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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배추값 파동의 교훈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코앞인데 아직도 우리는 배추에 발목이 잡혀 있다. 배추값 파동의 원인을 둘러싼 정치공방에 대통령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지난주 방송된 라디오 정례 연설에서 이번 파동의 원인을 일부 중간상인의 독과점과 담합으로 지목하고 “산지 농민은 싼값에 팔고, 소비자들은 비싼 값에 사먹어야 하는 불공정한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배추값 폭등을 둘러싼 정치공방은 우리나라 배추 농업과 시장의 구조적 특성을 무시한 소모적 논쟁이다. 객관적 사실을 잘 모르니 원인 진단과 처방도 중구난방이다. 우리 배추는 1년에 네 차례 반복되는 생산과 공급 사이클을 갖고 있다. 소비는 일정하지만 생산과 공급은 계절적으로 다르다. 다 같은 배추라고 생각하지만 여름철 고랭지 배추, 김장용 가을배추, 월동 저장 겨울배추, 그리고 겨울철 하우스에서 생산되는 봄배추는 각각 다른 상품이다. 생산 시기뿐만 아니라 생산 지역도 다르고 품종과 재배방식, 원가에서도 차이가 난다. 동종의 이종상품인 것이다.

 이번 파동은 고랭지 여름배추의 생산 격감에 따른 일시적 공급 물량의 절대부족 때문에 일어났다. 지난 9월 태풍 곤파스와 추석 폭우로 강원 일대 고랭지 배추의 60~70%가 날아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었다. 4대 강과 배추 소동을 엮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일 뿐이고, 중간상인의 담합과 독과점으로 모는 것은 정치적 속죄양 찾기일 뿐이다. 사실 대부분의 중간상인들은 이번 파동의 직접적 피해자였다.

대부분의 농민은 배추 모종을 밭에 내다 심는 정식(定植)을 마치면 대체로 배추밭 전체를 산지 유통인에게 넘긴다. ‘밭떼기 거래’는 배추 농사의 오랜 관행 가운데 하나다. 배추밭을 사는 유통인들은 법적 요건을 갖추고 지자체에 등록한 상인들이다. 이들이 농민에게 지불한 가격이 얼마나 합리적인가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배추밭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다. 기상 이변 등 불확실성에 대비한 미래 위험 분산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합리적 경제행위다. 미래 위험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농민들이 배추를 키워 판매할 때까지 들어가는 모든 비용 부담을 상인에게 넘기는 것이다. 배추밭을 산 중간상인들은 생산 위험과 비용을 책임지는 반상반농(半商半農)의 입장이 된다. 농민들의 고령화로 중간유통인들이 아예 농지를 임차해 정식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기업농 형태도 발전하고 있다. 생협이나 농협이 농민들과 계약 재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이런 생산유통 구조를 감안할 때 이번 파동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배추밭을 팔지 않고 생산을 계속한 일부 농민과 중간상인들이다. 운 좋게 물량을 건진 일부 중간상은 가격 폭등에 따른 큰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담합 같은 것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도매시장 경매에서 가격 상승 폭을 제한하거나 일시적으로 거래를 정지하는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높은 가격에도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 한 가격폭등은 자연스러운 경제현상일 뿐이다.

기상 이변을 통제할 수 없는 이상 이번과 같은 파동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가능한 대안은 여름과 겨울배추 생산지역을 확대하는 것이지만 이는 품종과 재배 방식에서 획기적 기술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해외개발 수입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계절적인 공급 확대에 한계가 있다면 특정 시기의 배추 수요를 줄이거나 대체 소비를 늘리는 등 합리적 소비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 요인에 따른 가격 변동 폭을 제한함으로써 일부 중간상인들의 폭리와 소비자 부담 증가를 막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 경매 과정에서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거나 바닥 모르고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경매가격 상승(하락) 폭을 제한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주요 농산물 경락 가격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도매시장 농산물시장가격 정보 서비스 강화를 통해 소매 단계에서 40~50%씩 터무니없이 불어나는 유통 마진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생협이나 농협이 나서 농민들과 계약생산을 확대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이라도 똑바로 고쳐야 한다.

최양부 농식품신유통연구원 고문 전 대통령농림해양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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