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07) 대범한 이 대통령





“민기식? 그놈 아주 나쁜 놈이야” “인재 내치면 안 됩니다” 설득하자
이승만, 분 삭이며 노려보더니 … 단숨에 파면 결재서류를 찢어



국군의 전력 증강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이승만 대통령이 1951년 8월 강원도 홍천의 전방부대를 시찰했을 때의 모습. 작가 박도씨가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의 사진을 정리해 제공했다.







내가 육군참모총장 자리를 떠나 국군에서 처음 창설한 야전군 사령관에 부임했던 1954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자리는 매우 중요했다. 병력 40만 명을 이끌고 휴전선 155마일의 대부분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6·25전쟁 개전 초기에는 제대로 무기와 장비를 갖추지 못해 북한군에 당한 것은 물론이고, 중공군에는 손쉬운 상대로 여겨졌던 국군이었다. 그러나 52년에 시작한 전력 증강 작업으로 발 빠르게 성장한 국군이 1야전군을 창설한 뒤에는 휴전선 대부분을 맡아 방어하는 강군으로 성장한 것이다. 나는 그 최고지휘관을 맡아서 지속적인 전력 증강 사업을 추진하던 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군 사령관으로 원주에 주둔하고 있던 나를 느닷없이 호출했다. 나는 원주를 떠나 곧장 서울의 경무대로 향했다. 경무대 집무실에 들어선 내게 이승만 대통령은 아주 뜻밖의 제안을 했다.



 “자네 말이야, 내무장관 한번 맡아 봐.” 46년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간 뒤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의 길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나였다. 수도 없이 많은 전선에서 적을 맞아 싸웠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국군의 전력을 증강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나는 마음속으로 적지 않게 놀라고 말았다.



 ‘대통령이 왜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는가’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나는 그런 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대통령에게 “저는 정치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군인으로 남겠습니다”고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대통령은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대통령은 “그래 잘 생각했어”라고 짧게 말했다. 대통령은 그러고 난 뒤 아무런 말이 없었다. 군문에서 제법 잘나가고 있던 나를 정치에 입문시키기 위해 대통령은 여러 번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대답과 자세를 보더니 자신의 생각을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정리했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다. 언뜻 보면 대통령은 일반인이 범접하기 힘든 권위가 넘쳐 보였다. 학식이 풍부해 사물과 현상을 이리저리 따져보는 날카로운 면모가 있어 아무나 쉽게 말을 걸기도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줬다. 그러나 대통령은 굵직하고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매우 합리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결코 가볍게 행동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생각을 하다가 신중하게 결론을 내리는 스타일이었다. 남의 말도 잘 경청했다. 무조건 자신의 고집만을 내세우는 ‘나이 많은 늙은 통치자’는 절대 아니었다.



 1952년 초가을 민기식 장군 건으로 경무대를 찾아간 나는 대통령의 그런 점을 믿었다. 대통령은 좋고 싫음의 호오(好惡)가 분명했지만, 옳고 그름의 시비(是非) 또한 매우 잘 가리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런 대통령은 옳은 것을 옳다고 하는 사람,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사람을 믿고 의지할 것이었다. 설령 자신의 뜻을 거스른다고 해도 시비를 분명히 하는 사람을 존중하리라 나는 믿었다.



 당시 대통령은 집무실로 찾아온 나를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는 멀리 에둘러 갈 생각이 없었다. 직접적으로 민기식 장군의 이름을 꺼냈다. 예상대로였다. 대통령의 얼굴은 순식간에 험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각하, 민기식 장군을 아시지요?”



 “민기식? 그놈 아주 나쁜 놈이야.”



 나는 대통령이 이렇게 단정적으로 인물평을 하는 경우를 접한 적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만큼 민기식 장군의 ‘서민호 의원 사건’ 판결에 커다란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의 심기를 생각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전시 중에 전선 지휘 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장교를 내쫓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무엇보다 앞섰다. 나는 작정을 하고 대통령을 설득했다.



 “각하, 민 장군은 전쟁이 터진 뒤 전선에서 열심히 싸운 군인입니다. 전투 지휘에도 상당한 재능을 보인 사람입니다. 이 정도의 지휘관을 다시 양성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도 전선이 불안한 상황인데, 이런 인재를 함부로 내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한번 용서를 해 주실 수 없습니까?”



 불만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이 대통령이 늘 보이던 버릇이 있었다. 앞에서도 소개한 내용이다. 대통령은 두 주먹을 움켜쥐더니 입에 갖다 댔다. 그 위에다가 입김을 훅-훅 거리면서 불어댔다. 기분이 나쁠 때면 습관적으로 보이는 그런 행동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러더니 대통령이 나를 바라봤다. 의자에 앉은 채로 내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야”라면서 다소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대통령에게 “없던 것으로 하십시오”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은 다시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제대로 말해 봐”라고 말했다. 나는 신태영 국방장관에게서 건네받은 ‘민기식 준장 파면, 가, 만’이라고 대통령이 직접 결재했던 서류를 꺼냈다. 나는 대통령에게 이 종이를 건네면서 “각하, 폐기하시면 됩니다. 찢어 버리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 서류를 건네받은 뒤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찢어 버렸다.



 나는 건의를 받아들여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하고 대통령 면전에서 물러나왔다. 노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점은 아팠지만, 역시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되는 사안에는 의견을 개진하는 게 마땅했다.



 대통령은 서류를 찢고 난 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역시 큰 인물이었다. 나이가 손자뻘의 육군참모총장인 내가 자신의 뜻과 배치되는 의견을 올렸지만, 시비로 따져 볼 때 판결 형량이 적다고 해서 전선에 설 장군의 옷을 벗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대통령은 감정보다는 사리(事理)를 따지는 사람이었다. 서류를 찢고 난 뒤의 표정도 오히려 밝았다. 자신의 의사가 번복이 됐다고 해서 얼굴을 붉히지 않고 오히려 편안한 표정을 짓는 대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정리=유광종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