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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외규장각 도서의 불편한 진실

외규장각 도서의 계절이 돌아왔다. 한·불 정상회담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가져간 297권의 책을 돌려받기 위한 협상은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다. 2000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방한 때는 지지부진한 정부 간 교섭을 민간 전문가 협상으로 대체키로 합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프랑스를 방문한 뒤에는 다시 정부 간 협상으로, 원점부터 재논의하게 됐다. 그리고 다음 달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회의 때 따로 회담을 한다.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문제는 양국 최대 현안이다.

 두 나라는 이번에는 끝을 보자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밀린 숙제 끝내고 새 진도를 나가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의견 접근도 상당히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다른 문화재를 내주는 ‘상호 대여’가 아니라, 프랑스가 ‘일방적 대여’의 형식으로 책을 내주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자동 기한 연장으로 사실상 영구 대여를 보장하는 부분에도 잠정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양국 실무진의 타협안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기본 틀이 ‘반환’이 아니라 ‘대여’이기 때문이다. 한 외교관은 “현실적으로는 최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칫 역적으로 몰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 누구도 선뜻 ‘총대’를 메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반환’ 형식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대개 두 가지를 얘기한다. “미테랑 대통령이 한국에 고속열차 테제베(TGV)를 팔면서 반환을 약속했다”는 것과 “약탈된 것이기에 반환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반환을 정말 약속했을까. 김영삼·미테랑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를 보도한 93년 9월 15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에 따르면 그렇지가 않다. 기사에는 ‘미테랑 대통령은 반환 형식을 영구 임대 방식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문화재 교류 등의 형식으로 할지 등의 구체적 절차는 실무 협의토록 하자고 제의했다’고 적혀 있다. ‘미테랑의 약속’은 일방적 믿음일 가능성이 크다.

 ‘약탈된 문화재는 반환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별 힘이 못 된다. 윤리적으로는 진리일지 모르나 현실적 강제력이 없다. 유네스코는 1972년 불법 유출 문화재 환수에 대한 협약을 발효하며 이전의 사안에 대한 소급 적용은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달리 기댈 만한 국제법도 없다. 법을 따지고 들면 프랑스 국내법에 가로막혀 그나마 ‘대여’도 안 될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매우 불편한 진실들이다.

 책을 한국으로 가져오는 게 목적이라면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반환’이라는 형식을 반드시 취하고 싶다면 뚝심 있게 버티며 국력을 키워가야 한다. 후자의 경우, 당당하기는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그전에 국민들에게 원하는 게 어떤 쪽인지를 물어야 한다. 모로 가도 서울에는 일단 가야 하는 것인지, 모서리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인지…. 쇠고기 수입 파동 때의 ‘매국노’ 논란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이상언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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