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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영화 ‘젓가락’으로 세 번째 메가폰 서세원





“아버지 찾으러 대폿집 많이 다녔죠”







1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건물에서 서세원(54)을 만났다. 그가 감독을 맡은 영화 ‘젓가락’이 지난달 28일 개봉한 것이 계기였다. ‘납자루떼’(1986년)·‘도마 안중근’(2004년)에 이어 그가 메가폰을 잡은 세 번째 영화다. 인터뷰에서 서 감독은 영화보다는 ‘인간 서세원’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했다. “거만하다”며 그를 비판했던 사람들에 대한 불쾌감도 간간이 드러냈다. 하지만 “이젠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도 했다.



글=성시윤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호리호리한 몸매는 TV에서 ‘서세원쇼’를 진행하던 2002년 당시 그대로였다. ‘영화감독’보다는 ‘연예인’의 스타일에 가까웠다. 첫 질문으로 ‘젓가락’을 꺼냈다.



 “흥행할 영화는 아니에요. 훗날 재평가를 받을 영화지. 대폿집 구전가요라는 게 우리 문화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도심개발 하면서 다 없어졌잖아요. 보실 분은 보고, 안 볼 분은 안 보면 그만인 영화죠. 솔직히 개봉도 못 할 줄 알았어요.” ‘젓가락’은 1970년대 ‘영춘옥’이라는 대폿집을 배경으로 한 ‘휴먼 코미디’다. “술을 마셔야 술을 팔고, 술을 팔아야 돈을 번다”며 손님과 흥청흥청 어울리는 대폿집 여주인과, 전교 1등 여고생 딸과의 소통과 화해를 담은 영화다.



● 젓가락을 볼 만한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50대, 60대인데 이 양반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저예산 영화로 만들다 보니 마케팅 예산을 쓰는 것도 문제고요. 100만원 들여서 포스터 1만 장 찍은 게 전부예요. ‘더 이상 실패는 싫다’는 게 요즘 내 지론이거든요.”



● 그간 실패를 많이 맛보셨지요.



 “실패 반, 성공 반의 인생이었죠. 누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내가 보니까 실패는, 실패를 불러요. 소작이라도 계속 영화 하려면 자금·생각·행동을 아껴야 한다는 게 이번 영화 제작 전략이었어요. 서세원을 씹기 위해서라도 (영화) 볼 사람은 보겠죠.”



● ‘납자루떼’ 등 이전에 감독한 영화 도 흥행엔 성공 못 했죠.



 “제가 감독을 한 영화는 모두 빛깔이 똑같아요. 스토리 자체가 흥행과는 관계 없는 것들이죠. 그리고 카메라 움직임이 거의 없어요. 정지된 화면이 많죠. 내가 감독하는 영화는 흥행은 배제하고, 나만의 색깔을 갖고 싶었어요. 하지만 내가 제작을 맡고, 여러 사람과 컨소시엄을 이루어서 하는 영화는 흥행을 봐야죠. 제가 제작한 ‘조폭마누라’ ‘긴급조치 19호’ ‘4발가락’ 같은 영화들은 흥행 코드를 갖고 있었죠.”



● 왜 영화를 만들죠.



 “제가 개그맨 데뷔보다 영화를 먼저 했어요. 영화 연출부 겸 배우를 했죠. 개그맨 데뷔 하기 전에 ‘머저리들의 긴 겨울’(1980년)이라는 영화에서 주연을 했어요. 당시는 미국에서도 더스틴 호프먼처럼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외모의 배우들이 쏟아져 나오던 때예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대학생을 갖다가 영화로 만들자는 붐이 있었어요. 명동에서 길 가다 픽업이 됐죠. 그러다가 라디오 얘기 손님으로 출연하면서 방송 데뷔를 했죠.”



● 영화계에서 서 감독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가요.



 “영화계 1세대, 2세대랑은 모두 친해요. 안창복 촬영감독이라고 연세가 여든 넘은 분이 있는데, 이분이랑 제가 영화를 찍어요. 그런데 요즘 영화계 사람들은 내 과거를 모르니까 ‘서세원이 ‘조폭마누라’ 제작하면서 로또를 맞았다’고 생각하죠. 영화계에서 저는 ‘고향으로 돌아온 연어’인데, 영화계 사람들은 저를 ‘어디서 놀다가 온 붕어’쯤으로 생각해요.”



