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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류승완, 유명한 감독에서 유능한 감독으로

2년 전 에세이 『류승완의 본색』에 류승완(37) 감독은 이렇게 썼다. “칸 영화제에서 상 받고 싶은 생각도 없고, 2000만 관객 동원해서 기록 세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어떤 것인진 아직 몰라도 영화를 잘 만들 때 느끼는 쾌감을 겪어보고 싶다.” 장선우 감독이 ‘나쁜 영화’를 찍고 남은 필름으로 촬영한 6500만원짜리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충무로에 커다란 파열음을 일으키며 등장한 지 10년. 한때 ‘영화 신동’이었던 그도 어느덧 일곱 번째 영화를 발표한 중견으로 접어들었다. 황정민·류승범·유해진 주연의 신작 ‘부당거래’(28일 개봉)를 찍으면서 그는 무척이나 가 닿고 싶었던 ‘쾌감’의 끝자락을 붙잡은 듯싶다.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닌, 관객에게 힘이 되고 즐거운 흥분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깨달음과 함께.



깨달음이 어디 그냥 찾아오던가. ‘다찌마와 리’ 흥행 부진 이후 1년간의 원치 않은 공백기가 있었다. 그 시간을 몸으로 겪고 나니, 어느새 초발심으로 돌아온 자신이 보였다. 이제 그에겐 새로운 목표가 보인다. “감독 인터뷰가 필요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잘 만든 영화를.” 22일 서울 삼청동에서 그를 만났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연합뉴스 제공











1시간30분여에 걸친 류승완 감독과의 인터뷰는 흥미진진했다. 그가 신작 홍보보다는 지나간 10년을 반추하는 ‘고백’ 쪽에 무게중심을 더 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이 언젠가 썼던 대로 그는 유쾌하면서도 진지했다. “그동안 제가 만든 영화에 대해 돌이켜봤어요. 반성했죠. ‘내가 좋아하는 영화만 했구나, 내 취향의 영화를 만들어 왔구나’. 스스로에게 물었죠. ‘내가 왜 영화를 시작했지? 내가 왜 영화를 좋아하게 됐지?’ 답이 분명해졌어요. 어린 시절 날 기쁘게 해줬던 영화, 큰 힘이 돼줬던 영화, 좋은 영화,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좋은 영화를 만들자. 예전엔 건방졌죠.(웃음) 이젠 유명한 감독보다는 유능한 감독이 되고 싶어요.”



그는 데뷔 후 10년에 대해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했을 당시 ‘천재가 나타났다’며 들썩이던 충무로 분위기를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했다. “김지운 감독님이 ‘미용실 가서 아무 여성지나 집어던지면 (펼쳐진 페이지에) 류승완 아니면 유지태가 나온다’고 농담할 정도였으니깐요.(웃음)”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짝패’ 등 후속작에 대해 조금씩 아쉬움의 목소리가 새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는 여전히 충무로의 스타감독이었다.



하지만 2008년 충무로에 한파가 불어닥치고 ‘다찌마와 리’가 흥행에 실패하자 현실은 달라졌다. 각본과 제작을 맡은 ‘해결사’의 투자를 받으러 다니며 이를 실감했다. “사람들이 다 절 피하는 것 같았어요. 투자 받으려고 홍콩·로스앤젤레스 등 안 가본 데가 없었죠. 돈 있단 사람은 다 만나봤고, 술자리에서 상대방 비위 맞추는 일도 해봤어요. 제 현주소를 깨달았죠. 겉으론 그럴듯해 보였지만, 사실 난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었죠.” 아내와 운영하던 영화사 사무실을 정리해야 했을 정도로 형편이 좋지 못했다. “돈 벌려고 CF 찍고 직원들 퇴직금 마련하러 뛰어다니고 사무실 집기를 없애면서 느꼈죠. ‘중소기업 사장들이 이래서 목숨을 끊기도 하는구나’. 큰아이 다니는 스포츠센터 수강료를 주지 못했을 정도였어요. ‘해결사’ 주연 설경구 선배한테 ‘기다려줘서 고맙다. 영화 엎게 생겼다’고 문자를 했죠. ‘언제가 되건 할 테니까 놓지는 말자’고 답이 오더군요. 일주일 후에 기적적으로 투자를 받았어요. 그때 느꼈어요, 사람들한테 실수하면서 살진 말아야겠단걸.”















‘부당거래’는 ‘류승완의 사람들’이 품앗이해준 영화다. 특히 세 주연은 배우 박중훈이 ‘연기올림픽’이라고 표현했으리만큼 팽팽하게 합을 겨룬다. 황정민이 비(非)경찰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승진에서 물먹는 광역수사대 반장 철기를, 류승범이 타락한 검사 주양을, 유해진이 철기의 스폰서가 돼 각종 편의를 제공받는 조폭 석구를 연기했다. 모두 “제작비 32억원에 한데 모으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배우들”이다.



