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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개발자 특허권 기부 … 표준 제정 임박

‘한글공정’. 정보기술(IT) 기기의 한글 입력 방식에 대한 국제표준을 만들려는 중국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로선 자존심을 건드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IT 산업은 물론, IT 기기를 사용하는 일상생활이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일까?

그동안 국내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던 표준 제정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연내 ‘국내 표준’ 제정 방침을 정했다. 팽팽히 맞서던 업계에서도 조금씩 입장을 양보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스마트폰에 이어 태블릿PC 출시로 모바일 기기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자판 표준화 작업에는 더 속도가 붙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엔 표준화된 한글 입력방식조차 없다. 대표적인 휴대전화 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천지인 방식(왼쪽)과 나랏글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자판 표준화 실마리=“국가표준 제정을 위해 제가 가진 ‘천지인’ 입력 방식 특허권을 조건 없이 국가에 기증하겠습니다.”

 지난 18일 오후, 과천 기술표준원 청사 회의실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인터넷 서비스업체 아이디엔의 조관현 사장이 예고 없이 ‘폭탄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의 휴대전화 자판인 ‘천지인(天地人)’ 입력 방식을 개발했다. 또 특허권을 둘러싸고 삼성과 소송을 벌인 끝에 이 방식의 특허권을 인정받았다. 소송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이 방식을 사용할 수 있는 ‘통상실시권’을 인정 받았다.

 이날 회의는 기술표준원이 IT 기기에 들어가는 한글자판 표준화를 위해 제조사와 통신업체의 의견을 듣고자 마련한 간담회였다. ‘한글 공정’ 소식이 알려진 마당이어서 업체들의 관심은 높았지만 그동안 평행선을 달려온 업체들의 입장은 이날도 잘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천지인 특허권을 사실상 포기한다는 조 사장의 발언으로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이다.

 현재 국내 시판되는 휴대전화의 한글자판 입력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삼성의 천지인 방식이 시장 점유율 55%로 가장 높다. LG의 ‘나랏글’(20%)과 팬택 계열의 ‘SKY한글Ⅱ’(15%)가 뒤를 잇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휴대전화 문자입력 방식 표준을 올해 말까지 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수차례 업체들과 협의했지만 진척이 없었다. 저마다 자기 방식을 포기할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표준원 송양회 정보통신표준과장은 “국가 표준이 정해져도 특허 사용료를 내야 하는데 자기 기술을 놔두고 굳이 돈 내고 남의 방식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시장의 과반을 점하는 방식의 특허권자인 조 사장이 특허권을 기부하기로 함에 따라 자판 표준화는 중요한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 몇 가지 과제가 남아있기는 하다. 특히 천지인 특허권의 통상실시권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조 사장처럼 특허료를 포기할 수 있느냐다. 일단 18일 회의에 참석한 삼성 관계자는 “돌아가 내부 논의 후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기표원 송 과장은 “삼성이 보유한 특허를 건드리지 않고 조 사장의 특허만으로 표준안을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해 기술적 검토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제 표준도 추진=정부는 일단 연내에 한글 입력 방식에 대한 국제표준 제정도 추진한다는 입장을 세웠다. 하지만 당장은 어디에, 어떻게 표준안을 신청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한 실정이다. 표준원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IT 기기의 글자입력 방식은 영어(라틴문자)를 제외하면 국제표준이라는 게 없다. 가장 많이 쓰는 언어만 국제적으로 표준을 정하고, 소수 언어에 대해선 국가 표준이나, 시장 지배적 표준을 관행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표준원은 곧 국제표준화기구(ISO)나 국제 전기통신위원회(ITU)에 관련 사례와 절차를 질의할 예정이다.

 그나마 컴퓨터 자판은 좀 나은 편이다. 1980년대에 2벌식 자판이 이미 KS 표준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기회에 북한과 중국 동포까지 아우르는 자판 표준화를 추진키로 한 만큼 일부 수정이 필요할 전망이다.

 휴대전화는 우선 국내표준부터 정해야 한다. 정부 의도대로 연내 표준안이 마련된다고 해도 국제표준 획득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국제기구들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알려진 것에 비해 중국의 움직임은 심각하지 않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허경 기술표준원장은 “최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국제표준화총회(IEC) 기구에서 중국 대표를 만나 확인한 결과 중국 정부 차원에서 한글 자판 표준화를 추진한 적이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원희룡 사무총장도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 당국에 확인한 결과 중국 국가표준이 정상 추진되더라도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추진할 때 한국 및 북한과 협조하겠다는 방침”이라며 “이를 반중 감정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오해”라고 밝혔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동북공정’에서도 확인했듯, 중국이 언제든 한글공정을 본격 추진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국내표준 제정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글=최현철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천지인 방식=‘·’ ‘ㅣ’ ‘ㅡ’ 세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한글의 모음부를 표현하는 입력 방식. 천지인은 단군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주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인 하늘(·)과 땅(ㅡ), 사람(ㅣ)을 가리킨다. 한글도 창제 당시 이 방식을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휴대전화 자판 입력 방식 중 삼성전자 제품이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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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