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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타이어로 빚은 야수, 그 속엔 인간의 욕심과 연약함이

1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코리안 아이’ 전시에서 자신의 작품 ‘상어’앞에 선 지용호 작가.
런던과 싱가포르에 이어 지금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코리안 아이-환상적인 일상’ 전시에서는 검은 야수들을 볼 수 있다. 공중에 매달린 상어의 내젓는 꼬리와 바닥에 도사린 채 곧 뛰어오를 것 같은 재규어의 응축된 근육에서 무서울 정도의 박력이 느껴진다. 이들의 재료는 놀랍게도 폐타이어. ‘코리안 아이’에 참가하는 12인의 촉망받는 한국 작가 중 조각가 지용호(32)의 작품이다. 사납게 포효하는 듯한 야수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면 뜻밖에도 그들의 검은 눈동자는 고요하고 서글프게 가라앉아 있다. 미노타우루스를 연상시키는 반인반수 조각에서는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강건한 근육에 힘이 넘치지만 수그린 고개와 눈에 우수가 서려 있다.

런던, 싱가포르 이어 서울서 금의환향 전시…‘코리안 아이’전에서 만난 작가 지용호

“아주 강력하게 보이지만 내면에 고독과 슬픔을 담고 있는 것이 제 작품의 일관된 이미지예요. 제 작품은 어떤 언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형언하기 힘든 그러나 보편적인 공감이 가능한 정서를 전달하죠.”
폐타이어를 자르고 붙이느라 나날이 굵어져 간다는 팔뚝에 전체적으로 터프한 모습이면서도 차분하고 진지한 눈빛을 한 젊은 작가를 보며 사람들은 한결같이 “작가와 작품이 참 많이 닮았다”고 한다.

지 작가는 서구 저택 벽에 종종 걸려 있는 동물 머리 박제의 슬픈 눈동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인간이 공포의 존재인 야수를 정복했다고 자랑스럽게 걸어놓은 것이지만 오히려 그 야수들이야말로 가장 공포스러운 인간의 욕심에 희생된 존재가 아닌가. 하지만 ‘뮤턴트(돌연변이)’ 시리즈라고 불리는 그의 조각들이 인간과 대립하는 동물의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동물 조각은 현대사회의 정글에서 생존경쟁을 하며 강한 척하지만 내면은 약하고 고독한 인간을 대변한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에 대한 거예요. 동물로 그것을 표현하다가 이제 반인반수로 옮겨 왔죠. 나중에는 사람 조각도 할 수 있겠죠.”
시각적으로 강렬하면서 그리 난해하지 않고 재료가 특이한 지 작가의 작품은 지난 7월 ‘코리안 아이’ 런던 전시 때도 특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전시를 후원한 스탠다드 차타드 코리아의 팀 밀러 회장에서부터 이 전시에 맞춰 한국 현대미술 화집을 발간한 이탈리아 굴지의 예술 출판사 스키라의 바라지올라 매니저까지 모두 지 작가의 작품을 따로 언급할 정도였다.

2 지용호 작가의 39재규어’사진 지용호 작가 제공
올 초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에서도, 7~8월 홍콩 중심가 코즈웨이베이 타임스 스퀘어에서 열린 이환권-지용호 2인전에서도 관객은 ‘뮤턴트’ 시리즈에 열광적인 흥미를 보였다. 그의 작품은 국적에 관계없이 어필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어떤 서구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동양적인 정신을 읽기도 한다. “뉴욕에서 유학할 때 미국 친구들이 제 작품을 보고 동양적인 순환의 원리에 대해 이야기하더군요. 본래 생물이었던 고무나무에서 무생물체인 타이어가 나왔고 그것이 다 쓰고 버려진 폐타이어가 되고 제 손을 거쳐 다시 생명체의 형상이 되니까요.”

지 작가는 스테인리스 골조 위에 잘게 자른 폐타이어를 붙여 나가면서 작업한다. 이 과정에서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추가되기도 하고 우발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는 그런 즉흥성을 좋아한다고 했다. 사용하는 폐타이어 종류로 말하자면, 표현하고자 하는 형태와 부위에 따라 트랙터 타이어부터 자전거 타이어까지 온갖 종류를 동원한다. ‘상어’처럼 미끈하고 속도감 느껴지는 작품에는 오토바이와 경주용 자동차 타이어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폐타이어라는 재료 자체에 대해 크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폐타이어를 쓰는 것은 저의 컨셉트를 가장 잘 받쳐주는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힘과 역동성, 강인하면서도 탄력이 있는 근육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소재이기 때문이죠. 새 타이어는 잘 맞지 않아서 폐타이어만 써요. 하지만 다른 컨셉트의 작품을 시도할 때는 그에 가장 잘 맞는 다른 재료를 써야겠죠. 일단 지금 작업을 계속 하면서 다른 컨셉트도 병행할 생각입니다. 그에 맞춰 다른 재료를 이미 실험해보고 있기도 하고요.”

지 작가는 조각과 회화를 섞는 작업도 생각해 보고 있다. 조각을 좋아하지만 회화의 색채 등에 대한 욕심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그는 지난 9월 가나아트 갤러리에서 열린 화가 김남표와의 2인전에서 김 작가와 협업으로 반 회화, 반 조각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홍익대 조소과와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한 지 작가는 2007년 11월 뉴욕 필립스 경매에서 작품 ‘상어’가 14만5000달러에 낙찰되고 2009년 대만 소카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작품이 매진되는 등 해외에서 가장 인기 많은 한국 작가 중 하나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성공한 작가에게도 고민이 있다.

“우리나라는 상업 갤러리에서 잘 팔리기 시작하면 비영리 미술관에선 잘 다루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양쪽에서 모두 인정을 받으려면 먼저 공공 미술관이 운영하는 스튜디오에 입주하고 대안공간 같은 비영리 공간 전시를 거친 다음 상업 화랑으로 진출하는 것이 순서라는 고정관념이 있죠. 저는 유학을 하다 바로 상업 갤러리를 통해 알려지면서 그런 순서를 밟지 않았죠. 외국은 미술관과 상업 갤러리 간의 연계가 잘 돼 있고 예술성과 상업성의 공존을 중시하는데, 우리나라는 그 둘이 반비례한다고 여기는 것 같아 좀 아쉬워요. 어쨌든 좋은 전시를 많이 만드는 것은 미술관 쪽이니까 저도 우리나라 미술관에서 좋은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한국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려면 최소 35~40세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관례가 있기 때문에 작가는 일단 유럽에서의 개인전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일단 김남표 작가님과의 2인전이 내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열리게 돼 있고, 저의 개인전을 프랑스나 독일에서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미국이나 아시아에 비해 유럽 쪽에서는 전시가 적었으니까요.”

이른 성공에도 안주하지 않고 실험과 고민을 계속하는 작가이기에 그의 행보가 계속 궁금하다. 한편 ‘코리안 아이’ 전시는 13일까지 경희궁 분관에서 계속되고 중앙일보사 L1층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로 옮겨져 18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된다. 참여 작가는 지 작가 외에 김동유, 김현수, 배준성, 배찬효, 권오상, 홍영인, 박은영, 신미경, 전준호, 전채강, 이림 작가다. 이 전시는 내년에 뉴욕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문화팀장. 경제학 석사로 일상 속에서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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