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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사진 심사로 뽑힌 한국 최초의 ‘미스 코리아’ 최정원







『삼천리』에 실린 ‘미쓰코레아’ 특선 최정원의 사진. 오늘날에도 개최되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첫 회는 1957년이었지만, ‘미스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처음 미인 여성을 선발하기 시작한 것은 1931년이었다.



최초의 ‘미스 코리아’는 누구일까. 주인공은 최정원(崔貞嫄)이다. 그녀는 1931년 『삼천리』라는 잡지에서 주최한 ‘반도의 대표적 려인(麗人) 미쓰 코레아 삼천리 일색(一色)’을 뽑는 사진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했다.



 삼천리사(社)는 “구라파에 전 구라파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미인이 있고 각국에도 그러한 모양으로, 우리 반도에도 전 조선을 대표할 려인 한 분을 찾아” 보자며 “고상전아(高尙典雅)하고 아름다운 미모에다가 균제된 체격, 만신(滿身)이 예지와 총명에 찬 듯한 근대적 려인”을 뽑겠다고 광고를 냈다(『삼천리』, 1931.5). “18세 이상의 조선 여성, 3년 이내의 사진일 것”을 응모자격 조건으로, 심사는 ‘심미계(審美界)의 권위’를 지닌 이광수·염상섭·김억·안석주·이승만(李承萬)·허영숙·나혜석·김원주·최승희 등이 맡았다. 그해 10월 총 326명의 응모 사진 중 특선 1명 포함해 14명의 입상자를 선정해 발표했는데 최정원이 특선을 차지했던 것이다.



 최정원은 해방 직후 남편과 월북을 해서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흥미로운 이력이 많은 여성이다. 그녀는 문인 최정희(崔貞熙)의 동생으로, 여자고보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활동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1934년 그녀는 일제시대 가장 대표적인 사회주의 예술운동 단체인 카프(KAPF)의 맹원이던 평론가 이갑기(李甲基)와 결혼하여 그의 고향인 대구로 내려갔다. 이갑기는, 소설가 이효석이 문인들의 ‘공공의 적’인 조선총독부 검열계에 취직하자 “너도 개가 다 됐구나”라고 비난을 하여 이효석이 큰 충격을 받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만들었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부부가 함께 노래 부르며 문학이론도 토론’하는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몇 주 만에 이갑기가 카프 맹원들에 대한 일제의 검거사건에 연루돼 체포된다(‘홍루(紅淚) 짜는 문사부인들’, 『삼천리』, 1935.1).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최정원이 했던 활동 또한 남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부군(夫君) 없는 탄식만 하고 앉았지 않고’, ‘낙동강’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낙동강’은 당대 낙동강 유역에 발생했던 수해를 소재로, 가난한 소작인들의 비극적 삶과 그들의 연대와 투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수준급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설가 장혁주로부터 “완벽한 리얼리즘”의 소설로서, 어린 여성이 쓴 작품이라고 생각지 못할 만큼 수작(秀作)이라는 극찬을 받았다(‘최정원씨의 ‘낙동강’을 읽고’, 『삼천리』, 1934.11). 이러한 작품 창작을 통해 그녀는 이념과 이상을 공유하던 남편을 대신해 무산계급을 위한 예술운동의 꿈을 이어나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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