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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한국 사진의 왕고집, 강운구





사진 이야기 <상>





사진가 강운구(69), 언제 봐도 깔끔하다. 20년 가까이 관찰해왔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한 여름에도 면 재킷까지 갖춰 입는다. 넥타이 없는 셔츠의 목 단추는 항상 단정하게 여며 있다. 또 다른 포인트는 청바지. 잔주름 하나 없이 가운데 살짝 줄이 서있다. 여기에 중절모까지 걸치면 완벽주의자 강운구 이미지가 완성된다. 누가 봐도 견고하다. 장정 서넛이 달려들어 민다 해도 꿈쩍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실은 다큐멘터리에 충실한 사진세계, 발군의 산문 솜씨 등 3박자가 그렇다. 그게 강운구다.



 최근 그는 모종의 존재감을 더해가고 있다. 해당 장르의 좌장 급이 풍기는 어떤 분위기다. 이를 테면 단장(短杖) 짚은 노신사 서세옥(81·서울대 명예교수)선생이 예전 화랑가를 나들이할 때 잠시 보여주던 권위 혹은 무게 말이다. 모든 게 휙휙 바뀌는 요즘인지라 그 자체로 귀한데, 강운구의 새 책 『강운구 사진론』(열화당)이 그렇다. 사람을 닮아 깐깐한 사진철학으로 가득하다. 한마디로 한국사진의 원점(原點)이자, 기준을 제시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훗날에도 사람들은 “2000년대 초입에 출현한 그 책”할 것이다.



 강운구는‘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카르티에 브레송, 묵직한 휴머니즘을 전하는 유진 스미스를 합친 무게다. “요즘 세상에 다큐멘터리라니”하며 심드렁할 수도 있다. 찍는(take) 사진보다 만드는(make)사진으로 유행이 바뀐 지 오래이지만, 그럴수록 강운구가 커 보인다. 역설이다. 10여 년 전엔 낡은 듯했지만, 시간의 먼지가 가라앉은 지금 『강운구 사진론』은 ‘견고한 중심’으로 늠름하다. 책 뒤 강용석·박주석·정주하·최건수 등 50대 후배들이 강운구를 앞에 두고 벌인 팽팽한 토론은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그렇다고 미동할 그가 아니다. 외려 거꾸로다.



 주로 유학파인 젊은 세대는 “사진은 사진다워야 한다”고 선포한 강운구 앞에서 떼쓰고 부딪치며 넘어서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는 말한다. “사진 본질은 기록성이다. 그게 사진의 ‘밥’이다.” 그가 보기에 사진에는 피사체를 묘사하는 기능과 작가 내면을 담는 표현능력 등 두 길이 있지만, 다큐멘터리야말로 사진의 기본이다. 그래서 ‘밥’인데, 외국에서 뭘 좀 배워왔다고 우르르 사진의 패션 쪽에 줄 서지 말고, 이 땅에서 사진하는 자세에 충실하라는 조언이다. 집요한 강운구, 고집쟁이 강운구는 옛 원로 고(故) 임응식(1912~2001)을 연상시킨다.



 실은 잘 닦인 외모까지 흡사하다. 임응식은 예술사진 합네 하며 몽롱하던 1950년대에‘생활주의 사진’을 제창했던 원로다. 그 리얼리즘의 깃발을 강운구가 이어 받아 세련되게 다듬었다. 그래서 『강운구 사진론』은 보석인데, 그 같은 왕고집, 확신범 철학자가 문화의 각 장르마다 한 명씩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사진계에는 야구 모자가 썩 잘 어울리는 아방가르드 황규태(72), 헐렁한 옷차림을 즐기는 자유주의자 주명덕(70)도 있다. 셋은 스타일만큼 작품 방향이 확 갈라지는데,‘사진 트로이카’는 우리 사진의 밑천이다. 게다가 부지런도하니 사진하는 후배들이 긴장할 일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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