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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사가 G8로 돌아갈 수는 없다

20세기 중반 세계의 구획정리를 좌지우지한 건 3~4개 대국이었다. 미국·영국·소련·중화민국이 카이로·얄타·포츠담에 모여 많은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1945년 종전 이후 안보·군사적으로 세계는 미·소의 양극(兩極)체제를 겪었다. 경제적으로는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75년 G7 체제가 시작됐다. 1990년대 러시아가 가세하면서 G8이 됐다. 정치·군사는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세계경제는 G8이 주물렀다. 중국·인도·브라질·한국 같은 신흥국이 용틀임을 했지만 세계경제에서 그들의 배역은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세계는 G8이 감당하기엔 더욱 커지고 복잡해졌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맞아 세계는 G20 재무장관회의를 만들었다. 2008년 가을 공포스러운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세계경제는 새롭고 강력한 조타실(操舵室)을 요구했다. 그래서 탄생한 게 G20 정상회의다. 워싱턴·런던·피츠버그·토론토를 거치면서 G20은 나름대로 인류의 요구에 부응했다. 경기진작, 금융안정위원회(FSB) 같은 시스템 조정, 보호무역 견제 등을 통해 세계경제는 일단 태풍권에서 벗어났다. G20 정상회의는 드디어 세계경제를 논의하는 최상위 포럼으로 올라섰다.

 서울회의는 종전과 다른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세계가 태풍권에서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위기 후(post-crisis) 경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러나 의미만큼 도전도 새롭다. 1~4회 못지않게 서울회의는 파도가 높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의 지적대로 G20은 7개의 갈등 축을 중심으로 나뉘어 있다. 무역 흑자와 적자, 환율 조작과 피(被)조작, 재정 긴축과 확장, 민주와 독재, 서방과 비(非)서방, 통화주권 간섭과 불간섭, 대국과 소국이다. 여기에다 미국의 양적 완화,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금융 안전망을 둘러싸고도 갈라져 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시기는 없었다. 성과가 목표의 100%이든 50%이든 G20은 세계경제의 최상위 조타수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역사가 G8로 돌아갈 수는 없다.

 G20 서울회의는 한국인에겐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1907년 대한제국의 황제는 꺼져가는 제국의 숨결을 살리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3명을 파견했다. 그러나 외교권을 빼앗긴 대한제국은 회의 참가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이준 열사는 분을 못 이겨 자살했다. 3년 뒤 대한제국은 일제에 합병됐고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45년 강대국의 도움으로 해방됐으나 영토는 분단됐고 3년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이렇듯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세계의 변방에서 소외되고 가난했으며 신음하고 절규했다.

 한국의 질주는 1970년대에 시작됐다. 한강의 기적이 있었고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시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88 올림픽, 2002년 월드컵에 이어 한국은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되었다. ‘헤이그 자살’ 103년 만이다. 지금까지 G20 정상회의를 주재한 나라는 미국·영국·캐나다뿐이다. G8에 속하지 않은 나라 중에서 한국이 제일 먼저 정상회의 의장국이 된 것이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한국의 동선(動線)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서울에서 울려 퍼지는 ‘세계 조타실’의 소음은 세계 최악의 폐쇄국가 북한에 충격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다.

 한국인은 그러나 와인 잔만 들 수는 없다. 서울회의를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됐다는 자체만으로 글로벌 선진 스탠더드를 자동적으로 보장받는 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도전으로 위협받고 있다. 천안함에서 보듯 이념으로 찢겨져 있고, 국회 소동에서 보듯 정치 후진성에 고통받으며, 4대강 반대에서 보듯 이성(理性)과 과학이 흔들린다. 나라는 의장국이지만 국민은 사교육과 양극화·청년실업으로 힘들다.

 오늘 G20 정상들은 동북아의 구석으로 오지만 한국은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G20 정상회의가 정권의 축제가 아니라 국민의 발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권만 자족하면 변방이요, 국민이 미래에 희망을 가져야 중심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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