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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학교에서 체육을 배워야 살아남는다! ”




조선 총독부에서 발간한 『소학교·보통학교 체조교수서』(1924)에 실린 체조 동작 그림.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건강은 운동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사제의 언론’(은우생, 『태극학보』, 1908.3)이라는 풍자적인 글 속의 서동(書童)과 서당 선생의 대화 장면이다. 한 서동이 근대식 학교에서 체조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와서 이야기를 하자, 구세대인 서당 선생은 “체조인지 무엇인지 골병들지니!”라며 운동에 의한 건강관리를 부정한다.

 이에 서동이 다시 “체조라 하는 것은 위생상에 크게 효익(效益)이 있다는데 골병들 수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스승은 “이놈아 너희 집에서 기르는 소를 보지 못하느냐. 추수를 다 마치고 마구간 안에서 한가롭게 누워 여물만 씹을 때는 몸도 살이 찌고 강하다가, 봄 경작 때가 오면 도로 수척해지니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동물은 일반이라. 한가롭게 누워 포식하는 것 외에 위생하는 방법이 다시 있다더냐”라고 대답하였다. 즉 전통사회에서는 많이 먹고 덜 움직여서 살이 쪄야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1900년대의 ‘대세’는 스승의 이런 생각과는 다른 것이었다. “운동이라는 것은 체조나 유희로부터 시작하여 정신을 즐겁게 하며, 신체를 민첩하게 함을 위한 것이다. 이것의 효과는 혈액의 순환을 빠르게 하며 신체의 발육과 영양을 돕고 또한 뼈와 근육을 강하게 만들고, 뇌를 확장시키고, 관절을 부드럽게 만들고, 또한 습관과 직업으로 인해 생긴 질병을 예방”(‘위생설-운동 및 수면’, 『소년한반도』, 1907.3)한다는 사실이 새로운 건강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고종도 1895년 공표한 ‘교육입국조서’에서 지덕체(智德體) 교육 정신에 입각하여 체육 과목을 정규 수업 과정에 포함시켰다. 이는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세계 질서 속에서 조선인이 우등한 인종으로 개량되어 생존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었다.

 오죽하면 이 시기 소설에서도 학교에서 체육을 배운 인물들만이 육체적 위기를 무사히 모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겠는가. 그들은 “학교에서 체조를 배운 고로”(김교제, 『목단화』, 1911) 위급한 상황에서도 민첩하게 몸을 움직이고 적절히 대처한다. 반면에 “규중에 가만히 앉아서 손톱에 물을 튀기고…자기의 발로 출입하던 곳은 가까우면 부엌이요 멀면 뒷간”(민준호, 『마상루』, 1912)이었던, 학교 체육을 못 배운 주인공은 치명적인 위험을 겪는다. 그만큼 당대에는 ‘학교에 가서 체육을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오늘날 일선 학교에서의 체육 수업은 입시 준비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근대교육의 목표가 원래 지육과 덕육뿐 아니라 체육에도 있었다는 사실, 사라져가는 체육 수업 앞에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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