그동안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 왔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만들고 또 가장 가까운 곳에 두는 물건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미의식이 가장 잘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행사는 서민적이고 소박한 옛 물건 정도로만 여겨지던 전통공예품들도 현대화를 통해 재창조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한국의 미, 한국의 문화로서 세계에 수출할 수 있는 상품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G20 개최에 맞춘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우리 공예가들이 민간외교사절단으로서 지속적으로 G20 국가들과 교류하며 매년 순회시연에 나설 계획이라니, 우리의 전통공예품들이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가공되어 세계를 누빌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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