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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동토의 땅에 버려진 ‘노병’들을 데려오라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남북 간 이산가족 상봉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애처로움을 떨칠 수 없었다. 그 한 많은 세월과 애잔한 사연들을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담아낼 수 있으랴. 또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이야말로 애끊는 단장(斷腸)의 아픔의 새로운 시작일 터이다.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가슴 뭉클하게 하는 사연이 있었다. 바로 노쇠한 몸을 이끌고 나타난 4명의 국군포로였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전사자로 파악되고 있었는데, ‘살아 있는 전사자’가 된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진다고 했던가. 그들의 출현을 보면서 마치 죽은 자가 무덤에서 걸어 나온 것처럼 반가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죄책감이 마음을 억누른 것은 나뿐이었을까. 그들의 생존을 확인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동안 우리는 무얼 했나 하는 회한과 자책감 때문에 깊은 상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국군포로! 그들이 누구던가. 6·25때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다 전세(戰勢)가 부득이해 적들에게 잡힌 국군들이다. 전쟁은 끝났으나 북한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얼마나 고향 땅을 밟고 싶어 했던 사람들인가. 밤이면 밤마다 달을 보고 집으로 가기를 염원하며 기도했던 사람들이 아닌가. 또 아오지 탄광에서 중노동에 시달릴 때마다 틈만 나면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보면서도 새장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새들에게조차 자유로운 몸으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빌었던 사람들이 아닌가.

 세월은 무정했다. 그들은 북한에서 낙인찍힌 존재로 살아가며 모진 목숨을 이어갔고 어느덧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실상인즉 세월이 무정했던 것은 아니다. 국가가 무정했던 것이다. 6·25 이후 60년 동안 그들은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죽은 사람’과 ‘잊혀진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을 집 나간 ‘가출자’ 정도로 치부하지 않았던가. 실종신고를 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죽은 자로 취급한 것이 우리 국가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 가능했던 것도 그들의 희생과 헌신·조국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포로가 될 때까지 용감하게 싸워주지 않았던들 어떻게 대한민국이 자유와 번영의 공동체가 되었을 것인가.

 그런데도 그들은 동토(凍土)의 땅에 버려져 있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사력을 다해 자유의 땅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건너오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집에 가고 싶다고 통곡하며 절규하는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을 수 없다면 결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정말로 우리 국가는 무심했다. 대북포용이건, 햇볕정책이건 이른바 ‘속 빈 강정’이 아니었던가. 바이블에 나오는 착한 목자는 99마리의 양을 버려두고 길 잃은 1마리 양을 찾아 길을 나서는데, 우리 국가는 뭐하고 있었나. 대한민국이 그토록 무심하고 무능했던 거다. 우리가 자주 들어본 말이 있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라”고. 국군포로야말로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않고 국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자문하며 전장에 나갔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냉대와 외로움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가.

 뱃사람이 들려준 말이 있다. 같이 배에 탔을 때 어느 한 사람이 바다에 빠지면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하다못해 망치라도 집어들어 즉시 바다에 던져야 한다. 그래야 물에 빠진 사람이 믿음을 갖고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돕다가 물에 빠진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은커녕 아무런 의사표시도 해주지 못했다. “그대들이 나라를 위해 헌신했으니, 그대들을 반드시 집에다 데려다 주겠다”라는 약속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그러니 그들은 잊혀진 존재로 살아가면서 자신을 버린 조국을 얼마나 원망했을 것인가.

 오, 무정한 국가여! 경쟁력을 키우고 남북대화를 하면 무얼 하나. 고향 땅을 밟고 싶다고 절규하는 노병 하나 데려오지 못하는 ‘못난이 국가’를 가지고 무슨 국가경쟁력이 있다고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동토의 나라에서 황혼의 석양을 바라보며 눈물 짓고 있는 노병들을 불문곡직 데려오라. 데려와 정든 땅, 가족과 친지의 품 안에서 평화롭게 잠들게 하라.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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