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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세계 첫 랩톱·폰 오케스트라 창안자 거 왕

세계를 휩쓸고 있는 스마트폰 열풍, 그 중심엔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이하 ‘앱’)이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음악·음향학연구소(CCRMA) 소장 거 왕(Ge Wang·32) 교수는 이 ‘멋진 신세계’의 맹주 중 한 사람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음악 앱 ‘오카리나’의 개발자, 세계 최초의 랩톱 오케스트라, 모바일폰 오케스트라의 창안자, 실리콘밸리 대표 앱 개발사 ‘스뮬’의 공동 창업자. 또한 공학박사 출신의 음대 교수, 중국계 이민 1.5세대인 그는 학문·직업·인종·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전형적인 ‘통섭 천재’다. 넘치는 창의력, 남다른 도전정신으로 새 영역을 개척해 온 그와 여러 차례 e-메일을 주고받았다.



“변화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다, 사람이다”
“나도 내가 뭘 하는지 잘 몰라 … 흥미가 이끄는 대로 할 뿐”

이나리 기자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 ‘아이폰에 촛불 켜는 앱’

세계의 ‘촛불’ 연결할 수도




중국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랑랑. 막 오케스트라 협연을 끝낸 그에게 앙코르 요청이 쏟아진다. 스타인웨이 피아노 앞에 앉는 대신, 그가 돌연 꺼내 든 건 태블릿PC ‘아이패드’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드리자 거짓말처럼 청아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온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벌들의 비행’이다. 놀란 청중은 박수와 환호를 쏟아낸다. 흥이 난 랑랑은 아예 두 손으로 아이패드를 ‘연주한다’. 지휘자까지 손을 뻗어 한몫 거든다. 지난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데이비스 심포니홀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이 장면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은 1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랑랑이 연주한 것은 애플 온라인 장터 ‘앱스토어’에 올라 있는 ‘매직 피아노’다. 이를 만든 이가 바로 거 왕 교수다.



● 하지만 최대 히트작은 역시 ‘오카리나’ 아닌가?



 “그렇다. 지금까지 250여만 명의 아이폰 사용자가 내려받았다. 아이폰 마이크에 숨을 불어넣으면서 터치패드에 나타난 ‘가상 숨구멍’을 막았다 열었다 하면 진짜 오카리나(도자기 재질의 입으로 부는 악기) 같은 소리가 난다. 소셜 네트워크 기능도 있어 자신의 연주를 세계인에게 들려줄 수도 있다. 이 앱 연주 동영상이 유튜브에만 1200개가량 올라 있다.”



● ‘아이 앰 티페인(I am T-pain)’ ‘소닉 라이터’ 같은 앱들도 히트를 쳤다.



 ‘앞의 것은 미국 힙합계에서 기계음 효과를 가장 잘 쓴다는 래퍼 티페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앱을 구동한 뒤 아이폰 마이크에 대고 노래하면 스피커로 기계음 효과가 입혀진 목소리가 나온다. 소닉 라이터는 시각 효과를 노린 앱이다. 아이폰 화면을 손으로 살짝 긁으면 촛불이 켜진다. 마이크에 숨을 불어넣는 강도에 따라 촛불이 흔들리거나 꺼지기도 한다. 이 앱을 내려받은 아이폰을 다른 아이폰에 가까이 대면 상대편에도 불이 켜진다. 이 역시 오카리나처럼 세계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다. 가상 촛불이 켜진 상태에서 불꽃을 두 번 터치하면 세계지도가 나타난다. 거기 떠오른 노란 점들은 각지에서 이 앱을 실행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오카리나도 그렇지만 소닉 라이터는 특히 세계 네티즌들로부터 ‘인간 상상력의 지평을 넓혔다’는 찬사를 듣는다. 왕 교수가 지금껏 개발한 아이폰 앱은 모두 8개다. 총 600만여 다운로드를 기록해 앱스토어에서만 700만여 달러(약 78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 그가 앱 개발을 위해 창업한 ‘스뮬’은 미국 경제가 어렵던 지난해 말 800만 달러(약 89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스뮬(Smule)’은 무슨 뜻인가.



 “소리를 의미하는 ‘소닉(Sonic)’이란 단어와 아이작 아시모프 소설 『파운데이션』에 등장하는 돌연변이 초능력자 ‘뮬(Mule)’의 이름을 합성한 것이다. 창업 당시 우리에겐 음악과 컴퓨터과학을 자유자재로 융합할 수 있는 초능력이 필요했다(웃음).”











● 프린스턴대 컴퓨터공학 박사과정 중 노트북PC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랩톱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컴퓨터 과학의 엄청난 잠재력과 전통적 오케스트라 음악 작업을 융합해 보고 싶었다. 이를 바탕으로 스탠퍼드에 오자마자 ‘모바일폰 오케스트라(MoPhO)’를 만들었다. 지난해 말 첫 콘서트를 열었는데 세계 언론과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오카리나 앱이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라면, ‘MoPhO’는 휴대전화 악기로서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작업이다. 무엇보다 이런 일들은 내 세 가지 열정, 즉 음악, 컴퓨터 공학, 그리고 ‘뭔가를 만드는 재미’의 완벽한 결합을 의미한다.”



 이런 일련의 실험과 성과들로 인해 그는 미국 유명 잡지 ‘크리에이티비티’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50인’에 2008년, 2009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최근 1년 새, 세계 정보기술(IT)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애플 신제품 발표 무대에 네 차례나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 음악과 컴퓨터공학의 접목이란 주제를 파고들게 된 계기는.



