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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걸음아, 나 살려라’









봄은 산을 올라가고 가을은 산을 내려온다더니 대청봉에 단풍이 절정이란 뉴스를 본 게 엊그제인데 북한산 자락마다 붉은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달려 내려오는 모양이다. 여름옷이 아직도 베란다 빨래건조대에 널려 있는데 겨울 옷을 꺼낼 판이다.



 체중이 늘어 얼마 전에 운동을 새로 시작했다. 반세기 이상을 살면서 늘 경쟁을 끼고 살아온 나는, ‘루저’도 없고 ‘위너’도 없는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걷는 것이 최고란다. 좋은 건 알겠는데 ‘걸어야지’ 하는 맘을 먹을 때마다 잡생각이 방해를 한다. ‘귀찮은데 누워서 재밌는 책을 봐?’ 아님 ‘비디오 영화를 한 편?’ 하면서. 그래서 꾀를 하나 냈다. ‘걸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면 재빨리 운동화를 신고 열쇠를 챙겨서 집을 나오는 거다. 식사 후 뇌가 포만감을 느끼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고 하던데 뇌가 나를 유혹하기 전에 재빨리 집을 나서는 거다. ‘귀찮다. 집에서 쉴걸’ 하는 꾀가 날 때쯤이면 이미 집을 떠나온 상태. 돌아가느니 ‘이왕 나온 거 걷자’ 하고 곧 포기하게 된다. 이렇게 하루 이틀 걷다 보니 이제는 장소를 바꾸어 걷고 싶은 욕심까지 생겼다.



 요즘 걷는 게 붐이란다. ‘제주 올레’를 시작으로 해서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등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걸 보면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걷는 운동은 몸을 나누어 따로따로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다리로는 걷고, 머리로는 생각을, 눈과 코와 귀로는 늘씬한 소나무, 향긋한 꽃 향기, 조잘대는 새소리가 있는 자연과 맘껏 사랑을 나누고, 입으로는 음식물 섭취까지도 가능하다. 걸으면서 자연에게 배운 넉넉한 마음을 이용해 힘들게 꼬였던 일들도 잘 풀어낼 수 있고, 모처럼 한가해진 손가락으로는 그동안 소원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도 한 통 할 수 있다.



 난 몸이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이라 평생 동안 안 해본 운동이 거의 없다. 골프, 헬스, 수영, 자전거 타기까지. 골프는 자연과 만나기야 하지만 막상 공을 치기 시작하면 잔디는 안 보이고 스코어만 보인다. 학기말 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아야 했던 학창시절 마냥 실망스러운 점수가 두려운 까닭이다. 헬스는 말도 없고 향기도 없고 차가운 기계와의 대화도 싫다. 수영은 옷을 벗고 입기도 번거롭고 물에 탄 락스가 내 감수성까지 다 소독해 없애버리는 것 같아서 싫고. 자전거는 날로 소심해지는 성격 탓에 사고가 날까 두렵기도 하고 잘못하면 관절도 손상될 수 있어 꺼려진다. 그래서 앞으로는 평생 걷는 운동만 하기로 했다.



 골프도 코스가 중요하고 헬스도 머신의 용도를 따지듯이 이젠 걷는 것도 장소를 생각하게 된다. 어떤 길은 내 몸을 효율적으로 분리시켜서 ‘멀티 일’을 하게 하고, 어떤 코스는 내 몸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한다. 이것이 목적에 맞는 코스를 고르는 까닭이다. 빼어난 풍경에선 이목구비를 자연에 빼앗겨 몸과 마음이 분주해지고, 갈래머리 다섯 살 적 내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고즈넉한 시골길이나 나지막한 초등학교 앞에선 추억의 여행도 가능하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듯이 골라 걷는 재미도 크더라.



 ‘걸음아 제발 나 좀 살려주라’.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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