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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가 본 ‘서울 G20’ ⑦ 글로벌 금융안전망





한국이 제안한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뭔가요
달러 모자란다 싶으면 돈 빌려줘 금융위기 막죠





우리가 흔히 ‘IMF 위기’로 부르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태국 바트화 폭락에서 시작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리먼브러더스 몰락으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아시아와 유럽을 돌아 전 세계 금융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했지요. 금융시장은 이처럼 전염성이 강합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하나의 금융시장으로 움직이고 있지요. 한국이 주도하고 있어 ‘코리아 이니셔티브’로 불리는 ‘글로벌 금융안전망’ 의제도 이런 위험을 줄여 보자는 취지입니다. 이 내용을 주요 20개국(G20) 홍보대사인 배우 한효주가 질문하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가 설명하는 형식을 빌려 쉽게 풀어 봤습니다. 이번 회는 이인형(경제학 박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답변합니다.



효주 : 신문에서 G20 경주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얘길 읽었어요. 그런데 환율 전쟁이 심각해서 한국이 새로 제안한 의제가 묻힐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더군요. 우리나라가 따로 제안한 의제가 뭔가요.



박사 :G20 정상회의가 소집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였죠. 그래서 워싱턴·런던·피츠버그 회의를 거치면서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좀 진정되면서 G20에 참여하지 못하는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논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대표적인 게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성과 개발 의제인데 이 모두 한국이 주도적으로 제안한 것입니다. 최근 다시 G20 참여국 간 환율 문제가 불거지면서 새로운 의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효주 : 금융안전망이라는 게 뭔가요.



 박사 :위험에 처했을 때 부상을 방지해 주는 게 안전망인 것처럼 금융안전망이란 금융회사와 금융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만들어 놓은 여러 안전장치입니다. 어떤 은행의 부실로 예금 인출이 불가능해져도 정부가 5000만원까지 보장해 주는 제도는 대표적인 금융안전망의 하나죠.





 효주 : 금융안전망이란 게 어떤 건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이런 제도가 국제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이인형 박사



 박사 :경제가 점점 글로벌화되고 있어 한 나라의 문제가 그 나라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도미노식으로 여러 나라로 퍼지곤 합니다. 그래서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필요한 것이죠.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죠. A라는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외국에서는 그 나라 돈을 갖고 있지 않으려 해요. 그러면 달러에 대한 A국 화폐의 가치가 고꾸라집니다. 자기 나라 돈이 아무리 많아도 달러가 없으니 빚을 갚지 못하게 되고, 국제 금융계의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하지만 A국이 달러가 많은 B국과 “달러가 부족할 때 일정액의 달러를 우리나라 통화와 교환한다”는 거래를 맺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통화를 교환하는 것을 통화스와프라고 하는데 한국도 금융위기 때 통화스와프 덕을 톡톡히 봤어요. 2008년 말 금융위기가 터지자 국내에 있던 달러가 빠져나갔고, 외국에선 추가로 빌려주려 하지 않자 원화가치가 달러당 1500원까지 떨어졌어요. 그런데 미국과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서 국내에 달러가 많아지자 원화가치의 하락세가 겨우 진정됐어요.





 효주 : 다른 나라도 그런 방식을 쓰면 되지 않나요.



 박사 :G20에서도 처음엔 이 방식을 제도화하려고 했어요. 이게 다자 간 상설 통화스와프라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가 협정을 맺고, 갑자기 달러가 부족해지면 정해진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빌려와 쓸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죠. 하지만 선진국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우선 떼일 위험이 있고, 남의 나라를 위해 자기 나라 돈을 마구 찍고 싶지 않은 것이죠. 돈을 많이 찍으면 물가가 올라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한 나라에 이런 짐을 지우지 말고, 여러 나라가 함께 세운 국제기구에 이런 임무를 맡기기로 했어요. 국제통화기금(IMF)이 글로벌 금융안전망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곳입니다.





 효주 :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때 IMF에서 돈을 빌렸던 기억이 나요. 그때 온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죠.



