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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마술사들 홀린 마술사 이은결









2003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TV 스탠딩 코미디 프로그램에 머리를 쭈볏 세운 청년 한 명이 등장했다. 1m87㎝의 훤칠한 키, 하얀 피부, 능숙한 말솜씨는 객석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엽서를 꺼내 들고 한 남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하던 그는, 읽고 있던 엽서를 갑자기 장미 한 다발로 바꾸어버렸다. “그녀에게 이 꽃을 선물하세요.” 객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애틋한 음악, 부드러운 동작, 의표를 찌르는 반전이 한데 어우러진 멋진 쇼였다. 마술사 이은결(29)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는 달랐다. 야바위꾼의 눈속임, 누군가를 칼로 마구 찔러대는 자극성 등 마술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판판히 깨뜨렸다. 그의 마술엔 로맨스가 있었고, 드라마가 있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마술 동호인 인구는 10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는 2006년 세계마술사연맹(FISM)이 주최한 ‘세계 챔피언십 2006’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실력도 국제 공인을 받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7년 이은결의 군 입대와 함께 국내 마술 시장은 급속히 위축됐다. 대체재는 없었다. 그래서 그가 제대를 하고, 1년6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다시 쇼를 한다는 소식에 가장 기뻐했던 이들은 다름아닌 동료 마술사들이었다. 이은결은 다시금 우리에게 판타지를 선사할까. 인터뷰 내내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주)이은결 프로젝트 제공



이은결을 만난 곳은 경기도 이천, 한 컨테이너 박스였다. 겉은 허름해 보이지만 150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그는 10여 명의 멤버들과 먹고 자며 새로운 마술쇼를 꾸미기 위해 분투 중이었다. 안에 있는 몇 가지 마술 장비나 소품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죠?”라며 도구 하나를 쓱 들어올리자 그가 기겁을 했다. “그거 2000만원도 넘는 거예요. 조심하세요.” 연습실에 있는 장비를 몽땅 합치면 10억원이 넘는다나. 화려한 쇼엔 역시 돈이 빠지지 않았다.



이은결은 작가다















그는 2007년 6월 해군 홍보단 마술병으로 입대했다. 지역 주민과의 교류라는 명목으로 노인들이 계시는 요양원을 찾아가 마술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마술 실력이 녹슬지 않는, 좋은 여건이었다. 난감한 경우도 있긴 했단다. “갑작스레 오늘 당장 연회에서 마술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곤 했어요. 도구·조명 등 사전 준비도 전혀 없이요. 마술은 그렇게 되는 게 아닌데, 사람들은 제가 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초능력자인 줄 아나봐요.”



군에선 일과 후 연장과업이란 시간이 있었다. 10평 남짓한 개인 공간에서 연습을 했다. 어떤 손놀림을 연습했을까, 어떤 테크닉을 익혔을까 궁금했다. “구상”이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마술에서 테크닉이란 건 사실 한계가 있어요. 그 마술이 어떤 포인트에서 어떻게 구현돼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기느냐가 더 중요한 거죠. 그래서 발상이 우선인 거고요, 그 모티브를 어떻게 스토리로 엮어내느냐가 중요해요. 연장 과업 세 시간에 제가 하는 거라고는 한번 떠오른 생각의 뿌리를 놓치지 않고 계속 잡는 거였어요. 마치 작가처럼요.”



이은결은 화가다



이렇게 떠오른 발상과 생각들은 ‘아이디어북’에 담겨 구체화된다. 그의 책상엔 A4 용지 수백 장이 스크랩돼 있다. 거기엔 하나의 마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결되는지, 단계별 과정이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그림 솜씨 역시 제법이다. 모두 이은결의 손때가 묻은 것들이다. 마치 영화 촬영 시 스토리 보드와 비슷했다. “일종의 설계도죠. 그림을 그려봐야 구현 가능 여부가 판별되니까요.”



이 그림은 외국의 빌더(builder)라는 마술 장비 디자이너에게 보내진다. “설계도면에선 그럴싸해 보였던 마술도 장비의 구멍 크기 1㎝ 때문에 실현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숱해요. 마술 장비 가지고 디자이너와 얘기하다 보면 물리학·화학 원리가 툭하면 나와요. 얼치기 과학자 다 되는 거죠.”



이은결은 연출가다











“마술이 얼마나 스펙터클한 장르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겠다”란 호언장담처럼 이은결은 이번 공연 첫 장면부터 화끈하게 시작한다. 순간이동, 헬기 등장, 철판 통과 등 하나하나 떼어 놓고 봐도 최고로 꼽히는 마술이 20분간 숨가쁘게 달려간다. 이름하여 ‘다이내믹 일루전’이다.