● ‘젓가락’이 대폿집 얘기인데, 대폿집 추억이 많은가요.



 “제20대 초반까지는 대폿집이 많았어요. 박철수 감독 따라 다니며 영화 하던 때죠. 그런데 도심재개발 하면서 다 사라졌어요. 청계천도 막고 하던 때니까. 대전, 부산 살 때 어머니가 ‘아버지 모시고 와라. 저녁 먹게’ 하시면 대폿집으로 아버지 찾으러 갔죠. 아버지가 술집에서 여자들과 함께 술 드시면서 놀고 계실 때요. 요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요즘 어머니들 같으면 난리 칠 일이니까.”



● 영화 포스터에 ‘구전가요 완전복원’이라고 쓰여 있네요.



 “예전에 대폿집 경영했거나, 그런 데서 일했던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해서 잘 안 나오려고 하시는데…. 개인적으로 추적해서 전남 영광, 부산, 대구, 포항 이런 데 다니면서 사람들 만나고 채록을 했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들은 것을 통합해서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지방마다 구전가요도 스타일이 다르니까요.”



● 개그맨 중 정선희·남희석·이수근씨가 젓가락에 출연했죠.



 “데뷔 때부터 저랑 친한 후배들이에요. 이 친구들로서는 나랑 친하다는 이유로 인터넷에서 공격을 받을 수도 있죠. 출연 제의할 때도 제가 많이 망설였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 중 망설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도 내가 인생을 잘 살았나 보다 했지요.”



● 술을 좋아하시나요.



 “못 먹어요. 입에도 못 대요. 그런데 연예계에서는 술을 무지하게 잘 먹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요. 골프도 120개 치는데, 내기 골프를 되게 좋아하는 사람으로 돼 있고. 하여튼 이상하게 소문이 나 있어요.”



 ‘개그맨 서세원’은 2002년 이후 최근까지 TV 연예프로그램보다는 시사뉴스에 주로 등장했다. 영화 홍보 목적으로 방송국 PD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혐의, 법인세를 포탈했다는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다. 그는 2006년 대법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 받았다.



● 한 시대를 풍미한 개그맨인데, 대중의 심리를 잘 알지 않나요.



 “돌아보니까, 내가 감각이 앞선 게 아니라, 등 떠밀려서 온 것 같아요. 주변에서 ‘잘 한다’ 하니까…. 요즘에야 나를 돌아봐요. 그래서 이제는 무리한 짓을 안 하죠. 옛날부터 이랬어야 했는데….”



● 세상과 왜 불편해졌다고 생각하나요.



 “보통 연예인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눈물 흘리며 “죄송하다” 하고, 봉사활동 하면서 손을 내밀잖아요? 그런데, 나는 손을 안 내밀었어요. 이전의 내 인터뷰를 보면 내가 ‘죄송하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죄송할 일을 한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혹자는 저더러 ‘다시 방송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방송을 해도 서세원이고, 안 해도 서세원이에요.”



● 최근 연예인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뉴스가 많은데.



 “유명인이라는 것이 대접을 받는 대신에 의무도 커졌죠. 그러니 행동을 잘 해야지요. 우리나라는 워낙 좁은 나라니까, 연예인들이 의무에 대해 더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교인이니까, 저도 더 겸손해야지. 지금은 많이 겸손해졌어요.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나 겸손해졌어요. 미안해요’ 할 수는 없잖아요.”



 서세원 감독의 사무실 벽면에는 대형 사진이 두 개 걸려 있다. 그가 다섯 살 때 찍은 흑백 가족사진 하나와 풍상(風霜)을 거의 타지 않은 듯한 아내 서정희(50)씨의 2년 전 독사진이다. 반대편 벽면에는 성경 구절을 손글씨로 쓴 족자가 서너 장 붙어 있었다.