 박사 :맞아요. 문제는 IMF가 돈을 빌려줄 때는 상당히 가혹한 조건을 내건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필요한 돈을 빌려줄 테니 외환시장을 개방하고, 부실기업을 퇴출하며,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식의 조건을 다는 것입니다. 흥청망청 쓰다가 나중에 돈이 부족해 손을 벌리는 도덕적 해이가 없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죠. 또 후진적인 경제 시스템을 선진국과 같은 형식으로 바꾸라는 취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빌리는 나라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아져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IMF가 요구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국민이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IMF에서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는 부실하다’고 광고하는 셈이 된다는 점입니다. 국내에서도 돈이 급해 사채를 쓰면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를 ‘낙인 효과’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가능하면 IMF에서 돈을 빌리지 않으려고 하고, 어쩔 수 없이 손을 벌린 경우에는 되도록 빨리 갚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어진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효주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박사 :1990년대 후반 IMF로부터 돈을 빌렸던 아시아와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이런 문제점을 많이 지적했어요. 결국 IMF도 지적의 일부를 수용했죠. 특히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위기가 코앞에 닥친 나라들조차 IMF 대출을 꺼리자 IMF는 대출 방식을 상당히 바꿨습니다. 탄력대출제도(FCL·Flexible Credit Line)를 도입한 것이죠. 위기 조짐이 있는 나라가 도움을 청할 경우 심사를 거쳐 위기 예방 차원에서 사전에 대출 여부와 규모를 결정해 놓는 것입니다. 허락을 받은 나라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한도 내에서 돈을 빼서 쓸 수 있는 것이죠.





 효주 : 새 제도가 효력을 발휘했나요.



 박사 :이번 위기 상황에서 멕시코를 비롯한 몇몇 나라가 이 제도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FLC를 받으려면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한 나라에만 허락되는 제도이기 때문이죠. 또 각국이 IMF에 낸 돈의 10배까지로 대출 한도가 정해져 있고, 인출할 수 있는 기간도 6개월로 제한됩니다. 이 밖에 대출을 신청하는 게 세상에 다 알려지기 때문에 ‘낙인 효과’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노력해 얼마 전 IMF 대출제도를 한 번 더 바꿨습니다. 9월 초 언론에 보도됐던 게 바로 그 내용이에요. FLC의 대출 조건을 보다 완화하고, 예방적 대출제도(PCL·Precautionary Credit Line)를 새로 도입하기로 했지요. PCL은 FCL을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신흥국이 아니어도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지요. FCL 신청 기준에는 미달하지만 건전한 정책을 수행하는 국가 중 예방 차원에서 유동성 지원을 희망하는 국가를 지원하자는 취지입니다. PCL에는 돈을 받는 조건으로 몇 개의 사후 이행요건이 따라붙지만 외환위기 때 한국이 받았던 차관에 비해선 이행요건이 덜 엄격합니다. 이 때문에 신흥개도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계의 중앙은행’인 IMF의 대출제도를 신흥국의 리더 중 하나인 한국이 바꿨으니, 한국이 주도했던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1단계는 이미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볼 수 있겠지요.






IMF의 충분한 자금 확보가 관건 … 채무국 ‘도덕적 해이’도 막아야



남은 과제는




신흥국들의 요구사항을 수렴해 한국이 주도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당초 구상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 특히 예방적 측면을 더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자간 통화스와프 상설화가 선진국들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된 뒤 떠오른 대안이 글로벌 안정메커니즘(GSM·Global Stability Mechanism)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특정 국가의 도움 요청이 없어도, 일정한 위기 징후가 포착되면 자동으로 자금을 공급하게 하는 방안이다. 대출신청이 공개되면서 신용불량국으로 몰리는 낙인효과도 피할 수 있고, 또 한꺼번에 여러 나라에서 돈이 빠져나가 위기가 확산되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장치다. 신흥국으로선 시스템화한 위기 예방장치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여전히 미지근한 반응이다. 이런 게 가능해지려면 역시 IMF가 충분한 돈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역시 선진국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완벽한 안전장치는 개도국의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고 선진국은 우려한다. 이에 따라 GSM 논의는 이번 서울 회의가 아니라 내년 G20 파리 정상회의로 넘어간 상태다.



 신흥국들의 자구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가까운 역내 국가끼리 소규모 자체 안전망을 만들어 급할 때에 대비하자는 논의는 벌써 눈에 띄는 진전을 이뤘다. 대표적인 게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안전망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다. 2000년 아세안+3(한·중·일) 재무장관 회의에서 처음 제기된 CMI는 지난해부터 규모를 키우고 다자기구화 하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 올 초 대체적인 윤곽이 나왔다. 역내 국가들이 1200억 달러의 기금을 만들기로 하고 중국과 일본이 각각 32%, 한국이 16%, 아세안이 20%를 분담하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위기에 처한 역내 국가들은 이 돈을 빌려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된다. 이런 지역안전망과 IMF를 연계하는 방안 등이 추가로 검토되고 있다. 또 채권보증기구를 만들어 역내 국가들이 발행한 채권을 보증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를 보다 체계적이고 상설화하는 방안에 대해 계속 협의해나갈 계획이다. 최희남 G20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의제총괄국장은 “아직은 배가 고프다”는 말로 금융안전망을 더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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