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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떠밀려 부른 노래, 그때부터 인생이 바뀌었죠”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장사익은 상고 졸업반 시절 첫 직장인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이후 가구점·카센터 등 무려 10여 군데 직장을 전전했다. 그러다 44세에 꿈을 찾아 다시 떠났고 결국 노래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 신동연 기자

그와 헤어진 건 1992년 초겨울이다. 그전까지 그는 나의 차를 고쳐주는 친절한 수리공 아저씨였고, 나는 그가 일하는 카센터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런 인연이 1년 넘게 지속되던 어느 날, 그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 카센터를 그만둔다”는 말로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96년 초여름. 여느 때처럼 출근해 신문을 넘기다 발악하듯 온 힘을 다해 노래 부르는 그의 사진과 마주쳤다. 가벼운 전율이 느껴졌다. ‘그가 돌아왔구나…’. 그는 ‘찔레꽃’이란 노래를 들고 약속한 대로 가수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그는 장사익(61)이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달 24일 그를 다시 만났다. 북한산 끝자락에 자리 잡은 홍지동 그의 집에서였다. 그는 환갑을 넘긴 ‘할아버지’로 변해 있었다. 세월의 더께는 하얀 눈이 되어 고스란히 그의 머리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인터뷰를 하기 전 그는 자신의 집에 있는 3개의 정원을 차례로 소개했다. 제일 먼저 집 오른쪽 담과 닿아 있는 ‘북한산 정원’. 검회색 화강암 바위 주변 푸른 소나무 숲이 울창한 이 정원은 거대한 북한산이 통째로 그의 집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두 번째는 독수리 모양을 하고, 금방이라도 집 안으로 들이닥칠 듯이 날개를 펴고 있는 집 앞 ‘인왕산 정원’이다. 그는 인왕산 중턱에 부처의 얼굴을 한 바위가 자신의 집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으로는 단풍나무와 소나무, 작은 연못이 있는 집 안 정원이다. 그곳에는 그가 깻잎을 먹으려고 심은 들깨도 자라고 있었다.

인터뷰는 3개의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2층 마루에서 이뤄졌다.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3개의 정원은 이곳이 서울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인터뷰를 하면서도 수시로 시선이 창밖으로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집이 참 아름답다.
“전에 살던 집이 어머님 모시기에 좁아 새집을 찾다가 운명적으로 만났다. 보는 순간 ‘야! 이건 내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없었지만 그날 당장 복덕방 아저씨하고 계약을 했다. 봄이 되면 파랗게 물들고, 가을이면 낙엽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려고 벽을 터서 커다란 창을 만들었다.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기 싫어 커튼도 달지 않고 산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92년 겨울 카센터를 떠나 무엇을 했나.
“카센터에서 차 수리를 3년째 하던 43세 때였다. 갑자기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물놀이 멤버 이광수를 찾아갔다. 다짜고짜 ‘새납(태평소) 좀 불게 끼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1년 반 정도를 지냈다. 그런데 94년도 중반부터 노래가 툭툭 튀어나오더라. 무당 접신하는 게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주위에 있던 동생들이 ‘성(형) 나가서 노래해’라고 등을 떼밀었다. 딱 한 번만 노래하자고 해서 그해 11월에 마이크를 잡았다. 그때부터 내 인생이 바뀌었다.”

-이광수씨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였나.
“내가 이광수 선생님의 엄청난 팬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밑이지만, 내가 쫓아다니면서 형·동생처럼 지냈다. 그런 인연 때문에 그에게 태평소 연주를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노래 스타일이 참 특이하다.
“열심히 노래를 했는데 어느 순간 노래가 너무 재미없었다. 그때 타악 연주의 대가였던 김대환 선생님이 ‘산토끼를 박자 맞추지 말고 불러봐라’고 했다. 속으로 박자 세는 것, 그것까지 깨보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찔레꽃은 박자가 없다. 호흡으로 가는 것이다. 박수를 치려고 해도 박수칠 틈이 없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도 내가 부르면 엿가락같이 늘어져버린다. 느린 게 차 있는 것이다. 자연도 호흡이 있다. 노래도 호흡이 있다. 노래의 호흡을 살려줘야지, 박자 맞춰서 딱딱딱딱 그렇게는 못한다. 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호흡이 그분들한테도 가 닿아서 그럴 것이다.”

