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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욕 먹는 일 뭐하러 … ” 말 뒤집는 한나라당





“의사봉 두 개도 준비했는데….”

 22일 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에서 ‘밤 11시~오전 6시’엔 심야 옥외집회를 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상정하려고 했다. 그가 의사봉을 하나 더 마련한 건 민주당의 반발로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분의 의사봉은 불필요한 준비물이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이날 저녁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만나 집시법 처리를 유보키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김 원내대표는 “야당이 워낙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만큼 국회를 파행시켜선 안 된다고 보고 그렇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 집시법 처리는 한나라당의 오랜 다짐이었다. 지난 10일 당·정·청 수뇌부가 모여 “음향대포 도입은 유보해도 집시법은 이달 말까지 처리한다”고 공언한 일까지 있다. 김 원내대표도 “치안을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집시법 관련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걸 야간 옥외집회를 전면 허용하라는 취지로 볼 수는 없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민주당은 “야간 집회 제한은 국민의 소중한 기본권을 영구적으로 빼앗으려는 것”(손학규 대표)이라고 하지만 그런 주장대로라면 야간 집회 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 미국·프랑스·러시아도 기본권을 박탈하는 나라로 낙인 찍혀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공론화하지 못한 채 집시법 처리를 유보하는 편한 길을 택했다. 일부 최고위원들은 “욕 먹는 일을 뭐 하러 하느냐”며 표가 떨어질 걸 걱정했다 한다. “국민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인데 지도부가 성급하게 백기를 들었다”(김정권 의원)는 비판이 당내에서 나오는 건 지도부가 지나치게 정략적인 인상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한나라당이 집시법을 강행처리했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공당이 어떤 가치를 지향한다고 공언했다면 적어도 그걸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걸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진정성 없이 표만 의식한다면 도리어 표는 멀어질 것이다.

고정애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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