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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승복시키려면 아버지가 늘 공부해야”

윤여준(71·사진)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집안의 가정교육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남자 삼대 교류사(敎流史)(도서출판 메디치·지은이 박유상·작은 사진)다. 윤 이사장은 청와대 공보수석·환경부 장관에 이어 한나라당 국회의원(15, 16대)을 지낸 정치 원로다. 경향신문 기자를 그만두고 38세 때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요직을 맡아 왔다. 야당 시절 한나라당 이회창·박근혜 전 대표를 가까이서 보필했고 이명박 정권 탄생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남자 삼대 교류사』 속 주인공 윤여준 전 의원

그는 조선시대 ‘소론의 영수’로 불렸던 명재 윤증(1629~1714) 선생의 자손이다. 윤증 선생은 인조~경종 때까지 살면서 우의정에 발탁되는 등 여러 번 공직에 나와 줄 것을 요청받았으나 한번도 관직을 맡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던 한학자다. 그를 ‘백의 정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윤 이사장의 아버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비서와 총무처 차관을 지낸 윤석오(1981년 타계) 선생이다. 책은 윤석오 선생이 윤 이사장에게, 또 윤 이사장이 아들 윤구(40)·윤찬(36)씨에게 남긴 정신적 유산과 교육혼을 보여 준다. 두 아들은 공교롭게 한 직장(마이크로소프트·MS)에 다닌다. 경영학 박사인 윤구씨는 MS 일본지사 임원으로, 둘째 윤찬씨는 MS 서울지사의 변
호사로 일하고 있다.

3일 저녁 윤 이사장을 만나 파평 윤씨 ‘남자 3대’의 자녀 교육 실천기를 들어봤다.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가요.
“전 아이들하고 얘기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골프를 안 쳤어요. 청와대 때도 ‘업무 지시’라면서 배우라고 했지만 안 배웠어요. 대신 아이들하고 축구·야구·농구를 하면서 많은 얘기를 해요. 전 이렇게 하라기보다 이런 이런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네가 선택해라, 대신 선택했으면 책임은 자기가 지는 거라고 얘기해요.”

-대화는 어떻게 풀어가나요.
“큰아이가 고교에 가더니 우리가 미국놈 식민지라며 시비를 걸더라고요. 저는 ‘일리 있다. 선생님 얘기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젊어서 공부가 충분치 않아 한쪽 면만 본 거다. 늘 양면을 다 봐야 하는 건데 한쪽 면만 보는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내가 반대쪽 얘길 해 볼게’ 하고 반대쪽 논리를 펴죠. 절대 선생님을 비난하지 않았어요. ‘너희 선생님은 훌륭하다. 직업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은 지식만 전달하면 그만인데 제자를 아끼니까 자기 신념을 넣어 주려 한 것 아니냐. 집에 책이 있으니까 그 문제에 대해 관심 있으면 이런 이런 책을 봐라’. 그렇게 했더니 나중엔 스스로 균형을 잡더라고요.”

-윤 이사장이 높은 식견과 지식이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닐까요.
“아들을 제대로 키우려면 아버지가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걸 느꼈어요. 안 그러면 애들이 승복 안 할 테니까요.”

