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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의 독 묻은 사과

1954년 6월 7일 영국, 42세에 숨진 비운의 천재수학자 앨런 튜링을 가정부가 발견한 것은 죽은 지 하루 지나서였다. 그가 한 입 베어 먹고 침대에 남겨놓은 사과엔 청산가리가 묻어 있었다. 그가 쓴 ‘계산할 수 있는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 덕택에 지금 우리는 디지털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 부른다. 99년 타임지는 ‘20세기를 빛낸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그를 선정했다. 2002년 영국 BBC가 실시한 ‘위대한 영국인 100인’ 조사에서도 2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9월 10일 고든 브라운 총리가 그의 죽음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사과 표명을 했다. 최근엔 그를 기리는 뮤지컬 ‘아이콘스:동성애의 세계사’가 나왔다.

그의 사망 69년 전에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어로 탐미주의를 주창한 오스카 와일드가 2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1885년 개정 형법 제11조에 따라 ‘품위를 유지하지 못한 죄’로 처벌받은 것이다.

튜링은 ‘남자 친구’ 머레이와 섹스를 했다고 커밍아웃을 하는 바람에 오스카 와일드에게 적용했던 형법 조항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됐다. 그에게는 리비도를 줄이는 호르몬 처치를 받을 것과 징역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에스트로겐 호르몬 주사를 통한 화학적 거세를 선택했다. 에스트로겐은 여성호르몬이다. 이걸 주사하면 얼굴이 커지고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한참 동안 주사를 맞고 난 후, 튜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스스로 죄 없는 자가 죽을 법한 방식으로 죽겠노라고 다짐했다. 백설공주가 살해된 방식을 택한 것이다. 청산가리를 묻힌 사과를 먹은 것이다. 애플사와 로고 디자이너는 ‘애플 로고’가 튜링의 사과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그래도 닮기는 많이 닮았다. 스토리의 아귀도 맞는 부분이 많다.

그가 먹다 남긴 사과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말고도 동성애 논란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선 2003년 매사추세츠주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최초로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했다. 2008년 캘리포니아 대법원도 동성혼을 인정했지만 유권자 투표로 이 결정을 뒤집었다. 2009년에는 버몬트주가 최초로 법원 판결 없이 순수한 법률 제정으로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2008년 코네티컷과 2009년 아이오와는 해당 주 대법원의 판결로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상파 방송의 주말드라마에서 동성애 커플의 언약식 장면이 방송돼 동성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법무부가 2008년 폐기된 차별금지법을 다시 적용할 것이라는 소문과 관련해 종교계는 극도로 반발하고 있다. 드디어 법무부 홈페이지가 이들의 공격에 다운되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법무부는 차별 금지 영역에 성적(性的) 지향을 포함할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과연 정의로운 결혼이란 무엇인가? 동성혼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성혼만 인정하는 것은 일종의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진영에선 ‘국가가 동성혼을 인정한다면, 정부 승인 도장을 찍어주는 행위’라고 반박한다. 그렇다고 국가가 인정하는 제도로서의 혼인을 폐지하는 정책을 취하기엔 시기상조인 듯싶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말미를 이렇게 장식하고 있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정치가 나서서 ‘튜링의 사과’를 거둬야 할 때다. 튜링의 동상에는 ‘편견의 희생자’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시대의 동성혼은 편견의 희생자인가, 아니면 희생자들의 편견인가?



강성남 1992년 서울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대학·국회·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저서로 『부정부패의 사회학』 『행정변동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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