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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 중이라고 압수수색 안 하면 그게 바로 정치수사”

5일 오후 2시쯤 대정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있던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게 다급한 메시지가 전달됐다. 법무부 검찰국 관계자가 들고 온 김준규 검찰총장의 전갈이었다. “북부지검이 현직 국회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서울북부지검은 전국청원 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입법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이다.

이 장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민주당 장세환 의원과 자유선진당 김창수의원 등이 긴급 질의를 해 왔다. 국회 회기 중 진행된 검찰의 강제수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비상계엄 상황이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신시대나 5·16 때도 없었던 사태다.” 이 장관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거기에는 무슨 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되풀이했다.

전격적인 압수수색은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을 충격에 빠뜨렸다. 야당은 “입법권에 대한 검찰권의 유린행위”라고 검찰을 비난했다.

압수수색 대상은 청목회에서 1000만원 이상 후원금을 받은 여야 의원 11명이다. 이 중 한나라당 의원이 5명(권경석·유정현·조진형·신지호·이인기), 민주당 의원이 5명(최규식·강기정·유선호·조경태·최인기), 자유선진당 의원이 1명(이명수)이었다. 압수수색 장소도 전국을 망라했다. 서울 3명, 인천 1명, 영남 3명, 호남 3명, 충남 1명이었다. 상임위별로는 행정안전위 소속이 5명, 국토해양위 2명, 문방위·기획재정위·지식경제위·농식품 각 1명씩이었다. 11명 가운데 조경태·유선호 의원을 제외한 9명이 청목회 로비가 있었던 2009년 당시 행안위 소속 의원이었다. 당시 행안위 의원은 24명이었다.

북부지검은 정치인의 무덤
검찰이 동시다발적으로 대기업과 정치자금 로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야당에서는 검찰의 수사를 한 덩어리로 묶어 비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대포폰’ 수사는 청와대와 짜고 축소하면서 C&그룹(대검 중수부)과 한화·태광(서부지검) 수사는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청목회 입법 로비와 관련한 북부지검의 수사에 대해선 박지원 민주당원내대표가 “김윤옥 여사 관련 의혹을 제기한 강기정 의원에게 무자비한 보복이 시작되고 있다”며 표적수사론을 제기했다. 같은 검찰이 서로 다른 잣대로 수사한다는 비난이다. 이 비난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검찰 동일체 원칙이란 점에선 맞고, 검사의 독립성이란 관점에선 틀리다. 수사 주체의 성격과 경력, 소신과 철학에 따라 수사의 방식과 방향에 어느 정도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북부지검의 국회 회기 중 현역의원 후원회 사무실 압수수색은 그래서 흥미를 끈다. 북부지검엔 어떤 검사들이 있을까.

청목회 수사의 총사령탑은 이창세(48·사법시험 25회) 북부지검장이다. 서울중앙지검특수부 검사를 거친 그는 기업 비리, 비자금수사를 많이 한 ‘특수통’이다. 지난해 창원지검장 때는 이국철 SLS그룹 회장과 진의장 통영시장 등 관련자 10명을 기소해 지방에선 보기 드문 토착 비리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이 지검장을 보좌하며 사실상 수사를 지휘하는 조은석(45·사시 29회) 차장검사는 평검사 시절부터 특수부에서 경력을 쌓아 온 특별수사 전문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와 중수부 과장을 두루 거쳤다. 그는 경성사건 재수사 때 정대철(구속) 의원, 이기택(불구속기소) 의원을, 나라종금 사건 때 한광옥(구속)대통령 비서실장,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김홍일 의원 등을 사법처리했다. 썬앤문 사건,대선자금 사건, 대양상호신용금고 사건 등을 수사해 신계륜 전 의원, 김방림·이양희 의원을 사법처리했다.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을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장시간 조사하기도 했다. 또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때는 CJ그룹 직원의 비자금 횡령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조 차장검사는 수사의 핵심을 신속하게 치고 들어가는 형이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끈질기게 수사하며 수사 성공률이 90%를 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는 정치인들이 대거 수사 대상에 오른 사안임을 감안해 수사검사들에게도 극도의 보안 유지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이 새 나가지 않게 보고 계통을 일원화했다는 후문이다. 실제 11명의 국회의원에 대한 수사는 김태철(47·사시 34회) 부장검사 휘하의 4명의 검사가 나눠 맡았다. 수석검사인 신명호(41·사시 38회) 검사, 박홍규(39·사시 41회)·한태화(39·사시 42회)·서지현(36·사시 43회) 검사다. 청목회 사건 주임검사는 박 검사다. 신 검사는 김희선 전 의원을 구속한 당사자이고 유일한 홍일점인 서 검사는 장광근 의원 사건 주임검사다. 앞으로 이들 4명의 검사는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해당 회계책임자와 국회의원 등에게 순차적으로 소환을 통보하는 등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북부지검 수사라인의 면면을 볼 때 청목회 수사가 간단히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2004년 제정된 정치자금법(일명 오세훈 법)에 따라 정치권에 만연된 잘못된 관행을 수사하는 것이지 정치권 사정 의도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국회에서 만든 법에 따라 수사하는 것을 두고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시 오세훈 법에 따라 선거법뿐 아니라 정치자금법을 위반해도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하고 피선거권을 제한받게 됐다.

