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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봉은사 땅’ 만 밟혔을까









서양 유머 한 토막. 미국의 한 유대인 아버지가 유대교 신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을 걱정한 끝에 1년간 이스라엘에 보내기로 했다. 1년 후 아들이 돌아왔다. 아버지에게 감사하며 “덕분에 이스라엘에서 지내다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기가 막혀 버린 아버지는 동료 유대인을 찾아가 상담했다. “사실은 나도 아들을 이스라엘에 보냈는데, 걔도 기독교 신자가 돼 돌아왔다오.” 둘은 탄식하며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시나고그(유대교 회당)를 찾아갔다. 주님에게 여쭙기 위해서였다.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 끝에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사실은 나도 2000년 전에 내 아들을 이스라엘에 보냈으나….” 종교 문제에 관한 한 부자지간도 부부지간도 소용없을 때가 많다는 뜻이리라. 그만큼 신앙은 한 인간의 몸과 마음, 전 인격을 송두리째 거는 행위일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 종교의 속성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문 ‘다(多)종교 평화공존’ 사회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종교 간 유혈충돌, 끔찍한 박해를 생각해보라. 우리처럼 성탄절이나 부처님 오신 날에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바로 지난주 토요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열린 마당에서 7개 종단이 참여한 ‘대한민국 종교문화축제’가 열렸다. 올해로 벌써 14회째다.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유교·천도교·민족종교 지도자들이 개막식에서 서로 손을 잡고 ‘사랑으로’를 합창하는 진풍경을 다른 어느 나라에서 구경이나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종교적 관용과 배려에서만큼은 최고 선진국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옥(玉)에 티가 없을 수는 없겠다. 인상비평 수준이긴 하지만, 나 같은 비(非)신자 입장에서는 기독교의 지나치게 공격적·배타적인 태도, 가끔 각목싸움까지 벌어지는 불교계 권력다툼이 언뜻 머리에 떠오른다. 진보를 자처하는 천주교의 한 신부는 시위를 벌일 때마다 죄 없는 어린 전경들에게 손찌검하는 버릇이 있어 같은 편으로부터도 뒷말을 듣고 있다.



 그런 내게도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일단의 기독교 신자들이 서울 봉은사 경내에 들어가 손 들고 팔 벌려 기독교식으로 기도를 한다. “쓸데없는 우상이 너무 많아서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앞으로 기도 많이 하겠습니다” “주님을 믿어야 할 자리에 너무나도 크고 웅장하게 절이 들어와 있는 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간증은 교회나 자기 집에서 하면 되지 왜 남의 종교의 경건해야 할 장소를 일부러 찾아가는 걸까. 구약성서(여호수아 14장9절)에 근거했다는 ‘땅밟기 기도’는 선교사들도 이미 기피하고 있다는데 말이다. 정작 ‘마음이 아픈’ 쪽은 그런 꽉 막힌 신자들을 대하는 대다수 종교인,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일 것이다. 봉은사만 밟힌 게 아니라 종교 간 관용과 배려의 정신도 함께 밟히고 만 것이다. 내친김에 인터넷을 더 뒤져보니 부산 지역에서 촬영된 기독교 모임 동영상도 있었다. “사찰이 무너지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나왔다. 이번엔 ‘미얀마 법당 땅밟기’ 동영상. 법당으로 보이는 곳에서 한국인들이 빙 둘러앉아 통기타 소리에 맞춰 찬송가를 부른다. 어린이를 포함한 현지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하고 있고, 붉은 승복을 입은 승려는 당혹스럽다 할까,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 자신이 신실한 기독교인인 김두식 교수는 “문제는 언제나 종교적 불관용”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편’이라는 확고한 믿음은 기독교인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동시에 남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다”고 간곡히 충고한다(김두식,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단지 기독교인에게만 해당하는 충고는 아닐 것이다. ‘종교문화축제’처럼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손을 맞잡고 사랑과 배려를 다짐하는 풍경이 널리 퍼지길 기대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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