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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辯

“불은 은밀한 곳에서 생겨나지만 그 쓰임새는 실로 크다. 불의 본성만 어기지 않을 수 있으면 사르고 굽고 녹이고 그릇을 구울 수 있어 생물을 이롭게 한다. 그러나 그냥 내버려두고 제어하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災)을 일으킨다.



 물은 깊은 곳에서 나오지만 그 쓰임새는 실로 심원하다. 물의 본성만 어기지 않을 수 있으면 띄우고 싣고 마시고 부을 수 있어 생물을 구제한다. 그러나 물길이 흐르는 대로 막지 않으면 오히려 환란(患)을 초래한다.



 말은 미세한 데서 일어나지만 그 쓰임새는 실로 넓다. 말의 본성만 어기지 않을 수 있으면 교화시키고(化) 명령하고(令) 고지하고(告) 가르칠(訓) 수 있어 생물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함부로 내뱉으면서 조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화근(禍)이 된다.”



 당(唐)의 문장가 한유(韓愈, 768~824)의 글 ‘말을 가리는 것에 대한 풀이(擇言解)’다. 그는 불과 물로 인한 재난은 막을 수 있어도 말이 초래한 화(禍)는 막을 길이 없다며 경계했다. 택언에 조심하지 않고 교묘하고 능란하게 세 치 혀를 놀리는 것이 변(辯)이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선한 자는 말을 잘하지 않고, 말을 잘하는 자는 선하지 않다(善者不辯, 辯者不善)”고까지 말했다.



 한비자(韓非子) 역시 이런 말의 속성을 간파해 ‘듣는 법(聽法)’에서 “원래 말이란 것은 말하는 자가 많으면 믿기 마련이다. 열 사람이 말할 때는 의심스러워도, 백 사람이 말하면 반신반의하게 되고, 천 명이 말하면 믿고 그 의심을 풀고 만다”며 “눌변이 말하면 의심하고, 능변이 말하면 믿게 된다(訥者言之疑, 辯者言之信)”고 언급했다. 음모설의 생리를 일찌감치 경고한 것이다. 그는 현명한 군주라면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 말의 진위를 판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무책임한 폭로에 국회의원 면책(免責) 특권 논란이 거듭되는 것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기보다 ‘혀의 전당’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교변(巧辯), 능변(能辯), 선변(善辯)으로도 부족해 궤변(詭辯) 만들기에 골몰하는 정치권에 염증을 내고 있다. 관중(管仲)은 일찍이 ‘말은 반드시 실무에 들어맞아야 한다(言必中務)’고 말했다. 눌변(訥辯)일지라도 무실(務實)의 선량(選良)이 그리운 요즘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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