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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교역

고대 카르타고인들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 불리던 지브롤터 해협 어귀를 넘어 무역을 하곤 했다. 상대는 아프리카 북부의 리비아인이었다. 인종도 다르고, 말도 안 통하고, 거래 관행도 달랐다. 그럼 어떻게 물건값을 정하고, 대금을 결제했을까.

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두 집단 사이엔 여러 시행착오 끝에 독특한 거래 관행이 자리 잡게 됐다. 카르타고인들은 상선을 몰고 아프리카 해안에 도착하면 싣고 온 화물을 내려 해안가에 일렬로 죽 늘어놓았다. 그리고 전원이 배로 돌아와 연기를 피웠다. 현지인들에게 상선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를 본 리비아인들은 해안가로 나와 물건들을 살펴본 뒤 살 의향이 있으면 적당량의 황금을 화물 옆에 놔두고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럼, 카르타고인들이 해안가로 다시 올라와 황금의 양을 살펴봤다. 기대에 비해 적다 싶으면 짐과 황금을 모두 그대로 두고 다시 배로 돌아갔다. 값을 다시 불러 보라는 의사 표시였다. 리비아인들은 황금을 더 보태 놓고 또 멀리 떨어진다. 카르타고인들이 황금을 집어 들고 돌아갈 때까지 양측은 그런 식의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카르타고인들이 짐을 놔둔 채 황금을 집어 들고 떠나는 순간, 곧 거래가 성립했던 것이다.

이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대목이다. 전설이 아니라 실제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 인류학자들은 중앙아프리카나 스리랑카의 일부 종족이 그런 식의 거래를 아직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서로 다른 종족 간에, 별로 친하지 않은 부락 간에 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침묵교역’ 또는 ‘무언(無言)무역’이라고 한다. 협상이나 흥정이 대면접촉 없이 이뤄지기에 붙은 이름이다. 인격적인 접촉을 원하지 않는 이질적 집단 사이의 거래다. 상호불신 탓에 생겨난 거래지만 역설적으로 룰을 잘 지켜야 가능한 거래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이 값에 합의하고 납득한다는 것, 이는 거래의 전제조건이다. 사는 쪽이 값을 와장창 후려치거나 파는 쪽이 어마어마한 폭리를 취하는 경우가 물론 있다. 하지만 그래선 지속 가능한 거래를 하기 어렵다. 언젠가 마찰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거래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정 가격에 대한 지불은 중요하다. 지불이라는 뜻의 영어
‘payment’가 평화를 의미하는 라틴어 ‘pacis’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값을 제대로 매겨 지불하는 것 자체가 평화를 의미한다는 얘기일까.

그런데 평화로운 지불은 현대에도 쉽지 않은 과제인 모양이다. 지난달 경주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이 ‘환율은 시장에 맡긴다’고 합의했는 데도 환율을 둘러싼 갈등은 재연되고 있다. 통화 가치, 즉 돈값을 두고 서로 납득할 만한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카르타고인이나 미개인들은 침묵으로도 가격을 절충하고 합의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11일 서울에 모이는 G20 정상들이 못할 리 없다.
이번 주말, 환율 전쟁의 ‘종전 선언’을 기대해 본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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