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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한류의 꿈, 공예문화상품 ⑧ 공예브랜드 ‘채율’ ‘색동칠보’의 칠보

칠보(七寶)는 원래 금속공예다. 비녀·노리개·은합·은식기 등 금속 위에 빨주노초파남보의 영롱한 보석가루로 그림을 그려내는 공예다. 칠보라는 말이 일본에서 유래해 일본 공예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로 우리 옛 규중 처자들의 족두리와 노리개엔 칠보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엔 이를 ‘파란(波瀾)’이라 불렀다. 어쨌든 구한말과 근대를 넘어오며 금속 위에 보석가루로 색을 입혀내는 공예는 ‘칠보’라는 이름으로 통칭됐다. 칠보는 여전히 비싸고, 노리개나 은식기 등 호사가들이나 사용하는 사치품에 활용된다. 하지만 다양한 영역끼리 서로 넘나드는 요즘의 공예계에서 칠보 역시 가구로, 대중화로 다양한 방향에서 모색과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인·디자이너가 함께 만드는 칠보 가구





보통 옻칠 가구라 하면 나전 장식을 연상한다. 그런데 공예브랜드 ‘채율’에서는 나전 대신 칠보옻칠 가구를 내놓았다. 다양하고 찬란한 색채를 자랑하는 칠보가 칠흑 위에서 더 빛을 발하리라는 판단에서다. 이곳에서 쓰는 것은 은칠보. 99.9%의 은 위에 칠보를 입히는 방식이다. 은칠보의 대가, 김미연(54) 작가가 만든다. 번쩍이는 은판금 위에 유약을 발라 영롱한 빛을 자아낸다. 자개에다 색을 입힌 모양새다.

칠보는 금속 위에 하는 공예라 금속 특유의 질감을 품고 있다. 그래서 자개장이 예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반면 칠보장은 모던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전통식 서랍장이나 장롱에도 잘 어울렸다. 김미연 작가는 “은 위에 유리질 유약을 바르고 구워내는 과정을 일곱 여덟 차례 거치는 동안 금속의 날카로운 빛은 칠보의 색에 사로잡혀 은은한 빛을 낸다”고 했다. 김 작가는 구워낼 때마다 표면을 사포로 연마해 자연스러운 색깔을 내도록 다듬는다. 서랍장·탁자 등에 붙은 칠보는 칠흑 같은 표면 위에 영롱한 색을 발하고 있었다.




‘壽’ ‘福’을 새겨넣고 은유선 기법을 쓴 은칠보 화병. 김미연.

이곳에서는 디자이너·소목장·칠장·칠보작가 등이 팀을 이뤄 작업한다. 공예계에서는 드문 합동 프로젝트다. 디자이너가 가구의 얼개를 그리면 소목장이 이를 짜고 칠장이 옻을 입힌 뒤, 칠보작가가 가구의 디테일을 꾸며 마무리한다. 칠장 수곡 손대현 선생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소목장 세현 김의용 선생은 경기 무형문화재다. 그런데도 이곳의 가구는 ‘칠보작품’으로 알려졌다. 가구의 ‘화룡점정’을 칠보가 찍어서다. 옻칠에 칠보까지, 재료값만 해도 상당한 수준이라 가구는 수백만원에서 천만원대에 이른다. 하지만 매년 매장을 하나씩 늘려갈 정도로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김 작가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새겼던 ‘壽’, ‘福’을 칠보의 디자인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롱한 색 가운데 글자가 들떠서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먼저 검은색 유약으로 글자를 올린 뒤 유약을 입혀 나간다. 최근에는 한글 디자인도 쓰고 있다. 그는 “앞으로 한국적인 칠보 디자인을 만들어 나가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은칠보 대신 동칠보, 대중 속으로




전통 양식으로 짠 머릿장의 문과 손잡이에 은칠보를 붙였다. 채율.




은칠보가 투명하고 고급스럽다면, 동칠보는 깊이감과 무게감이 있다. 은칠보처럼 화사하지는 않지만, 동칠보는 원색의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칠보가 공예 중 변방으로 머물렀던 데는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이미지 탓이 크다. 그런 칠보를 대중화시킨 데는 동칠보의 공이 크다.




강렬한 색감의 동칠보 찻주전자. 박미숙.

