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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세계 ‘초거성’ 자리는 트로이카 체제로 분할될 듯

“안타깝지만 내가 숨을 거둔 뒤에도 포트폴리오를 운용하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80)이 2007년 주주에게 띄운 편지의 한 대목이다. 버핏의 직함 3개 가운데 하나인 최고자산운용책임자(CIO) 후계자를 물색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최고경영자(CEO)·CIO를 맡고 있다.

워런 버핏, 그가 물러나면?


버핏의 선언 이후 버크셔 해서웨이 안팎은 늘 귀재의 눈길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몇몇 인물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한때 중국계 리 루(44)가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이 회사의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후보 그룹에서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투자 세계의 절대자인 버핏의 눈길이 새로운 인물을 향했다. 이번엔 토드 콤스(39)다. 버핏과 그의 맹우(盟友) 찰리 멍거(86)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토드 콤스가 펀드매니저로 버크셔 해서웨이에 합류한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다”며 “그가 우리 포트폴리오(1000억 달러 규모) 가운데 상당 부분을 맡아 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발표는 길지 않았다. 그럴듯한 기자회견도 없었다. 버핏이 소유한 경제통신 비즈니스와이어를 통해 세상에 알렸을 뿐이었다.

‘절대자의 결정은 늘 대중의 의표를 찌른다’는 속설을 증명하려는 의도였을까. 버핏이 뽑은 인물은 전혀 뜻밖이었다. 콤스는 절대 무명의 헤지펀드 매니저다. 미 코네티컷주에 본거지를 둔 헤지펀드인 캐슬포인트캐피털매니지먼트를 운용하고 있다.

콤스는 버핏의 육감에 맞는 인물
버핏의 발표 직후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뉴욕 타임스(NYT), 블룸버그 등이 콤스의 사진을 입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가 뉴욕 컬럼비아대학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지자 기자들이 동문회 사무실에서 졸업앨범을 뒤졌다. 하지만 그의 사진을 발견할 수 없었다.

콤스는 버크셔 해서웨이 CIO 후보가 되기 위해 지원서를 낸 700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05년 헤지펀드를 설립해 운용했다. 자산 규모는 4억 달러 수준이다. 덩치가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의 현재까지 누적 수익률은 34%라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금융위기 등을 감안하면 나쁘지는 않지만 헤지펀드 매니저로선 낮은 수익이라는 게 월가의 평이다. 헤지펀드 수익률은 해마다 두 자릿수는 돼야 투자자가 몰린다.

FT는 “버핏이 투자를 결정할 때처럼 자신의 육감에 따라 콤스를 선택한 것 같다”고 평했다. 버핏 친구인 멍거의 추천이 주효했다. 그렇다고 멍거도 콤스를 잘 알지 못했다. 멍거는 콤스가 지원서를 겸해 띄운 편지를 먼저 읽어봤을 뿐이었다. NYT는 “고등학교 시절 콤스가 웅변반에서 활동했다”고 이달 2일 보도했다. 그 시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 산전수전 다 겪은 80대 투자가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편지를 쓴 것일까?

버핏과 멍거는 콤스를 불러 점심을 같이했다. 두 사람은 긴 점심을 먹으면서 콤스를 면접했다. 버핏은 콤스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했는지 집중적으로 물어봤다고 한다. 월가 전문가들은 콤스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뒤 “수익 못지않게 리스크를 관리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콤스가 노회한 버핏과 멍거의 육감을 자극했을 법한 대목이다.

후계 준비없는 스티브 잡스와 대비
버크셔 해서웨이처럼 걸출한 CEO의 후계 문제가 화두인 회사들이 적지 않다. 미국 정보기술(IT) 업계 상징으로 떠오른 애플과 세계적인 미디어 제국 뉴스코퍼레이션이 우선 꼽힌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55) 이후 대비가 거의 없는 상태다. 잡스는 한때 물러났다 복귀해 애플을 자신의 색깔로 완전히 바꿔놓았다. 잡스는 애플 내에서 전제군주나 다름없다. 모든 선택과 결정이 그에게 집중돼 있다. 애플 자체가 잡스의 분신이다.

뉴스코퍼레이션의 총수 루퍼트 머독(79)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자녀 6명이 후계자 경쟁을 벌이도록 해 마음에 드는 후계자를 골랐기 때문이다. 넷째 자녀인 제임스 머독(37)이 주인공이다. 성취욕이 강한 자녀들이 많아 그중에 하나를 골라 경영권을 물려주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버핏은 좀 다른 길을 선택할 듯하다. 고분고분한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을 물려주기보다는 분할 승계할 뜻을 내비쳤다.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CEO·CIO 자리를 서로 다른 인물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이른바 트로이카(3두) 체제다. 버핏식 리스크 관리이기도 하다.

이미 버크셔 해서웨이는 거대 기업이 됐다. 주가(A주)가 주당 12만 달러 수준이다. 시가총액도 2000억 달러 이상이다. 거느린 자회사만도 50개에 달한다. 금융과 의류·물류·가구·에너지·럭셔리 등 여러 부문에 발을 걸쳐놓고 있다. 거대한 투자 네트워크인 버크셔 해서웨이를 어느 한 사람이 지휘·통제하기는 사실상 불가하다. 버핏은 “한 인간의 에너지와 열정·노하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권한을 쪼개 물려주겠다는 속뜻을 에둘러 내비쳤다.

