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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원 시작, 재계 71위까지 … 조선업 손대다 몰락





임병석 C&그룹 회장은 누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1일 서울 장교동 C&그룹 본사와 대구 C&우방 등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 다. 이날 오전 수사관들이 C&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회계장부 등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임병석(49) C&그룹 회장은 마도로스(항해사) 출신이다. 1984년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4년 넘게 범양상선에서 일등 항해사로 배를 탔다. 전남 영광군 법성포 칠산 앞바다 출신인 그는 29세가 되던 90년 고향 이름을 따 칠산해운이란 자본금 5000만원짜리 회사를 차렸다. 여기서 해운 중개업으로 재미를 본 그는 95년 사명을 쎄븐마운틴해운(C&해운)으로 바꾼 뒤 자신의 배를 구입해 해운업을 시작했다.



 2년 뒤 닥친 외환위기가 그에겐 기회였다. 임 회장은 “해운업은 경기 흐름이 중요한데,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내외에서 물동량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용선을 대거 확보했다”면서 “해외 물동량은 달러베이스로 결제되기 때문에 당시 달러 강세 상황이 크게 도움이 됐다”고 회상한 바 있다.



 그는 2002년 인수한 세양선박(C&상선)을 중국 물동량 급증 덕에 1년 반 뒤 완전 정상화시켰고, 진도·황해훼리·우방 등 법정관리 중인 회사들을 차례로 인수했다. 순식간에 재계 순위를 71위(2007년 기준)까지 끌어올린 그에게는 ‘M&A의 귀재’라는 별칭이 붙었다. 임 회장은 세양선박이 적대적 M&A 위협에 직면했을 때도 동남아 해운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태를 보였다. 2004년 임 회장은 2010년까지 재계 30위권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고, 2006년 그룹 이름을 ‘sea(바다)’의 발음을 딴 ‘C&’으로 바꾸면서 “5년 내 국내 5대 해운그룹이 되겠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런 빠른 성장 과정을 두고 업계에서는 인수 자금과 후원 세력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임 회장은 이에 대해 “M&A를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뱃사람들은 기상 조건이나 엔진 가동 상태 등 현실적인 문제에 수없이 직면하게 된다”며 “(뱃사람들은)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순항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다”면서 불안한 세간의 시선을 잠재우려 했다.



 무리한 M&A의 후유증을 겪던 그에게 조선업 진출이 결정타가 됐다. C&중공업을 만들어 조선소를 지으려 했지만, 이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소비시장이 얼어붙고 물동량은 크게 줄었다. 결국 회사는 시설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자금난에 빠졌고, 뒤늦은 자구노력에도 사세는 기울었다. 그는 2004년 우방 인수 과정에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로비했다는 혐의로 ‘김재록 게이트’에 연루된 바 있지만, 검찰 조사 결과 무혐의 종결된 적도 있다.



윤창희·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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