-호흡으로 가는 감각은 타고난 것인가.
“아버지가 고향에서 장구를 잘 쳤다. 그 소리를 듣고 자랐다. 또 동네에 태평소 잘 부는 아저씨가 한 사람 있었다. 거의 저녁마다 둑에서 태평소를 불었는데, 동네 아이들 중 유일하게 나만 만날 그 아저씨 옆에 가서 소리를 들었다. 그게 아마 ‘끼’였던 것 같다. 서울 올라와서 80년대 중반 직장 다닐 때 저녁에 시간을 내 본격적으로 태평소를 배웠다. 3개월 지도 받고 독공했다. 그때 대금도 배웠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불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장구와 그 아저씨의 태평소 소리가 항상 나한테 살아 있었던 것 같다. 힘들 때마다 그 소리가 들렸다. 내 노래에도 도움을 주었을 거라 생각한다.”

(인터뷰는 정신산란했다. 얘기를 좀 들을까 싶으면 전화가 오고, 또 받아쓸 준비하면 이번에는 “아 참, 내 정신 좀 봐” 하면서 일어선다. 이래저래 두 시간 가까이 녹음한 파일이 5개나 됐다. 어름차를 직접 타서 대접하더니 이번에는 삶은 고구마를 가져왔다. “가을 고구마가 참 맛있어. 한번 먹어봐”라며 먼저 한 입 베어 문다. “밤 같네”라고 말하며 그는 참 맛있게도 고구마를 먹었다.)

-몇 살까지 노래 부를 생각인가.
“우리 아버지 세대는 80까지 살았다. 우리 세대는 90까지 산다. 나는 45세에 노래인생을 새로 시작했다. 90세에서 보면 45세는 한가운데다. 지난해는 환갑 기념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중앙일보에서 주최하는 중앙마라톤에서 4시간12분34초03의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살아온 것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 살 것에 대한 의의를 찾고 싶어뛰었다. 후유증이 2~3개월 있었지만 잘 한 것 같다.”
(이런 말로 몇 살까지 노래하겠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의 속셈은 뻔히 들여다보였다. 45세에 시작했으니 자신의 노래 인생은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다는 거고, 마라톤까지 뛸 정도로 체력도 좋으니 할 때까지, 가능하다면 90세까지 하겠다는 거였다.)

-요즘 노래 말고는 주로 무슨 일을 하나.
“서예로 재미를 많이 본다. 혼자 낙서하는 거다. 선생이 없다. 나는 즐길 낙자를 써서 ‘낙서(樂書)’라고 부른다(웃음).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하면 길이 보인다.”

-10월 말에 공연한다고 들었다.
“27~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한다. 2년 만에 하는 세종문화회관 정기 공연이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역’이다. 역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세상은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역이다. 기차 타고 내리고 하는 그런 역이다. 올 6월 같이 공연했던 후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때 잎사귀가 스스로 주인이 돼서 가지를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별로 간 것이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긴 하지만, 아무튼 이번 공연 주제가 그 친구의 죽음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때 어떤 노래를 할 건가.
“역이라는 김승기의 시를 노래한다. 김승기는 영주에 사는 정신과 의사다. 중앙일보의 ‘시가 있는 아침’에 소개된 그의 시를 읽고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해 직접 연락해 노랫말로 쓰고 싶다고 허락을 얻었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걱정’도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 나이 들어 엄마 소리 한번 해볼라고 한다(웃음).”
(인터뷰 말미에 공연 이야기가 나오자 장사익은 “근데 홍보가 하나도 안 됐어”라며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그래서 ‘표가 안 팔렸나’라고 물었더니 “1층 좋은 자리는 벌써 다 팔렸대”라고 대답했다. 그때가 지난달 24일이다. 집을 나오면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박경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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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