그 다음 메뉴는 추억 여행이다. 70, 80시대의 포크 음악과 가요가 들리는 가운데 코믹한 분장의 인물이 등장한다. 마술도 예전 스타일이다. 링을 이용하고, 검은 천에서 비둘기가 펑 나온다. 깜짝 놀라게 하고 가슴을 졸이게 하는 것만이 아닌, 마술이 향수와 함께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순서다.



1부가 그가 지금껏 걸어온 14년간의 마술 인생을 최고의 테크닉으로 축약해 보여주는 무대라면 2부는 미래와의 조우다. 마임도 나오며 미디어 아트와의 결합도 있다. “완성은 아니지만 내가 꿈꾸는 마술의 새 지평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말한다. 손가락 움직임만으로 허허벌판 대자연을 달리는 아득함을 보여주면서 자연의 순환을 그려내는 ‘아프리카의 꿈’은 그의 야심작이다. 전체 윤곽을 잡고, 포인트를 주며, 적당히 릴랙스를 하다 갑자기 객석을 확 놀라게 만드는 마술쇼. 이 모든 구성은 이은결의 머리에서 나온다.



이은결은 환상술사다



이번 공연 제작비는 20억원이다. 마술쇼로는 역대 최고 규모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규모로 승부를 걸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유는 라스베이거스다. “몇년 전 ‘지그프리드&로이’라는 마술쇼를 봤어요. 입이 쩍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예요. 공연장에 코끼리가 나오고 백호랑이·백사자가 돌아다녀요. 섬찟할 정도의 물량 공세였습니다.”



그가 잡은 키워드는 ‘감성’이다. “소박하지만 사람들 심장 가장 깊숙한 곳을 건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5년여의 연구 끝에 완성되는, 마지막 스테이지 ‘스노맨’에 담기게 된다. 어설프게 그린 스케치에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진행되다 결국엔 처음의 지점으로 돌아가는 원형의 구조를 띤다. “마술 역시 가장 중요한 건 관객의 감정이입이에요. 지금 이 마술을 하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환상으로 받아들이게 해야죠. 잠시나마 현실을 벗어나 관객 모두 술에 취한 듯, 어질어질하게 만들겠습니다.”



이은결의 더 일루전(the illusion)



7일부터 12월 4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

3만∼15만원. 02-501-7888



[시시콜콜] 이은결



여자에겐 매너있게 남자에겐 퉁명스럽게, 그의 파트너 앵무새 ‘싸가지’












덩치만 컸지, 중학생 이은결은 방에만 틀어박힌 채 친구도 없었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고자 어머니는 은결을 피아노·웅변 학원에 보냈다. 다 싫어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하게 된 게 마술이었다. 호기심을 갖고 혼자서 파고들어가야 하는 게 마술 아니던가. 은결의 외골수적 기질과 딱 맞아떨어졌다. 고2 때는 “대학을 가지 않겠다. 난 프로 마술사로 승부를 걸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쇼의 눈요기로 전락하긴 싫다. 영혼이 담긴 마술 자체로 승부를 걸겠다”며 순혈주의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솔직히 너무 힘들다. 워낙 꼼꼼하고 치밀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하곤 한다. 이토록 완벽주의자인 이은결도 꼼짝 못하는 동료가 있으니 바로 앵무새 ‘싸가지’다.



2002년부터 함께했으니 벌써 8년째다. 군대에도 함께 간 ‘군필조’다. “짬밥 2년 넘게 먹은 걸 아는지, 얼마나 폼 잡는지 몰라요.” 구관조처럼 능숙하진 않지만 “안녕하세요” “가지입니다”와 같은 간단한 말은 할 줄 안다. 먹는 건 사람과 비슷하다. 자장면·떡볶이·계란 등을 좋아한다. 사람도 가린다. 낯선 사람이 오면 고개를 휙 돌린다. “두 살배기 아이의 머리를 가진 거 같다”고 이은결은 말한다. 반복 훈련을 통해 카드를 콕 집어내고, 0.5초의 타이밍까지 정확히 맞출 만큼 순발력도 있다.



최고의 강점은 센스다. 이를 테면 여자 관객에겐 매너 있게 대하다, 남자 관객이 나타나면 퉁명스럽게 행동하는 식이다. 이건 “훈련만으론 될 수 없는 타고난 끼”라는 게 이은결의 설명이다. 적당히 삐쳐 있다, 갑작스레 돌변해 좌중을 웃기기도 한다. 한마디로 분위기를 쥐었다 놓았다 할 줄 안다는 얘기다. “지금 열 살이에요. 앵무새는 여든 살까지 산다니, 제가 마술 그만 둔 뒤에도 오래오래 해 먹을 놈입니다.”



최민우 기자



이은결



1981년 10월 생

서울 현대고 졸업

동아방송예술대 재학

1996년 에디슨 마술 학원을 통해

정하성 사단에 합류하며 마술 입문

2003년 세계마술사연맹

매니플레이션 2위

2006년 세계마술사연맹

제너럴매직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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