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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너·캔터 성향 극과 극, 반 오바마 정책엔 찰떡 궁합

선거는 항상 새로운 권력을 낳는다. 승자독식 원칙이 통하는 미국에선 더더욱 그렇다. 공화당이 중간선거(2일)에서 압승을 거두고 하원을 장악함에 따라 의회 권력지도는 완전히 바뀔 전망이다. 강력한 대통령중심제인 미국은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견제하기 위한 강력한 의회 권력을 허용하고 있다.

미리 보는 ‘여소야대’ 미국 하원의 권력이동

미 하원의 권력은 내년 1월부터 야당인 공화당으로 넘어간다. 하원은 행정부를 견제하고 압박할 예산권과 입법권을 갖고 있다. 당 지도부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얼마나 공조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2년간 미국의 진로가 결정된다. 국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급부상하는 차이나파워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핵심이다.

중간선거 직후 오바마는 공화당 지도부와 18일께 만나 감세 연장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화당 지도부는 건강보험 개혁 등 오바마의 주요 정책들을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미국 내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에는 존 베이너(60) 공화당 원내대표가 내정됐다. 민주당 낸시 펠로시(70)로부터 하원의장을 넘겨받을 그는 지난 3일 승리를 선언하며 “이번 선거에선 유권자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변화를 요구했다”고 역설했다.

베이너는 펠로시와 대조적이다. 유력한 정치가문에서 성장한 펠로시는 명품 패션과 보톡스(잔주름 제거 시술)를 떠올리는 ‘캘리포니아 부유층’의 상징적 인물이다. 반면 오하이오주 시골마을의 근로계층 출신인 베이너는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이다.

리더십 스타일에서도 차이가 난다. 펠로시는 자기주장이 강했지만 베이너는 남의 의견을 듣길 좋아한다. 베이너는 하원의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상임위원장에게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베이너가 하원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한 공화당의 그레그 월든 의원은 4일 “베이너 원내대표는 하원의장실이라는 밀실에서 법안을 마련하는 관행을 중단하고 상임위원장 주도로 법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너, 눈물 많은 감성의 리더십
베이너는 3일 중간선거 승리 연설에서 인생 역정을 회고하다 1~2분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오하이오주 남쪽 레딩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12남매 중 둘째로 자란 베이너는 “일과 후 집에 돌아가는 것이 마치 고아원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대학 졸업을 하기까지 웨이터, 마루 닦기, 공사장 야간 경비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신시내티에 있는 세이비어 대학 야간과정을 7년 동안 다니며 어렵사리 공부한 베이너는 조그만 플라스틱 제품 판매 회사인 뉴사이트 세일즈에서 판매사원으로 출발해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의 삶은 아메리칸 드림을 보는 것 같다.

그는 눈물의 정치인이다. 2008년 10월 금융위기 수습을 위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부실자산구제계획(TARP)을 옹호할 때도 눈물을 흘렸다. 오바마의 이라크 철군 계획에 대해서는 격하게 반대 연설을 하다 목이 메는 장면을 연출했다. 가까이 지내던 고 테드 케네디 전 민주당 상원의원과 함께 가톨릭계 학교를 위한 기금 모집 행사 때는 눈물로 기부를 호소했다. 2006년 공화당 원내대표 자리를 놓고 베이너와 경쟁했던 마이크 펜스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이 “베이너는 하원 내에서 가장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당내에선 개혁주의자로 꼽힌다.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지만 지역구에 대한 선심성 예산을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 유권자들에게는 “지역구를 위한 선심성 예산 편성을 바란다면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선의원 시절엔 6명의 동료와 함께 의사당 내 우체국·식당의 비리를 집요하게 파헤쳐 ‘7인의 갱’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94년 공화당을 40년 만에 상·하원 주인으로 만든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을 추종했다. 깅그리치가 ‘미국과의 계약’이란 공약을 설계하는 데 참여하면서 공화당 주류가 된 것이다. 그러나 95년 깅그리치가 예산안 통과 거부를 주도하며 행정부 업무를 마비시키고, 그 역풍을 맞아 98년 정계에서 은퇴하자 베이너 역시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다. 당시 베이너는 보좌관들에게 “우리는 살아날 것”이라며 재기 의지를 다졌다.

불 같은 성격인 깅그리치와 달리 베이너는 조직을 우선하는 현실 정치인이다. 가까운 친구 중 상당수는 은행·보험사 등 기업 로비스트다. 그가 공화당의 로비스트 창구로 지목되는 이유다. 그 덕인지 몰라도 정치자금 모금에는 탁월하다. 이번 중간선거에선 4600만 달러를 모아 선거자금으로 풀었다.

현실주의자인 만큼 주고받기에도 철저하다. 중간선거를 위해 약정된 지원금 3만 달러를 내지 않은 공화당 하원의원 팀 머피가 베이너에게 에너지법안 처리를 도와달라고 요청하자, “왜 내가 당신을 도와줘야 하지?”라고 반문했다. 다음날 머피는 지원금을 모두 냈다. 당내 온건론자인 조셉 케이토 의원이 지난해 초 오바마의 경기부양법안에 반대표를 던지자, 베이너는 다음날 케이토에게 5000달러의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정책엔 강력한 옹호론을 펼쳤다. 하지만 오바마의 정책에 대해서는 끈질긴 반대자였다. 오바마의 건강보험개혁 법안에 대해 그가 내뱉은 “제기랄, 당신은 할 수 없어(Hell, no, you can’t!)”는 유튜브의 고전이 됐다. 오바마의 2008년 대선 선거구호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를 빗댄 말이다.

