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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역사의 주류와 역류의 갈림길에서





황장엽 선생의 죽음과 북한의 3대 권력승계를 지켜보면서 이젠 북한에서도 이념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이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과 같은 이념의 깃발을 걷어버리고 왕조적 절대권력의 승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軍) 우선의 국가체제를 내외에 과시함으로써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독특한 아류를 지향하였던 실험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계급혁명을 통하여 평등사회를 실현하겠다는 이상주의에다 민족 특유의 인본사상을 접목한 주체성의 확립이 가능하다는 낭만적 꿈은 애초부터 북한체제와는 융합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듯 ‘힘의 정치’를 적나라하게 추구하는 북한의 체제정비는 과연 한민족과 한반도의 앞날에 어떤 시련과 도전을 예고하는 것인가.

북한은 김정은으로의 왕조적 권력승계를 2012년 이른바 ‘강성대국’ 완성에 필수적 요건으로 강조함으로써 앞으로의 2년을 역사 전환의 중대한 고비로 스스로 책정했다. 사실 2012년은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을 뿐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리더십이 후진타오로부터 후계자로 넘어가는 등 역사의 고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역사를 내다보는 데는 ‘고비’에 못지않게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국가의 존망이나 민족의 성쇠는 역사의 흐름에서 주류(主流), 아류(亞流), 그리고 역류(逆流) 가운데 어디에다 운명을 실을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판가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세기를 돌아보며 누가 세계사의 주류를 형성하였는가를 지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제국주의시대에는 동양을 압도한 서양세력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른 20세기 전반에는 독일과 일본의 기승을 꺾은 연합국세력이, 곧이어 전개된 소련의 전체주의세력과의 냉전대결에서는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세력이 역사의 주류로서 승자임을 증명했다. 특히 독일 통일과 소련의 해체, 탈권위주의 체제를 통한 민주화 등 극적 변화가 줄을 이은 지난 20년의 세계사는 군사력이나 이념보다도 경제력이 국가의 상대적 위치를 좌우하는 이른바 ‘소프트파워’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을 재빨리 인식하고 과감하게 국가발전의 방향을 조정하여 역사의 주류에 합류하는 데 가장 성공한 경우는 덩샤오핑이 주도한 중국의 개혁·개방이라 하겠다. 지난 한 세대에 걸친 중국의 경제성장과 사회발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국제적 위상의 상승은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위협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 이렇듯 중국과 베트남을 포함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지난 세기에 겪었던 수모를 극복하며 개방과 개혁을 통해 세계사의 주류에 다가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만이 계속 역류에 휩쓸리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산업화, 민주화, 올림픽, 월드컵, G20 등 세계사의 주류를 타고 전진하더라도 북한이 역류를 택하여 중심에서 멀어진다면 결국 남북 간의 간격과 분단 및 대결의 심각성은 더 크고 깊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통일은 멀어지고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6·25 60주년인 올해에 있었던 천안함 폭침 사태가 이미 경종을 울려주었다.

역사의 주류에서 일단 떨어져나갔던 예외국가에서, 특히 국외자가 된 독재세력 특유의 다이내믹스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역사의 본류로 돌아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인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불가능한 역사의 숙제를 풀어갈 때만이 북한은 살고 한민족의 미래가 평화롭게 열려갈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2012년이란 역사의 고비를 지향하고 나아가는 북한의 3세 체제에게는 이미 20년 전 김일성 주석이 닦아놓은 지름길, 즉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으로 회귀하는 묘수가 남아 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그 지름길로의 결단은 파탄의 역류에서 발전의 주류로 미래의 갈 길을 단숨에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장경제의 세계화가 정치제도의 개혁과 사회 및 문화 차원에서의 변화에 어떻게 연계되는 것이 바람직한가는 오늘의 세계가, 특히 그 중심 국가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경제 고도성장의 와중에서도 정치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은 적절한 리더십의 표상이라 하겠다. 그러한 노력이 중국의 국내문제 해결은 물론 동아시아지역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담보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G20정상회의에서도 한국과 중국의 동반자 관계가 환율 문제를 비롯한 국제금융체제 개편뿐 아니라 북한을 포함한 우리의 이웃이 세계사의 주류를 타고 함께 나아가는 촉진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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