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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축의 현주소

지난달 26일 서울 남산공원에서 새로 설립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식이 열렸다. 국민의 세금과 성금이 모인 기념관이다. 설계 공모에 당선된 젊은 건축가 부부 김선현(디림건축 대표)·임영환 교수(홍익대)는 설계·공사에 4년 가까운 시간에 거쳐 ‘작품’을 만들듯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나 개관식에서 정·관계 다수 참석자들에 가려 두 사람은 앉을 자리조차 찾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① 준공식 날 건축가는 초대 못 받고
② 누가 지은 건물인지 알 수도 없고
③ 공무원·시공사 사람만 생색 내고

 이 소식이 중앙일보에 보도(29일자 27면)되자 건축가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 수 없다며 일제히 성토하고 나섰다. “건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천박한 이해를 드러내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이 기회에 비(非)문화적인 풍토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 건축가들의 모임인 새건축사협의회 홈페이지(www.ka2002.org)에도 홀대 받는 건축가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설계자인가, 들러리인가=건축가들은 국내 대표적인 건축물에도 유사한 사례가 수두룩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부나 시·도 등 지자체가 건축주인 경우에 더 심하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2005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당시 설계자 박승홍(당시 정림건축 대표·현 디엠피 대표)씨는 개관식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관계자가 “실수였다”고 나중에 해명했지만 박씨는 상한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일이 있기 한 달 전, 청계천 뮤지엄 개관식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시장과 구청장들, 시의원과 서울시 홍보를 맡은 연예인들이 하는 테이프커팅을 하는 행사를 구경만 하다 돌아왔다.



 상암월드컵경기장 개관식도 건축가가 홀대를 받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설계자 류춘수(이공건축 대표)씨는 개관식에 참석했지만 당시 축사에서는 ‘훌륭한 건물을 지은 사람’으로 시장·축구협회회장, 시공사 대표만 거론됐다. 류씨는 “당시의 낯뜨겁고 참담한 기분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완공된 서울 내곡동 시립아동병원 설계자 김상길(에이텍 대표)씨 역시 준공식에서 서성이다가 돌아온 적이 있다고 했다.



 건축가들 모르게 준공식이 열리는 경우도 많다. 서울 올림픽공원에 들어선 ‘한성백제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 김용미(금성종합건축 대표)씨는 지난달 사무실로 배달된 ‘준공기념’ 수건을 받고서야 박물관 준공식이 열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류춘수씨도 자신이 설계한 통영 해양스포츠센터의 준공식이 이미 치러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건축가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경우도 있다. 서울 인사동 전통문화거리(북인사마당·남인사마당·인사동거리)를 설계한 이동우(태하엔지니어링 대표)씨는 올 2월 서울시에 ‘민원’을 냈다. 전통문화거리 준공 기념 표지석 사진을 첨부했다. 시장과 시공자 이름이 크게 새겨진 표지석이었다. 이씨는 이렇게 썼다. “공공 디자인은 예술과 기술, 지식과 경험, 학문화 현실이 접하는 문화적인 행위입니다. 말로만 디자인 서울, 올림픽을 이야기 한다고 그리 되지는 않습니다. 디자인 서울 인사동 마당, 서울시장·종로구청장·시공사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닙니다. 디자이너의 많은 노력과 열정으로 디자인된 것입니다.” 이씨는 글 끄트머리에 이렇게 덧붙였다. “부디 디자이너의 저작권과 최소한의 존중을 요구합니다.”



 ◆한국은 문화국가인가=물론 이는 개관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설계의 가치나 디자이너의 역할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더 안타깝다는 얘기다. 건설만 있을 뿐 건축은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높다. 건축가 유걸(아이아크 대표)씨는 “아파트든, 학교든, 사무실이든 더 살기 좋은 공간을 고민하는 건축가의 참여가 더욱 필요하다”며 “건축과 디자인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로 손해 보는 것은 세금 내는 시민과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구조적 문제점도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축은 일괄시공업자가 건설 관련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턴키(turn-key) 방식으로 지어지는데, 이때 건축가들이 시공사의 ‘용역꾼’처럼 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건축가 승효상(이로재 대표)씨는 “공공건축을 이런 방식으로 짓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며 “행정편의주의, 건설우대주의가 빚어낸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그는 “건축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한국이 문화국가라기보다 야만국가에 가깝다”며 “정부가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고 적극 추진하지 않으면 문화강국은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함인선 새건축사협의회장은 3일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문화국가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 건축가들이 성명서를 내고 해당 관청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는 등 힘을 모아 움직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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