그는 금융개혁법에도 ‘기업 활동을 제약한다’며 끝까지 반대했다. 그러면서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건강보험·금융개혁법을 무력화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베이너는 미국이 한국·콜롬비아·파나마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비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의 세금 감면, 규제 완화, 석유시추 확대, 정부 재정 축소 등의 공약은 오바마의 노선과 충돌한다. 95년과 같이 행정부와 하원이 팽팽히 맞서 정부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 베이너는 “행정부 폐쇄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이너가 행정부-의회 간 갈등을 무마할 만한 정치력을 보일지는 미지수라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평가했다.

공화당 내 하원 서열 2위인 원내대표는 에릭 캔터(47) 원내총무가 맡아놨다. 1947년 46세의 나이로 그 자리에 오른 찰스 핼렉 이후 최연소 공화당 원내대표다. 다수당 원내대표는 하원 의사 일정을 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63년 만의 최연소 공화당 원내대표
캔터는 베이너와 앙숙이던 톰 딜레이 전 공화당 원내대표의 지원을 받아왔다. 그는 2006년 공화당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베이너를 지지하지 않았고, 하원의장을 향한 야심을 숨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베이너와 맞설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2인자로 물러섰다.

캔터와 베이너는 ‘토끼와 거북’에 비유된다. 베이너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면,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캔터는 엘리트 코스를 거쳐 혜성처럼 공화당 핵심으로 진입했다. 베이너는 골프장 햇살에 단련된 구릿빛 피부로 건강미를 과시하지만, 당내에서 유일한 유대인 하원의원인 캔터는 창백한 얼굴의 소유자다. 레드와인과 비프스테이크를 즐기며 캐멀 울트라 라이츠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는 베이너와 달리, 캔터는 참치 샌드위치와 다이어트 음료에 매달리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이렇게 정반대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오바마의 정책에 반대하는 대목에선 2인3각의 공조를 지켜왔다. 캔터는 베이너보다 더 보수적이다. 그는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미국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지원에도 강력히 반대한다. 낙태와 동성결혼, 총기 규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도 반대한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며, 근로자 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반대한다.

서열 3위 원내총무 자리는 캘리포니아주 케빈 매카티 하원의원이 맡을 전망이다. 매카티와 캔터는 위스콘신주 폴 라이언 하원의원과 함께 자신들의 비전을 담은 영 건(Young Guns)이라는 책을 출판하며 의기투합한 사이다. 캔터는 지휘자, 매카티는 전략가, 라이언은 이론가로 불린다. 매카티는 정계 입문 전에 중소기업을 운영했다.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1년 뒤인 2003년 주 하원의 공화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민주당과의 협력을 주도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와는 중소기업 육성 대책을 입안했다.

로스-레티넌, 오바마 전화 퇴짜
노른자위 상임위인 세입위 위원장에는 데이브 캠프(57) 세입위 공화당 간사가 유력하다. 세입위는 하원에서 한·미 FTA를 관장하는 곳이다. 캠프는 한·미 FTA 수정론자인 민주당의 샌더 래빈 세입위원장보다 친기업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의 근거지인 미시간주 출신이어서 한국 측에 자동차 시장개방 폭을 넓히도록 압박할 공산이 크다.

캠프는 온건파 모임인 ‘공화당 메인 스트리트 파트너십’과 보수파 모임인 ‘공화당 연구위원회’에 모두 가입돼 있다. 의원 성향을 보여주는 프리덤 지수에서 그는 100점 만점에 50점을 받아 중도로 평가된다. 그의 중도 성향이 건강보험 개혁, 세금 감면, 무역 자유화, 연금 개혁 등 여야 쟁점 현안들을 다뤄야 하는 세입위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주목된다.

외교위원장엔 대북 강경파이자 외교위의 공화당 간사인 일리애나 로스-레티넌(58)이 유력하다. 쿠바 이민자 출신인 그는 히스패닉계 여성으론 처음 연방 하원의원이 된 기록을 갖고 있다. 2006년 11월 방영된 영국 채널4 방송의 다큐멘터리 ‘카스트로를 암살하는 638가지 방법’에 출연해선 “누군가 피델 카스트로나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자를 암살한다면 환영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부시 집권 시절 이라크전쟁을 지지했고, 이란·시리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엔 개혁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주류와는 달리 동성애자의 군 복무 허용을 지지한다.

오바마가 2008년 대통령 당선 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퇴짜 맞은 일화는 유명하다. 로스-레티넌은 전화를 건 오바마가 하원의원 당선을 축하하며 신분을 밝히자 라디오 방송국에서 걸려온 사기 전화라고 생각하고 끊어버렸다. 이어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가 전화했지만 다시 퇴짜를 놨다. 그러다 민주당의 하워드 버먼 외교위원장이 직접 사실을 확인해 준 뒤에야 “대통령인 줄 모르고 무례를 저질렀다”고 사과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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