검찰은 정치권의 반발에 당당하다. 북부지검 한 관계자는 “수사라는 건 절차와 과정에 따라 하는 것이고 그래야 실패하지 않고 무리수가 생기지 않는다”며 “국회 회기 같은 다른 상황을 고려하면 그게 바로 정치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북부지검은 구속된 청목회 간부들로부터 청목회가 회원들 명의로 10만원씩 쪼개 집단적으로 후원금을 내겠다는 의사표시를 로비 대상 국회의원들에게 했다는 진술을 이미 확보했다고 한다. 선관위에 등록된 국회의원 후원금 계좌에 청목회 회원 개인 명의로 입금한 돈이 청목회라는 단체가 주는 돈이었음을 알고 있었다면 해당 의원은 사법처리 대상이다. 현행 정치자금법 제31조에 따르면 ‘법인이나 단체가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제32조는 ‘공무원이 담당·처리하는 사무에 관해 청탁하기 위해 정치자금을 줄 수 없다’고 돼 있다.

‘수사 성공률 90% 넘는다’ 평가
후원금을 받는 대가로 청원경찰법 개정을 도와줬다면 정치자금법 위반 외에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 실제 청목회의 요구대로 청원경찰의 퇴직 연령을 늦추는 내용의 청원경찰법 개정이 지난해 12월 이뤄졌고 청목회 회원 등의 명의로 후원금이 입금된 건 확인됐다. 청목회가 지난해 청원경찰법 통과를 위해 회원들에게 걷은 특별회비는 8억여원. 이 중 2억7000여만원은 국회의원 33명의 후원계좌로, 1억여원은 공청회 및 간담회 경비로 사용됐다. 검찰은 나머지 4억여원이 입법 로비에 쓰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압수수색을 당했다고 해서 국회의원이 반드시 사법처리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검찰관계자는 “압수수색과 후원금 수수 행위가 국회의원 하고까지 직접 연결됐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며 “옥석을 구분해 억울한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부지검은 이번 수사가 있기 전에도 ‘정치인의 무덤’이란 소리를 들었다. 서울중앙·동·남·북·서·의정부지검 중에서 ‘외지’로 분류되던 곳이 이런 소릴 듣게 된 건 지난 9월의 김희선 전 의원 사건을 조사하면서다. 김 전의원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를 잡고 동대문 지역 구의원 출마자부터 현직 시의원까지 철저히 조사한 뒤 지난달 21일 구속기소했다. 한나라당 장광근 의원도 북부지검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장의원은 원외 시절이던 2005∼2008년 동대문의 중견 H건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5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문석호 의원 후원금 쪼개받고 벌금형
과거 의원회관을 압수수색한 최초의 사례는 2005년 철도공사의 유전개발사업(이른바유전게이트)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가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사무실에 대해 실시한 것이다. 이 의원이 2004년 자신의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전대월 하이엔드 대표에게 사할린 유전사업 진행상황을 확인하는 등 유전사업에 개입한 정황이 있는데 이를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북부지검이 수사에 자신감을 보이는 데는 과거 이와 유사한 사례로 대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린 전례가 있는 점도 작용한다. 서산지청이 2006년 초 수사했던 문석호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의 불법 후원금 수수사건이다.

그해 1월 말 검찰은 집권당 소속 문 의원의 충남 서산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 회계장부를 압수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검찰은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문 의원은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검찰의 폭거”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답변은 간단했다. “입당원서와 대납한 당비가 모이는 곳이 문 의원 사무실인 만큼 증거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은 불가피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문 의원은 “법조 브로커 윤상림과 정상명 검찰총장 간의 관계를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검찰총장을 직접 겨냥했고 검찰은 그해 3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에쓰오일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1년 6개월간의 수사 끝에 김선동 에쓰오일 사장이 직원 546명에게 10만원씩 문 의원의 후원금 계좌에 입금하도록 지시해 총 5500만원의 후원금을 내는 방식으로 공장 이전 로비를 벌인 사실을 밝혀내 2007년 문 의원을 기소했다. 문 의원은 1심 유죄, 2심 무죄를 받고 대법원에서 정치자금법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원에 추징금 5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수사 당시 서산지청장은 현재 한화증권과 태광산업 비자금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이다. 남 지검장은 “당시 집권당의 문 의원을 수사하는 걸 보고 다들 걱정 어린 격려를 하곤 했었다”며“문 의원이 검찰총장을 싸잡고 비난하면서 우리 수사가 탄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1991년 국회 ‘상공위원회 외유사건’을 보면, 당시 의원들이 자동차관리협회 돈으로 외유를 갔다가 몇 사람이 구속됐다”며 “이번 불법 후원금 수수사건도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법을 고치거나 관행을 없애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은 “정경유착을 막기 위해 후원금 제도를 바꾼 것인데 소액 후원금을 갖고 문제를 삼으면 법 취지가 몰각될 우려가 있다”며 “법을 입안할 때마다 청탁이 개입된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면 후원금 제도를 안 두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후원금 제도와 정치자금 제도를 새로 정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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