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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광화문 현판 어째 이런 일이 …





멀쩡한 신품도 일부러 색이 바래게 하거나 잔 흠을 내 앤티크(antique)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유행이긴 하다. 그래도 광화문 현판은 너무했다. 광복절 날 대통령까지 참석한 가운데 현판 가림막을 벗기고 관중의 우레 같은 박수 속에 오색 풍선 2000개를 하늘로 날려보낸 지 채 석 달도 안 됐다. 광화문에 새 현판이 걸리기까지 우리 사회는 설마 현판이 초장에 쩍 갈라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 그동안 멀쩡하게 붙어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왜 퇴출시키느냐, 경복궁 정문 이름을 ‘광화문’으로 지은 이가 세종대왕이면 당연히 한글로 표기해야지 왜 한자를 쓰느냐 등등, 다른 것을 갖고 논란을 벌여 왔다.

 근데 이게 뭔가. 정작 문제는 현판 글자가 아니라 현판의 재질인 나무였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과목에서 펑크가 난 꼴 아닌가. 이런 본말전도(本末顚倒)의 풍경이 광화문 현판뿐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물론 문화재청이나 현판 제작 관계자들의 하소연에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국회 최문순 의원(민주당)을 통해 균열 사실이 알려진 그제 저녁 문화재청은 해명자료에서 “우리나라 고유 수종인 육송은 재료의 특성상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으며, 특히 가을철 건조한 날씨에는 건조 수축으로 인해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덕수궁 ‘대한문’ 현판에도 세로로 12줄의 금이 나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 쓴 한글 현판도 수많은 균열이 있다는 것이다. 하긴, 조선 말 경복궁 중건 책임자였던 임태영(任泰瑛)이 쓴 현판 글씨의 유리 원판 사진(도쿄대 소장)에도 금이 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 균열은 결코 문화재청 해명대로 ‘미세’해 보이지 않는 데다, 무엇보다 겨우 석 달도 안 돼 이런 큰 흠이 날 수 있느냐는 소박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나무는 갈라지는 게 자연스럽지, 안 갈라지면 플라스틱이나 쇳조각”이라던데, 납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날림 공사’라고까지 매도할 생각은 없지만, 뭔가 원칙과 기본을 건너 뛴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광화문 복원 공사 과정을 기록한 책을 보면 정부가 G20 정상회의에 맞춰 복원을 앞당겨 마무리하기로 결정한 뒤 현장 실무자들이 고민하는 모습이 완곡하게나마 언급된다. ‘당겨진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전통기법만으로 복원하려던 계획을 일부 수정해야만 했다 … 전통 건축방식에 따르면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도편수와 단청수가 건축물이 충분히 자리를 잡았으며 목재가 완전히 건조됐다고 판단을 내려야 단청 작업을 진행한다. 8월 중순까지 마무리하라는 정부의 지시를 따르려면 일부 작업을 동시에 해야만 했다’(하워드 리드, 『광화문의 부활, 잃어버린 빛을 찾다』).

 어제 오후, 답답한 마음으로 광화문과 대한문을 둘러보다 대한문 옆 담길에서 나무에 글씨를 새겨 파는 장애인 조규현(50)씨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려서 오른팔을 잃은 조씨는 이곳에 16년째 자리 잡고 있어 ‘거리의 각자장(刻字匠)’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광화문 현판 균열에 대해 그는 “덜 말려서 그랬을 것”이라며 “팔만대장경은 800년이나 멀쩡한데…”라고 했다. “만약 현판을 새로 만든다면 옻칠부터 마무리하고 각(刻)을 하되, 꼭 원리원칙대로 작업하시라고 전해 달라”고 덧붙였다. 원리원칙대로. 지당한 말이다. 차라리 조씨에게 일을 맡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팔만대장경을 만든 고려인들은 경판용 목재를 3년간 바다에 담근 뒤 꺼내 썼다는 말이 구전(口傳)되고 있다. 요즘도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들 때는 나무를 5년간 말린다지 않는가. 아무리 현판은 재질과 제작 기법이 다르더라도 ‘3개월 만에 쩍’은 너무했다. 자꾸 영어 단어 쓰기는 싫지만, 앤티크와 그로테스크(grotesque)는 구별해야 하지 않겠나.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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