 “음악은 강력하다. 논리 같은 건 필요 없이 인간 감각을 파고들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도 강력하다. 우리 안의 생각·관념을 구체화·현실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를 깨달은 뒤 대학에 진학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둘을 결합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



2 아름다운 음악, 강력한 컴퓨터

이 둘을 결합하지 못할 이유가…




● 전혀 다른 학문과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 중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하,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내 관심과 흥미가 이끄는 대로 열심히 할 뿐이다.”



● 9살에 미국으로 이민한 게 도움이 되나.



 “내가 중국과 미국의 문화·언어·사고방식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던 건 대단한 행운이다. 이건 마치 컴퓨터와 음악 작업을 동시에 하는 것과 유사하다. 어떤 분야끼리든 경계 간 교차영역과 상호작용의 크기는 광대하다. ‘통섭’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다.”



● IT 발달로 인간의 일과 소통, 놀이 방식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그 핵심엔 뭐가 있을까.



 “‘사람’이다. 보다 정확히 말해,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커졌다고 할까. 발달한 기술을 통해 사고방식과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기술 그 자체는 결코 변화의 핵심이 될 수 없다.”



● 사회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우리는 정말 특이한 시대에 살고 있다. 매일 엄청난 변화가 휘몰아친다. 기존 정보, 삶의 방식은 물론 우리 자신마저 끊임없이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삶의 질 혹은 가치는 너무나 사소한 것이 돼 버렸다. 인류 역사에 이렇게 골치 아픈 시대가 있었던가. 변화 가능성을 수용하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만이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 학계나 산업계에 ‘통섭’이 자리 잡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는 CCRMA와 스뮬이 항상 시도해 온 것이다. 우리는 ‘인간’과 ‘기술’이란 매우 이질적인 것들을 융합해 사람들이 놀고 일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려 한다. 이를 위해선 기존의 것을 개선하려는 욕망, 옛것의 폐기를 겁내지 않는 심도 깊은 실험, 사람에 대한 이해 추구, 이 셋의 결합이 중요하다.”



● 머릿속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게 그것은 수많은 실험과 조사, 연구를 의미한다. 또 하나는 내 박사논문을 지도한 프린스턴대의 페리 쿡(Perry Cook) 교수가 해준 말인데 ‘무엇을 하든 미적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작업은 바로 이 양자(실험과 미학)의 결합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작곡이든 비즈니스든 소프트웨어 개발이든.”



● 융합과 통섭이란 관점에서 볼 때 아이폰 또는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점이라면.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신기술의 이정표가 된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 것이다. 애플은 ‘컴퓨터가 뭘 하길 원하는가’가 아닌 ‘사람들이 (컴퓨터로) 뭘 하길 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컴퓨터공학의 선구자 벤 슈나이더맨(Ben Shneiderman)이 한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전의 컴퓨팅은 ‘컴퓨터가 뭘 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새로운 컴퓨팅은 ‘사람이 컴퓨터로 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 당신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작업을 통해 세계가 좀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음악 만드는 과정을 민주화하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나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창조적’이란 철학을 갖고 있다. 전문 아티스트뿐 아니라 누구나 음악을 쉽게 만들고 연주하며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 또 모바일 기기는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합주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언젠가 세계 각지의 프로 음악가들과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지구를 가로질러 아이폰으로 앙상블을 만들고 콘서트를 여는 날이 올 것을 믿는다.”



● 지금처럼 복잡하고 압박이 심한 사회에서 그런 이상과 가치관을 지키는 게 가능할까.



 “장기적 비전을 단순하게, 훼손 없이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순간순간 단기적이고 전술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장기적 목표와 비전을 염두에 둔 것이어야 한다. 목표와 이상에 다다르는 길은 수없이 많다. 뭘 어떻게 하게 될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다.”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즉 응용 프로그램의 줄임말이다. 흔히 ‘앱(App)’이라고 부른다. 워드 프로세서부터 게임, 길 안내 등 PC나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쓸 수 있는 각종 소프트웨어를 통칭한다. 요즘은 네이버·트위터 등 각종 인터넷 서비스업체뿐 아니라 스타벅스 같은 오프라인 기업들까지 전용 앱을 만드는 추세다.



앱스토어(Appstore)



2008년 7월 문을 연 미국 애플사의 온라인 애플리케이션 장터다. 세계 각국의 개발자 누구나 자신이 만든 앱을 이곳에 올려 팔 수 있다. 앱 가격은 무료부터 수백만 달러까지 천차만별이다. 사용자가 앱을 내려받으면 판매가의 70%는 개발자가, 30%는 애플이 갖는다.













거 왕 교수는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까지 그곳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수학교사 출신인 조부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늘 뭔가 만들거나 집 여기저기를 수선했다. 덕분에 그도 만들고 조립하는 일에 푹 빠졌다. 그는 “그때의 산교육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가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해 준 것도 할아버지였다. 일곱 살 때 아코디언을 사줬다. 아들이 음악에 흥미를 나타내자 부모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열세 살 생일 때 전자기타를 선물했다. “돌이켜보면 그건 꽤 용감한 선택이었다. 10대 자녀에게 ‘반항의 상징(전자기타)’을 안기다니! 하지만 선물은 제대로 먹혔다. 강력한 음악의 힘과 연주의 재미에 눈을 뜰 수 있게 됐으니.”



 하지만 그는 베짱이로만 살 수는 없었다. 조부모와 부모가 개미의 근면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중학교 시절 세차장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다. 고교와 대학 시절에는 레스토랑 웨이터로 일했다. 그 기억은 그의 삶에서 가장 멋진 추억의 하나가 됐다. 그는 “근면 또한 조부모께 물려받은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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