-자녀 교육에 좌절하고 갈등하는 부모들이 많아요.
“저는 아들 고3 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밤 12시에 교문 앞에서 지켰어요. 아이들이 세 부류예요. 고급 자동차를 타고 기사가 와 태우고 가는 부류, 그 시간에 다시 봉고차 타고 학원으로 가는 부류, 혼자 걸어가는 부류. 그런데 가족이 와서 기다리는 경우는 저 말고는 하나도 못 봤어요. 집까지 10여 분 거린데 애하고 걸어가다 전자오락실 들어가 10분 동안 오락도 같이하곤 했는데, 전 골치가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아들한테 ‘난 이렇게 골치가 아픈데 넌 괜찮냐’고 하니까 아이는 그 소리 들으면 안정이 된데요. 그때 생각했죠.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자. 어떨 땐 포장마차에서 안주 시켜 놓고 잠시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 주는 거예요. 졸업 때가 되니까 아이가 ‘아버지한테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고 해요. 자기 친구 누구도 어버지 하고 이렇게 시간을 같이 보낸 애가 없다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고3이 가장 왕성하게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인데, 그 시기를 같이 보냈기 때문에 나도 아들이 성장하는 걸 보지 않았느냐. 그걸 보는 아버지의 심정도 말로 표현이 안 되는 묘한 감정의 화학작용이 있는 걸 느꼈다. 굉장히 뿌듯한 게 있더라. 나도, 너도 행복감을 느꼈으니 잘됐네’라고요. 정말 그래요. 아주 뿌듯하고 묘한 행복감이 있어요.”

-역시 대화가 가장 좋은 처방인가요.
“지금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들이 전화를 걸어와요. 아버지로서 필요할 때 지혜를 줄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나도 준비를 해야죠. 세상 돌아가는 걸 같이 따라가 줘야 하거든요. 요즘엔 신문 경제면도 열심히 읽는 이유가 큰 아이 때문이에요.”

-스스로 어떤 아버지라고 생각하세요.
“처음엔 아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비록 아들이지만 사람한테 존경받는다는 건 어렵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존경’을 ‘존중’으로 고쳤어요. 그걸 확인한 계기가 된 게 설훈 전 의원(민주당)이 제가 최규선한테 돈 받았다고 해 단식농성할 때였어요. 아들한테 전화가 왔어요.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저희는 아버지를 알잖아요. 100% 신뢰하니까 소신대로, 생각대로 하세요’라고요.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더라고요. 아비를 신뢰한다는 뜻, 존중받는다는 게 증명된 거 아닙니까. 그때 깨달은 게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건 없다. 사람은 말을 해야 안다는 거예요.”

윤석오 선생은 진보적이고 실용을 중시한 한학자였다. 윤 이사장이 중2 때(1954년) 동네에 빵집이 생기자 아침식사를 빵으로 바꿨다. 여자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였다. 또 자신의 생일날에도 일일이 상을 차리지 말고 음식을 차려놓고 각자 접시를 들고 덜어 먹도록 했다. 일종의 뷔페식인 셈이다.

-아버지의 많은 가르침 중 가장 크게 새기는 덕목은 뭡니까.
“살아가는 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지만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 집착하면 치사하거나 비굴해지기 쉽다고 하셨어요.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다가 그 뜻을 알았어요. 그다음부턴 마음속에 평화가 생기더라고요. 제 맘이 편한 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사람에게도 제 문제를 부탁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하고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셨더군요.
“한번은 절 부르시더니 ‘사내란 이다음에 커서 양복 위 주머니에 손수건을 꽂고 가는 사교장에 가서도 스스럼없이 음식을 먹을 줄 알아야 하고 남대문 지게꾼 먹는 값싼 음식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폭이 넓어야 한다’고 하면서 양식당에 데려가 양식 먹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 게 아버지께 받는 좋은 자산이죠. 전 지금도 최고급 파티에서도 잘 먹지만 간장만 주고 먹으라고 해도 제 양을 다 먹어요.”

책엔 ‘기를 꺾지 않되 규범은 반드시 가르쳐라’ ‘15세까지 교육하고 이후엔 스스로 설계하도록 믿고 기다려라’ ‘참을 수 없는걸 참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이다’ ‘자식과 대화하되 강요하지 말라’ 같은 구체적인 가르침이 일화와 함께 소개돼 있다. 인터뷰 말미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사의 체벌 금지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전까진 종아리를 때리는 정도의 체벌은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체벌을 폭력으로 받아들여요. 그럼, 때리면 안 돼요. 선생님들이 왜 학생 통제가 안 되느냐, 도덕적 권위를 상실해 그래요. 이제 선생님들 스스로 어떻게 도덕적 권위를 세우나 고민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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