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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천천히, 조금만 더 천천히









서울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자리에 들어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서울 소격동 옛 기무사 터에 세워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공통점은? 아직 첫 삽도 뜨지 않았지만 준공 예정일이 못 박혀 있다는 것이다. 역사박물관은 2012년 5월, 서울관은 2012년 말 완공이다. 국가 상징거리의 중심축이 될 핵심 문화공간인 역사박물관, 과천에 은둔해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도심 복귀 사명을 진 서울관이 채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세워지는 꼴이다. 이토록 숨 가쁜 건립 일정을 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속전속결 밀어붙이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광화문 복원 공사가 그랬고 4대 강 사업 또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짚이는 것이 있긴 하다. 한번 떠올려 보시라. 두 건물이 완공되고 국민이 환호하는 가운데 열릴 개관식의 테이프 커팅 자리를. 그 중심에 서서 가위질을 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의 임기는 2013년 2월 중순까지다. 계산이 나온다. 한국 상황에선 쓱쓱 길 닦고 뚝딱 건물 세우는 일이야말로 치적 중의 치적이다.



 물론 대통령 자신이 이토록 무리한 건축 일정을 독려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밑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다. 까다로운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총사업비 500억원에서 살짝 빠진 484억원을 책정한 기획재정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화재 발굴조사를 생략하려 지층을 파지 않고 지상에 콘크리트를 1m 덮는 건물 리모델링 안을 내놓은 문화재청이야말로 고단수 계산기라 할 수 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사람은 또 있다.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이다. 배 관장은 서울관을 명품 미술관으로 만들어 연 관람객 300만 명이 찾아오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20세기 말부터 이어져온 세계 각국의 미술관 짓기 경쟁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성공을 기폭제로 이제 시대의 기념비를 넘어 미술관 체인 사업으로까지 번졌으니 뭐라 할 수 없다.



 좋다. 300만 명이 찾아왔다고 치자. 경복궁 옆 삼청동 길 왕복 4차로 도로는 지금도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 있을 만큼 교통 인프라가 최악이다. 여기에 서울관 관람객이 밀려들면 서울 도심부의 교통대란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와중에 대안이 나왔다. 대한항공이 명품 호텔을 포함한 ‘전통문화 관광타운’으로 개발하려고 계획 중인 경복궁 앞 옛 미국대사관 숙소 터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풍문여고, 덕성여고 등 교육시설이 인접해 있어 학교 앞 200m 안에 호텔 시설을 건립할 수 없다는 학교보건법 제6조에 걸려 소송 중인 대한항공도 난감한 처지였다. 여기에 구원투수처럼 새 청사 건립 계획을 갖고 있는 종로구청이 등장한다. 건축가 출신인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미국 대사관 숙소 터와 종로구청 터를 맞바꾸자고 제안한 것이다.



 건축계 선배들의 조언에 힘입은 김 구청장 청사진은 누가 들어도 귀가 솔깃한 묘책이다. 만약 미 대사관 숙소 터 3만6642㎡(1만1100평)에 몇 개 동의 저층 건물로 된 종로구청이 들어선다면 인사동과 안국동으로부터 이어지는 널찍한 진입로가 만들어져 교통문제가 해결된다. 구청 지하에 5층 이상의 주차장을 설치하면 주차난도 웬만큼 해소된다. 종로구 청사에 조성된 공원 안에 야외조각장을 만들면 금상첨화다. 진입로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와 정독도서관을 묶으면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못지않은 복합문화시설로 거듭날 수 있다. 구청을 찾은 민원인들 발길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넘나들 터이니 연 관람객 300만 명의 꿈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1922년 수송초등학교의 교사 자리라는 역사적 배경을 지닌 종로구청 터 또한 미 대사관, 세종문화회관 등 주변 환경을 고려하면 호텔 자리로 손색이 없다. 이 맞바꾸기가 성사됐을 때를 상상해 보자. 미술관 옆 구청은 21세기의 새로운 미술관 모델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영빈관급 호텔을 구상 중인 대한항공은 이런 설립 배경을 활용해 한 차원 높은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



 나라가 온통 G20 서울 정상회의를 잘 치르자고 난리인데 뜬금없이 어찌 그리 한가한 소리냐고 한마디 들어도 싸다. 하지만 새로 해서 건 지 2개월 반 만에 나무판이 쩍 갈라지는 광화문 현판, 4대 강 사업구간 현장에서 터져 나온 백제 유적을 보면 이런 한갓진 여유와 돌아보기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 아닐까 싶은 것이다. 테이프 커팅의 욕망 때문에 그 건물과 함께 오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재숙 문화스포츠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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