● 가족사진을 보니 여유 있는 가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자로 살았어요. 아버지가 청주·부산·동대구역장 이런 것을 하셨어요. 늘 유복하게 컸어요. 철이 들 만하니까, 연예인으로 유명해졌어요. 먹고사는 것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불편이 없었죠.”



●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가족들이 힘들어 했겠습니다.



 “아내는 엄청난 교인이라 찬송가 두 방이면 모든 곤란을 이겨내요. 우리 딸 동주(27)는 그때 MIT 공대 수학과에 들어갔고, 우리 아들 동천(25)이도 와세다 대학에 들어갔어요. 오히려 잘 풀렸죠.”



● 연예인이라 바빠서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못 보내셨죠.



 “ 아니에요. 저녁은 꼭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먹었어요. 그래서 어떤 날은 저녁을 세 번 먹기도 했죠. 집에서 나가서 또 먹었으니.”



● 자녀들은 지금 무엇을 하나요.



 “딸은 최근 시집을 갔고, 아들은 일본에서 들어와 성균관대를 다녀요. 아들 놈은 아빠 때문에 아주 괴로워했죠. 와세다 대학에서 인디밴드를 했고, 국내에 들어와 홍대 클럽에서 연주도 했어요. 그런데 ‘서세원 아들’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인터넷에서 총공격을 받았지. 그래서 음악을 못하는 아픔이 있었어요. 걔가 하고자 하는 건, 연예인이 아니라 인디밴드였죠.”



● 부부 사이는 어떠신가요.



 “친해요. 부부 싸움은 거의 안 해 본 것 같아요. 보통 어려움이 오면 부부 간에 ‘네 탓 내 탓’ 하잖아요. 이 시대 젊은 부부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부부 간에는 절대로 원인을 추적하지 말라’고요. 현실의 어려움이 오면 ‘우리 부부가 이 어려움 때문에 더욱 연합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뭉치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j 칵테일 >> “이 오빠는 장교가 아니란다” “영자도 여대생이 아니랍니다”…











영화 ‘젓가락’(아래 사진)은 1970년대에 서민들이 고된 일과를 마치고 막걸리로 회포를 풀던 대폿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폿집에선 여주인과, 그 밑의 ‘아가씨’ 두셋이 손님들 술상에 함께 앉아 술을 마셨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주객(主客) 구분 없이 젓가락으로 장단 맞추며 노래를 불렀다. 대폿집에서 불리던 노래는, 제도권의 대중가요이기보다는 가사를 패러디한 구전가요가 많았다. ‘젓가락’엔 서른 곡 정도의 구전가요가 등장한다. 70년대에 서민들이 실제 불렀던 구전가요다. 이들 노래에는 탈(脫)농촌·군사문화·반공이데올로기·고도성장 등으로 압축되는 당시의 시대상과 풍자가 녹아 있다. 고향을 떠난 청춘은 “영자야, 내 동생아 / 몸 성히 성히 성히 잘 있느냐”고 노래하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가 됐으나 저임금 때문에 “하루에도 한 갑 두 갑 합쳐서 열두 갑 / 치마 속에 감추고서 정문을 나오는”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 민초들은 “술집에서 술에 취해 동무 동무 하는 자 / 이른 아침 산 위에서 배낭 메고 내려오는 자/ 모두 다 신고해서 백만원씩 타봅시다”라고 노래 부르며 ‘간첩 의심자의 유형’을 외우기도 했다. “이 오빠는 장교가 아니란다 / 훈련소에서 뺑뺑이 도는 쫄병이란다” “영자도 여대생이 아니랍니다 / 장터에서 술 따르는 아가씨란다” “대령·중령·소령은 호텔방에서…”라며 군사정권 시대의 신분사회에 대한 불만을 털어냈다.



KBS 가요무대 자문위원 이준희(38)씨는 “당시 제도권 가요들은 사전심의제도에 따라 엄격한 검열을 받았다”면서 “이렇다 보니 사회적 불만을 풀 수 있는 배설구 역할로 구전가요가 애용됐다”고 말했다. 그는 “월북 작가들의 노래가 1965년에 공식적으로 방송 금지되면서, 이들 노래의 멜로디가 구전가요에 쓰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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