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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크기보다 작은 ‘랩온어칩’에 피 한 방울 떨어뜨려 암 진단한다




랩온어칩 속 가는 관에 혈액과 진단용 항체 등을 집어넣는다(사진 위). 랩온어 칩에 유방암을 진단하기 위한 항체 등을 주입하고 있다. [나노엔텍·박제균 교수 제공]



대장암에 걸리면 혈액 속에 ‘CEA’라는 특이한 단백질이 많이 섞이게 된다. 의사들이 이 단백질을 찾아내려면 책상만 한 큼지막한 장비를 가지고 몇 시간을 고생해야 했다. 큰 주사기를 가지고 피도 많이 뽑았다. 하지만 이제 피 한 방울과 명함 크기보다 작은 칩, 그리고 그 칩이 알아낸 정보를 읽어 내는 노트북보다 약간 큰 판독기 한 대면 10분 만에 대장암인지를 판별하는 특이 단백질 유무를 알아낼 수 있다.

 ‘휴대형 실험실’이라는 ‘랩온어칩(Lab-on-a-chip)’이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대형 연구실과 다양한 실험 장비가 필요한 병원 검사실이나 생물 실험실이 작은 칩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1990년 초 연구실 수준에서 시작된 랩온어칩 바람은 이제 의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랩온어칩은 머리카락 굵기의 미세한 관을 플라스틱 속에 다양하게 만들어 혈액 속 암 특이 물질을 많으면 20여 가지 넘게 한번에 검출하고 세포 숫자까지 셀 수 있다. 반도체 기술로 극미세 관을 여럿 만들 수 있어 시험에 필요한 혈액이나 세포의 양이 매우 적다.

 국내에서는 KAIST 박제균 교수팀이 유방암 검사용 랩온어칩을 개발했고, 나노엔텍이 전립선암과 대장암·간암 검사용 칩을 시판 중이다. 미국 마이크로닉스는 알부민 검출용을, 스웨덴 자이로스는 나노 단위의 극소량의 생체 시료를 제어하고 단백질을 정량화하는 제품을 내놨다.

 박제균 교수팀이 개발한 랩온어칩은 극소량의 암 조직으로 한 번에 최대 20여 가지의 암 특이 물질을 검사할 수 있다. 검사 비용은 종전의 200분의 1로, 시간은 10분의 1로 줄였다. 유방암 환자 115명을 상대로 임상시험을 한 결과 최고 98%의 정확도를 보였다. 종전에는 암 조직 하나로 한 가지 암 특이 물질만 검사할 수 있었다.

나노엔텍의 전립선암 검사용은 피 한 방울을 칩에 흘려 넣으면 10분 정도만 있으면 결과가 나온다. 그 속에는 전립선 암의 특이 단백질에만 달라붙는 항체 물질이 들어 있다. 만약 그 항체가 전립선 암에 달라붙으면 빛을 내도록 돼 있다. 판독기는 그 빛을 찾아 검사자에게 화면으로 보여준다. 어떤 회사의 칩은 빛이 아닌 전기 신호로 바꿔 판독하기도 한다.

랩온어칩은 극소량의 유체(혈액이나 시약)가 모세관 현상에 의해 플라스틱 안의 미세 관을 빠르게 타고 흐르는 원리를 활용했다. 반도체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작은 플라스틱 등의 기판에 다양한 검사를 할 수 있게 미세 관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이점이다. 장준근 나노엔텍 대표는 “랩온어칩 하나를 만들려면 실험실에서 수만 번의 실험을 거듭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사람들이 기존 방법으로 했던 결과와 같은 결과가 나올 정도로 신뢰성이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랩온어칩은 병원 검사실과 생물 연구실의 풍경을 바꿔 놓을 전망이다. 또 섬 지역 등 의료 취약 지역에 의료 서비스를 확산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후진국이나 오지 사람들이 랩온어칩으로 예비 진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랩온어칩의 값은 개당 1~20달러(1100~2만2000원) 정도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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