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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스승 보호막 벗어나 홀로 선 ‘철의 여인들’

첫 방한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
이번이 첫 방한이다. 이틀간의 짧은 체류 기간, 밀도 높은 일정을 소화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 김황식 국무총리와 면담, 주한 독일 기업인 간담회 외에 이화여대 방문 행사가 잡혀 있다.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이화여대생들에게 강연도 한다. 지난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이화여대를 방문, 감성외교를 펼친 것과 비슷한 컨셉트다. 김 총리 면담은, 총리가 1978년 독일 마르부르크필립대에서 1년간 수학했는데 이를 고리로 독일 측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G20 서울 정상회의서 주목받는 여성 지도자 4인


메르켈은 2005년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연소, 첫 동독 출신이란 기록으로 총리에 올랐다. 실용주의와 타협정신, 조용한 카리스마로 전후 독일의 위상을 최고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6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유럽의 명실상부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메르켈은 정치인 이전에 과학자였다.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루터교 목사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동베를린에서 자랐다. 라이프치히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77년부터 90년까지 동베를린 과학아카데미에서 양자화학을 연구했다. 89년, 동독의 민주화운동 단체에 들어가면서 정치에 발을 디딘 그는 독일 통일 2개월 전 기민당(CDU)에 가입해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헬무트 콜 총리가 91년 그를 여성청소년부 장관, 94년 환경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98년은 메르켈 정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콜의 선거 패배로 당 사무총장을 맡게 된 그는 ‘정치적 양부(養父)’ 콜 총리가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리자 당원 가운데 처음으로 콜의 사퇴를 요구했다. 배신자라는 비난도 들었다. 2005년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를 꺾고 독일 전후 제8대 총리에 올랐다. 2009년 총선에서 승리, 연임에 들어갔다.

90년대 대중에 비친 메르켈의 이미지는 촌스럽고 고루했다고 한다. 패션·헤어스타일이 볼품없고, 만났을 때 지루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그런 이미지가 정치가도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포츠담의 리버럴연구소 데트마르 도에링 소장은 “독일 국민은 오히려 메르켈의 스타일에서 실용주의와 신뢰를 읽게 됐다”고 했다. 한 번 이혼한 메르켈은 98년 베를린 출신의 화학과 교수 요하임 사우어와 재혼했다. 자녀는 없다. 학창 시절 수학과 과학·언어 영역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영어·러시아어가 유창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독일은 중국·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외교를 펼쳐 온 경향이 있다”며 “메르켈 총리의 방한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홀로서기 시험’ 페르난데스 아르헨 대통령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서울을 찾게 됐다.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른 지 열흘밖에 안 됐다. 지난 1일 상복을 입고 업무에 복귀한 페르난데스에게 이번 방한은 ‘네스토르의 꼭두각시’란 야권의 비판을 불식하고, 독자적 국정 운영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2003~2007년 재임한 키르치네르는 페르난데스가 바통을 이어받아 대권에 오른 뒤에도 아르헨티나의 정책 결정에 중심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그 스스로 강한 정치인이다. 남미의 대처, 남미의 힐러리로 불린다. 중산층 가정의 변호사 출신으로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든 뒤 대선에 뛰어든 점이 힐러리와 비슷하다. 힐러리와 달리 페르난데스는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는 75년 대학 시절 만난 세 살 연상의 키르치네르와 결혼한 뒤 남편의 고향 산타크루스로 갔다. 변호사로 활동하다 91년 남편이 산타크루스 주지사가 되자 부주지사로 함께 정치를 했다. 2003년 키르치네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땐 상원 의원으로 남편을 도왔다.

2003년 총선은 ‘아내들의 전쟁’으로 불렸다. 페르난데스가 에두아르도 두알데 전 대통령(2002~2003년 재임)의 부인 힐다 곤살레스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맞붙었고 승자는 페르난데스였다. 국회의원 시절 페르난데스는 여성·인권 이슈에 목소리를 높였다. 대중적 이미지, 외모와 건강, 몸매 관리에 집착한다는 얘기도 많다. 페르난데스 부부는 언론과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았으며 야당과도 비타협적이었다.

키르치네르의 사망 이후 야당·언론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 화해와 타협 정책으로 전환하라고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페르난데스는 남편 장례 후 국영 매체에 출연, “35년간 내 삶과 투쟁, 이상(ideals)을 함께한 동지를 잃어버린 슬픔”을 얘기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지만 가장 힘든 때는 아니다”며 국정 운영의지를 내비쳤다. 외교부 측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서울 방한에서 G20 공식 행사와 다른 나라들과 양자회담 외에는 별도의 행사를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잡히지 않았다.