“스태프 중 개런티를 제대로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류승완이 오랜만에 한번 한다는데 도와주자’ 이래서 촬영·편집·미술 할 것 없이 다들 말도 안 되는 예산인데도 팔 걷고 나서준 거죠.” ‘악마를 보았다’ 박훈정 작가가 쓴 대본은 여러 감독의 손을 거쳤다. 거미줄처럼 얽힌 줄거리에 엄두를 내기 힘들었고, 검찰과 경찰 갈등, 경찰 내 ‘경찰대 라인’ 문제, 스폰서 검사 등 사회비판적 요소가 강한 탓이었다.



“게다가 촬영 중 영화 속 얘기가 현실에서 막 일어나는 거예요. 황정민 선배가 ‘이러다 개봉이나 하겠느냐’고 불안해할 정도였죠.(웃음) 해외 영화제에서 미리 상영하고 나서 개봉해야 안전(?)하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민감하고 복잡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면 된다고 봤어요. 서로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은 현대사회에서 크건 작건 조직과 관계 맺고 있는 개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이니깐요. 저 사람 우리 부장하고 비슷하네, 싶은데 알고 보면 우리 삼촌이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죠. 직설적인 사회풍자나 날 선 비판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가 지금보다 훨씬 얇아졌을지도 몰라요.”



‘부당거래’에는 ‘나쁜 놈’들만 나온다. 경찰, 검찰, 언론 할 것 없이 죄다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적나라함이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부당한 거래에 얽히지 않고 사는 게 가능할까요. 저만 해도 그래요. 배우 캐스팅하는데 A와 B가 있다 쳐요. B가 조금 더 연기를 잘하는데 전 A 매니저와 밥을 한번 먹었으니까 A를 캐스팅하는 거죠.(웃음) B입장에선 이보다 더 부당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보면서 속이 시원해질 수도, 심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겠죠. 불편함을 느낀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 전체를 생각할 때 좋은 신호 같아요.”



그는 일곱 번째 영화를 끝낸 소감을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더라”고 했다. “‘부당거래’만큼 주위 지적에 귀를 연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감독이란 영화 제작의 한 역할이지,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스태프들한테 정말 많이 배웠어요. 예전의 절 또다시 반성했죠. 훌륭한 배우들의 단물을 좀 더 빨아먹을걸.(웃음) ‘주먹이 운다’ 같이한 최민식 선배만 해도 더 배울 수 있었고 더 뽑아낼 수 있었는데, 그땐 제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됐던 거죠.” 재능과 감각, 거기에 성찰까지. ‘유능한 감독 되기 3종세트’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유능한 그의 여덟 번째 영화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기선민 기자 , 사진=조용철 기자






주요 연출작



2010년 부당거래

2008년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6년 짝패

2005년 주먹이 운다

2004년 아라한장풍대작전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시시콜콜] 류승완



3년 연상 ‘명문대생’과 결혼은 충무로의 전설 … 친동생 류승범 출연 요청할 때도 매니저 통해




류승완 감독은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쓴다. 2008년 낸 에세이 『류승완의 본색』은 『박찬욱의 오마주』 『김지운의 숏컷』에 이어 출판사가 기획한 이른바 ‘감독 시리즈’다. ‘글쟁이’로 소문난 두 감독에 버금가는, 유려하고 진솔한 글로 영화팬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같은 해 MBC 간판 예능프로 ‘무릎팍 도사’에 출연, 대안학교에 보낸 큰아이 얘기를 하고 난 후에는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하기도 했다. “‘다찌마와 리’ 홍보가 될까 싶어 출연한 건데, 다음 날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영화 이름은 안 뜨고 ‘대안학교’만 뜨더라. ‘부인 강혜정(영화사 외유내강 대표)이 배우 강혜정 맞나요?’라는 질문만 오르고.”



3년 연상의 부인 강혜정 대표와의 로맨스는 충무로에서 ‘전설’로 통한다. ‘장래가 불투명한 고졸 연하남’과 ‘명문대생 연상녀’가 영화 공부를 인연으로 만나 사랑에 빠졌다. 강 대표의 아버지가 재떨이를 집어 던지며 역정을 냈을 정도로 반대가 심했지만, 5년간의 열애 끝에 1997년 결혼에 골인했다. 의좋은 부부이자 뜻이 통하는 영화 동료다. “‘부당거래’ 촬영하면서도 아내가 ‘이 영화는 공분을 일으킬 게 아니라 공감을 일으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 난 역시 결혼을 잘했구나 싶었다.” 결혼 14년차, 중학생 딸 등 2남1녀의 아빠라는 게 실감 나지 않는 ‘충무로 공인 동안’이다.



일곱 살 밑 동생이자 배우 류승범에겐 아버지나 다름없는 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도 일할 때는 철저히 프로라는 게 이 형제의 흥미로운 점이다. “출연 요청했다 거절당한 적도 있다. ‘부당거래’도 안 하겠다는 걸 설득했다. 섭외할 때도 직접 얘기하지 않고 반드시 매니저를 통해서 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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