색동칠보 박미숙 대표가 20여 년 전 동칠보를 상품화하기 시작했을 때, 주변 작가와 교수들은 “고급스러운 공예가 대중화되겠느냐”며 만류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재료비 자체가 비싼 은 대신 동판 접시 위에 문양을 그려 넣는 장식품을 주로 만든다. 은에 비해 색감이 또렷하고 선명하다. 고급스러운 맛은 덜하지만, 칠보의 다채로운 색감을 느끼기에는 그만이다. 또 그의 칠보는 보통 칠보를 굽는 온도인 섭씨 750~850도보다 높은 900도 정도에서 굽는다. 박 대표는 “온도가 높을수록 색이 더 선명하게 난다”고 했다.

특히 은보다는 2배 이상 굵은 동선으로 그린 문양은 은선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동선은 핀셋으로 모양을 잡을 수 없다. 대신 니퍼를 이용한다. 굵은 동선이 구부러지고 휘어지며 만드는 문양은 꽤 역동적이다. 나뭇가지나 동물의 모습이 더 힘차게 표현된다. 특히 아기자기한 찻주전자·보석함이나 액세서리류 등과 잘 어울렸다. 굵은 동선이 찻주전자를 지나는 모양은 평면인 접시 위에 있는 것보다 더 입체감이 살아있다. 박 대표는 한국 고유의 색과 디자인을 살린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꽃·나비나 동자승 등 민화에 등장하는 소재를 주로 활용한다.

이런 주제들은 선명한 칠보의 색과 어울려 예스러운 멋을 자아냈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 들어온 조잡한 저가 동칠보 제품 때문에 이미지가 떨어지고 있다는 건 동칠보가 넘어서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금속 위에 그리는 그림, 칠보는




화사한 칠보로 포인트를 준 서랍장. 채율.

‘금속 위의 보석’인 칠보는 유리질의 유약을 풀에 섞은 뒤 금속에 올리고 굽는 공예다. 금속공예이기도 하고, 칠하는 공예이기도 하며, 굽는 공예이기도 하다. 색을 금속에다 칠한다는 점에서 배우기는 쉽다. 하지만 금속·유리 등 어려운 재료를 다루고, 굽는 기술이 필요해 솜씨를 발휘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린다.

칠보가 금속 위에 그리는 그림이라고 해서 물감과 비슷하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유약은 말 그대로 돌가루이기 때문에 물감과 달리 섞이지 않는다. 빨강 유약과 노랑 유약을 섞는다고 주황 유약이 또렷이 나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칠보에서는 색을 ‘칠한다’고 하지 않고 ‘얹는다’고 한다. 고급스러운 색감의 칠보와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얹는다’는 의미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달렸다.

칠보의 정체성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재료는 사실 순은이다. 하지만 칠보의 색이 워낙 강렬해 조금만 잘못 써도 유치하거나 촌스럽기 십상이다. 색의 미세한 변화와 그러데이션(점층기법)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활용하느냐가 관건인 작가 예술분야다.



색깔만큼 다양하네요, 칠보 기법





칠보는 색깔을 무기로 하지만, 결국은 금속 공예다. 유약을 잘 발라 색을 내는 것만큼 기법을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유리질의 유약과 금속을 소재로 하는 칠보에는 색감만큼이나 다양한 기법이 존재한다.

회화기법 곱게 간 유약을 붓에 묻혀 그림을 그리듯 금속판 위에 표현하는 기법이다(사진).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지만, 색감을 잘 내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그려야 한다. 그릴 때 원하는 색을 얻으려면 다른 색깔의 유약끼리 섞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유선기법 은선을 이용한 것은 은유선 기법, 동선을 이용한 것을 동유선 기법이라 한다. 칠보는 유약을 올려 녹이는 방식이라 경계선의 표현이 확실하지 못한 편. 그래서 금속선으로 모양을 만들어 금속판 위에 올린 뒤 유약을 얹으면 섬세한 문양도 말끔하게 표현할 수 있다. 많이 쓰는 기법이나 어려운 편이다.

부식기법 금속을 부식시켜 금속의 표면을 파내고 음각된 부분에 유약을 얹는 방법. 색깔뿐만 아니라 질감도 함께 표현할 수 있다.

조금기법 금속 표면에 직접 무늬를 넣거나 요철을 만들고 유약을 얹는 방법. 금속의 표면에 따라 빛이 다른 각도로 반사되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색을 표현할 수 있다. 동판보다 무른 은판에 주로 이용한다.

분유기법 온도의 변화에 따라 유약이 각각 달리 녹는 것을 활용해 엉기는 듯한 무늬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처음에 불투명 유약을 얹어 굽고, 다음에 투명한 유약을 얹어 구우면 처음 발랐던 유약이 뚫고 올라와 무늬를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큰 무늬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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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