러드 누른 길라드 호주 총리
2006년 말 케빈 러드가 이끄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첫 여성 부총리 겸 교육·고용장관이 된 뒤 승부수를 던져 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6월 러드 총리와 충돌한 끝에 집권 노동당 대표 겸 총리로 선출됐다. 호주 역사상 첫 여성 총리다. 거침없는 화술과 호탕한 성격으로 호주 정가의 ‘여장부’로 통한다.

길라드는 영국 웨일스에서 온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그의 어머니는 한 인터뷰에서 “길라드가 만성 폐질환을 앓았는데, 의사가 따뜻한 기후에서 살지 않으면 제대로 클 수 없다고 해 호주로 왔다”고 했다. 길라드가 다섯 살 때였다.

애들레이드대·맬버른대에서 예술과 법을 공부한 길라드는 83년 호주학생연맹(ANU) 회장이 되면서 정치인의 싹을 보였다. 변호사로 활동하다 96년 빅토리아주 야당 대표인 존 브럼비(현 빅토리아주 주총리)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입문, 2년 뒤 맬버른 랄로의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인 길라드’로 탄생했다. 지난 7월 연방 의회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 60년 만의 ‘헝(Hung) 의회(여야 모두 의석이 과반이 안 되는 상태)’에 직면하자 9월 녹색당 및 무소속과 연정을 수립하고 러드 전 총리를 외교장관에 임명했다.

길라드는 패기 넘치고 활발한 정치인이다. 무신론자임을 자처한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동거인이 있다. 수도 캔버라와 동거인 팀 매티스가 있는 맬버른의 집 사이를 오간다. 매티스는 전직 미용사다. 영국 텔레그래프지에 따르면 멜버른에서 휴식도 취하면서 그의 ‘빨간머리’를 다듬고 온다. 길라드 총리의 최대 약점은 외교 경력이 전무하다는 것. 국제행사에 적극 참석하며 애를 쓰고 있다. 그도 첫 방한이다.

전·현직 이례적 동반 호세프 브라질 당선자
지난달 31일 브라질 대선에서 최종 승리했을 때 호세프는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 신흥경제발전국, 브라질을 이끌며 80%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65) 대통령의 ‘분신’인 데다 게릴라 출신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 때문이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두꺼운 안경에 ‘3023’ 죄수 번호판을 들고 있는 고수머리 여학생, 즉 30년 전 호세프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호세프의 아버지는 불가리아 출신이다. 형편은 꽤 괜찮았다고 한다. 10대 후반,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가담한다. 70년부터 2년 정도 옥살이를 했다. 출소한 뒤 남부 포르투알레그리시 등에서 관료로 일했다. 에너지 관련 업무가 많았다. 2001년 노동자당(PT)에 가입, 2002년 룰라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에너지 정책을 입안했다. 호세프를 눈여겨본 룰라는 집권과 함께 그를 에너지장관으로 발탁했다.

호세프는 숫자 암기 능력이 특출 나고 파워포인트 등 멀티미디어의 달인이라고 한다. ‘불같은 성격, 거침없는 추진력, 배짱을 가진 여자’가 이번 대선에 출마하기 전 따라붙은 형용사였다. 욕쟁이, 증기기관차, 철의 여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2006년 룰라는 호세프에게 인프라 투자를 통한 성장촉진프로그램(PAC)을 주도하도록 지시했다. 캠페인 때 룰라는 호세프를 ‘PAC의 어머니’로 불렀다. 룰라의 ‘분신’이란 말은 선거에 큰 힘이 됐다. 도수 높은 안경도 벗고, 눈가 잔주름을 없애고 옷차림도 바지 일색에서 탈피해 이미지 변신을 했다. 두 번 이혼했다.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 난 딸이 지난 8월 출산해 할머니가 됐다.

임기를 2개월 남겨 둔 현직 대통령이 후임자를 외교 무대에 동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같은 당 출신이어도 전·현직의 묘한 긴장, 견제가 있기 때문이다. 통합의 리더십으로 인구의 11%에 달하는 빈곤층을 구제, 브라질의 체질을 바꿔 놓은 룰라이기에 가능하다는 평이다.

호세프는 서울에서의 전 일정을 룰라와 함께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의 정상회담 때도 동석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호세프 당선자는 2005년 룰라 대통령의 국빈 방한 때 에너지장관으로 수행, 한국의 산업시설을 돌아봤고 2008년에도 수석 장관으로 방한한 적이 있다”며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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