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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농장, 국내에도 뿌리내린다

초고층 빌딩 농장은 공상과학?




대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을 빌딩 농장의 상상도. 미국 컬럼비아대 공공보건학과의 딕슨 데스포미어 교수 연구팀이 그렸다. [버티컬팜(www.verticalfarm.com) 제공]



20년 뒤인 2030년 10월의 어느 날. 서울 양재동의 한 고층건물 주차장에 5t 트럭 수십 대가 줄지어 대기 중이다. 딸기·토마토·배추·양파·버섯…. 깔끔하게 박스 포장된 각양각색의 농산물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와 트럭마다 차곡차곡 쌓인다. 갓 수확한 듯 싱싱하게 보인다. 적재를 마친 트럭은 차례로 주차장을 떠나 인근 대형마트와 백화점·재래시장으로 향한다. 지상 30층 높이의 이 건물은 서초구에서 운영하는 빌딩 농장이다. 각 층마다 곡물·채소·과일 등 다양한 농산물이 재배된다. 어패류를 기르는 양식장과 닭·오리를 기르는 양계장도 있다. 냉난방이 가능하니 사시사철 변하는 날씨를 걱정할 필요 없다. 친환경 농법으로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이런 초고층 빌딩 농장이 전국적으로 100곳 이상 들어섰다.

 2020년 무렵 빌딩 농장이 상용화되면서 김장철마다 시끄럽던 ‘배추 파동’이니 ‘금(金)추’니 하는 말들이 사라졌다. 이상기온과 국지성 호우·태풍 등의 영향으로 근래 밭에서 기르는 채소 작황이 좋지 않다. 하지만 채소를 빌딩형 농장에서 맞춤 재배한 덕분에 채소값은 예년 수준이다. 정부는 분기별로 농산물 작황을 모니터링해 시·군·구가 운영하는 빌딩 농장에 알려준다. 농장마다 이 정보를 보고 수요를 예측해 공급 물량을 추정한다.

 이처럼 도회지 고층건물에서 농사나 양식을 하는 빌딩형 농장을 공상과학(SF)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빌딩 농장은 1950년대 이미 ‘식물공장’이란 개념으로 그 씨앗을 뿌렸다. 그러다 99년 미국 컬럼비아대 공공보건학과의 딕슨 데스포미어 교수가 구체화했다. 각 층을 논밭으로 활용하는 미래형 농장 모델이다. 가뭄·폭우 등 풍수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연중 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 석유 등 화석연료와 농업용수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해충 피해 걱정이 덜해 농약을 덜 쓰는 친환경 재배가 가능하다. 또 농산물을 대량 소비하는 도회지에 위치해 물류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데스포미어 교수는 “축구장 넓이의 30층 빌딩을 세우면 5만 명의 먹을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며 이를 ‘수직형 농장(vertical farm)’이라고 불렀다. 그가 처음 빌딩 농장의 얼개를 내놨을 때 주변에선 황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식량위기와 이상기후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안정적인 농작물 생산 대안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물과 빛·온도·습도, 이산화탄소 농도나 영양분 등 식물 생장에 필요한 환경 요소를 조절해 최적의 생육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일본·유럽·북미 등지에서 논의 활발

이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시작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많은 나라가 미래 식량안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빌딩 농장을 연구 중이며 일부 국가는 시범 운영에 나섰다. 일본은 정부뿐 아니라 민간 기업 차원에서도 빌딩 농장을 미래 전략사업으로 간주해 투자를 시작했다. 일본에는 이미 ‘식물공장’으로 불리는 빌딩 농장 50개가 건립돼 운영 중이다. 일본 정부는 이 분야를 지원해 2012년까지 식물공장을 세 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다만 수경재배 위주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작물을 대량생산해 돈을 벌기보다 체험학습이나 관광객 유치, 친환경기업 이미지 제고 등 부수적인 사업 용도로 많이 운영된다.

 오스트리아에선 높이 20m, 연면적 1200㎡의 소규모 빌딩 농장이 운영된다. 이 건물은 태양광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려고 외벽을 강화유리로 만들었다. 토마토와 상추 등 채소를 주로 재배한다. 캐나다 정부는 토론토 한복판에 58층짜리 초고층 빌딩 농장 ‘스카이 팜(Sky Farm)’을 건립하는 중장기 계획을 세웠다. 미국은 뉴욕 도심 맨해튼에 30층 높이의 빌딩 농장 건립을 계획하고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국내에도 빌딩 농장 시대 열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설치된 ‘행복가든’에서 직원이 상추를 따고 있다. 빌딩 농장의 축소판인 이곳에서 한 달 2000포기의 상추가 생산된다. [롯데마트 제공]

국내에서도 빌딩 농장 연구가 시작됐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은 지난 7월 매장 안에 빌딩 농장의 축소판인 ‘행복가든’을 설치했다. 인공광 채소 재배 기술을 활용해 상추를 재배 판매한다. 햇빛 대신 발광다이오드(LED)를, 흙 대신 배양액을 이용한다. 30㎡ 면적에서 월 2000포기의 상추를 생산한다. 수확 즉시 팔아 신선도와 식감이 뛰어나다. 롯데마트는 ‘행복가든’ 사업을 확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1호 ‘빌딩 농장’이 곧 등장할 전망이다. 경기도 수원시 국립농업과학원에 빌딩 농장 두 채를 다음 달 완공 목표로 짓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이곳을 우리나라 빌딩 농장 연구의 전초기지로 삼기로 했다. 수경뿐만 아니라 토양 재배 연구도 한다.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인 김유호 박사는 “수경재배가 되는 잎 채소 위주로 연구를 하지만 향후 곡물과 과일 재배로 연구 범위를 넓히겠다”고 말했다. 물고기·새우·조개 등 어패류와 닭·오리·거위 같은 밀폐 사육 조류도 기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 박사는 “빌딩 농장은 미래 농업을 이끌 신성장동력이자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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