차기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후보로 가장 유력한 인물은 하워드 버핏(56)이다. 버핏의 장남이다. 버핏은 최근 2~3년 사이에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회가 하워드를 회장에 선임해 줄 것으로 희망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버핏이 말한 회장은 입헌군주 같은 인물이다. 이사회를 주관하기는 하지만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하워드는 버핏 가문의 대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스스로 농사꾼을 자처한다. 1993년 이후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로 등재돼 있다. 그가 버핏한테서 회장 자리를 물려받으면 버크셔 해서웨이 문화와 전통의 지킴이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농장 경영하는 하워드는 ‘정신 지킴이’
버크셔 해서웨이 CEO 후보는 두 명으로 압축돼 있다. 하나는 데이비드 소콜(56)이다.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 자회사인 네트제츠의 CEO다. 버핏은 “소콜은 우리의 해결사”라고 극찬했다. 인수합병(M&A) 거래를 성사시켜야 할 때, 부실한 계열사를 뜯어고쳐야 할 때 버핏은 소콜을 찾는다. CNN머니가 “버핏이 가장 선호하는 특급 소방수”라고 평한 이유다.

버핏과 소콜의 인연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핏이 소콜이 키운 대형 유틸리티 기업인 미드아메리칸을 인수한 것이 계기였다. 버핏은 지난해 소콜을 비즈니스 항공기 리스회사인 네트제츠 CEO로 보냈다. 네트제츠가 8억 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하자 구조개혁을 위해 소콜을 투입한 것이다.

소콜은 비타협적인 자세로 유명하다. 자신이 정한 원칙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당연히 반발에 시달리기도 한다. 네트제츠 간부들이 그의 저돌적인 구조개혁에 반발해 회사를 뛰쳐나갔다. 소콜은 최근 CNN머니와 인터뷰에서 “회사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인적 손실은 피할 수 없다”며 그들의 반발을 무시했다.

또 다른 CEO 후보는 아지트 자인(59)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보험 부문을 지휘하고 있다. 보험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핵심 부문이다. 자인은 가장 많은 현금을 벌어다 버핏에게 안겨주고 있다. 1998년 이후 연평균 18억 달러를 버핏의 금고에 넣어줬다. 버핏이 ‘육감’에 따라 기업을 자유롭게 사들이도록 하는 실탄을 제공하는 병참 책임자인 셈이다.

자인은 인도 출신이다. 인도에서 공학을 공부했지만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에 진학했다. 컨설팅회사인 매킨지를 거쳐 1986년 버핏 사단에 합류했다. 지난해 버핏은 “매일 자인과 대화를 한 덕분에 나날이 똑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버핏 이후 트로이카 체제에서 자산 배분권을 쥔 CEO가 최고 실력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차기 CEO가 이사회를 통해 투자 방향과 전략, 베팅 금액을 결정하면 CIO가 그 한도 안에서 실무적인 운용을 맡는 구조다. 달리 말해 버핏 이후 버크셔 해서웨이는 집단지도체제가 되는 셈이다.

버핏의 간택은 독이 든 성배?
버핏은 회장 자리를 빼놓고는 누구를 간택할지 함구하고 있다. 버핏이 공직에 진출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버크셔 해서웨이 총수 자리를 지킬 요량이다. 버핏이 물러나는 그날까지 콤스나 소콜·자인 세 사람은 후보자일 뿐이다. 셋은 버핏과 멍거의 눈에 들어야 한다. 동시에 성마르고 변덕스러운 투자자들의 평가도 받아야 한다. 새로운 인물이 버핏의 눈에 들면 세 사람은 즉시 후보자에서 밀려난다.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에는 이른바 ‘버핏 프리미엄’이 반영돼 있다. 버핏이 골라 지분을 인수한 회사들의 주가가 버핏의 이름 하나만으로 높이 형성되면서 발생한 웃돈이다. 세 사람 가운데 누가 CEO나 CIO가 되든 버핏 프리미엄을 누리기 힘들다. 그들이 어떤 회사를 골라 사들였다고 해당 종목의 주가가 순식간에 오르는 것은 드문 일이 될 것이다.

버핏 후계자들은 끊임없이 자신과 버핏을 비교하는 투자자들의 시선도 견뎌야 한다. 미국 재계에서 말하는 ‘이멜트 운명’이다. 이는 잭 웰치라는 ‘비즈니스 수퍼스타’의 뒤를 이은 GE의 제프리 이멜트가 겪는 어려움을 두고 한 말이다. 이멜트는 GE 주가나 경영 실적이 웰치만 못하다는 평가에 시달리고 있다. 이멜트는 그런 비교에 강하게 반발하곤 했다. 그는 “웰치의 주가에는 실적개선과 주식시장 호황이 반영돼 있다”고 받아쳤다. 하지만 이멜트의 주장은 ‘선임자만 못한 인물의 자기 변명’ 쯤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미국 경영권 승계 전문가인 앤드루 워드 펜실베이니아 리하이대 교수는 최근 FT와의 인터뷰에서 “카리스마를 지녔고 시대의 아이콘 같은 선임자의 뒤를 잇는 일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며 “선임자가 떠난 뒤 실적이 나빠지고 주가가 떨어지면 모든 책임을 후임자가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후임자는 억울할지 몰라도 투자자들이 수퍼스타의 후임자를 미더워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수퍼스타의 후계자가 별 볼일 없는 인물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씨티그룹의 샌디 웨일이 물러나자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인물인 처크 프린스가 후계자로 뽑혔다. 웨일이 그런 인물을 고른 탓이었다. 이후 씨티는 미국 정부의 공적자금을 받아 겨우 연명해야 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전가됐다. 워드 교수는 “수퍼스타들이 자신이 구축해 놓은 경영체제와 문화·업적·전설 등을 그대로 유지해 줄 수 있는 ‘그저 그런 인물’을 후계자로 뽑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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