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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를 조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는 대비해야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 고(故) 존 템플턴은 “금융 세계에서 가장 위력적인 말은 바로 ‘이번은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한마디”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 참여자들이 현명한데도 자산 가격 급등과 급락이 되풀이되는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시장 참여자들이 ‘이번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전 폭락의 경험은 현재와 무관한 일이 된다. 과거의 교훈은 의미 없어진다. 오직 현재와 미래만 중요할 뿐이다. 고삐 풀린 듯 자산 가격이 치솟는다.

요즘 국제 금시장에 비슷한 말이 퍼지고 있다. “‘금은 다르다(Gold is different)’는 말이 유행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닷컴 주가나 집·원유 가격은 추락했지만 금값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 믿음의 근거는 종이돈의 홍수(유동성 풍년)다. 금융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주요 국가 중앙은행들이 자국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 총량과 견줘 턱없이 많은 종이돈을 퍼부었다. 주요 국가에서 ‘재화·서비스-종이돈’의 비율이 깨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돈 가치가 뚝 떨어지는 사태(인플레이션)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환율전쟁도 금값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이 경기 부양과 중국 견제를 위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금융시장에서 예측은 곧 기대를 낳고, 기대는 가격 변화를 일으키는 법이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일본 엔화나 유로(euro) 등과 견줘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금값은 1온스당(31.0134g) 1300달러 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중요한 문턱(Crucial Threshold)’을 넘어선 듯하다. 이런 급등의 바탕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있다. 그들은 금시장의 새로운 주인공들이다. 이전까지는 스마트 머니(Smart Money)로 불리는 큰손이나 중국·인도·러시아 등의 중앙은행, 헤지펀드들이었다. 영국 BBC방송은 런던 금시장 사람들의 말을 빌려 “올 8월 이후 개인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금 베팅에 나섰다”고 12일 전했다.

‘금 상장지수펀드’로 상승세 가속
개인 투자자들은 ‘금은 다르다’는 믿음 말고도 새로운 투자수단으로 무장했다. 금 상장지수펀드(ETF)라는 무기다. 애초 ETF는 주가지수나 특정 종목의 주가를 바탕으로 발행된 인덱스펀드 증서(주식)다. 투자자는 시장에서 ETF를 사고파는 방식으로 그 지수나 종목에 투자하는 효과를 거둔다.

금 ETF는 런던이나 뉴욕의 금값을 기준으로 발행된 인덱스펀드 증서다. 미 금융회사인 스트리트트랙스골드셰어(스트리트)가 2003년에 처음 개발해 내놓았다.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이 펀드의 주식을 사는 방식으로 금에 투자한다. 금 ETF 매니저는 투자자들의 돈을 활용해 실제 금을 사서 은행 금고에 보관해 둔다. 투자자가 원하면 베팅한 만큼 금을 나눠준다. 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투자자는 거의 없다. 뮤추얼펀드 투자자가 내 투자금만큼 주식이나 채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거의 없듯이 말이다.
“금 ETF는 피임약만큼이나 혁명적이다.” 스트리트 펀드매니저 로빈 리가 최근 유로머니지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피임약 때문에 여성들이 임신의 수고에서 벗어났듯이 금 ETF 덕분에 투자자들이 무거운 금을 사서 안전하게 보관했다가 되팔아야 하는 어려움에서 해방됐다는 의미다.

금융역사에서 걸림돌이 제거되면 가격이 급등하기 십상이었다. 돈 떼일 때를 대비한 보험인 신용디폴트스와프(CDS)가 1990년대 초반 발명된 이후 월스트리트 금융회사들이 주택자금을 활발하게 공급해 미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금 매매 어려움에서 해방된 개인 투자자들의 돈으로 무장한 금 ETF들이 런던과 뉴욕 금시장에서 경쟁적으로 금을 사들였다. 금 ETF가 귀금속 가공회사, 각국 중앙은행, 스마트 머니, 헤지펀드에 이어 금 매입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미 투자자문가인 게리 노스는 11일 마켓워치와 인터뷰에서 “금 ETF들이 9월 말 현재 보유한 금이 스위스(1040t)의 세 배 가까운 3000t 수준”이라며 “최근 금 시장에 가장 큰 에너지 공급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황금논쟁, 가치 vs 버블
요즘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이 금값 예측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럴 듯한 근거(유동성 풍년)와 충분한 에너지(금 ETF 매수)가 갖춰진 마당이니 투자은행 상품 애널리스트들이 별 두려움 없이 금값 상승에 베팅하고 있는 듯하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최근 보도했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12일 “금값이 1년 안에 1온스당 165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특히 골드먼삭스는 앞으로 6개월 사이에 가파른 오름세가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금값이 석 달 안에 1400달러 벽을 넘어서고 6개월 안에 1525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독일 도이체방크도 최근 내놓은 상품투자 보고서에서 “금값이 내년 안에 1700달러 선을 뚫고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지펀드의 귀재’인 조지 소로스(80)는 최근 유로머니지와 인터뷰에서 금융회사들의 금값 예측 게임이 “1980년대 일본 증권회사들이 ‘닛케이225지수가 4만이나 6만 선까지 간다’고 했던 것만큼 무책임하게 들린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회사 예측은 투자자들을 들뜨게 해 더 큰 거품을 생기게 한다”고 말했다.

소로스는 올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주요 중앙은행들이 제로금리 정책을 쓰는 바람에 자산거품을 일으킬 여러 조건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금이 최후의 버블”이라고 경고했다. 닷컴과 주택 거품에 이은 피날레라는 것이다.

반면 이번 금융위기를 예고한 마크 파버(64) 마크파버투자자문 회장은 11일 중앙SUNDAY와 전화통화에서 “금은 가장 믿을 만한 화폐이고 본질가치가 확실한 실물자산”이라며 “유동성 풍년의 시대에 최고의 안전 자산이기 때문에 금값은 계속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파버는 금값 추락 가능성에 대해 “당분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종이돈이 세계 금융시장을 휩쓸고 있다”며 “유동성 과잉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금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대공황 이후 두 번째 황금 붐
금값 전망을 놓고 논쟁이 치열해지자 월가 전문가들은 눈을 과거로 돌리고 있다. 그들은 유명 투자자들의 직관이나 통찰력보다는 과거 경험에서 미래의 단서를 찾으려고 한다.

가장 최근 금값 급등은 80년대 초에 있었다. 이란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 집권과 2차 석유파동,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물가상승)이 금값을 밀어올렸다. 2009년 달러 가치로 환산한 금값은 1온스당 2240달러에 달했다. 아직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올해 금값 급등은 대공황 이후 두 번째이고 80년대 초 이후 약 한 세대 만에 벌어진 진풍경인 셈이다.

에드윈 크루먼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최근 미 금융전문 인스티튜셔널인베스터스와 인터뷰에서 “요즘 금시장 구조가 80년대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금 시장은 정부의 규제에 묶여 있다가 70년대 초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자유화됐지만 금 ETF 등장 전까지는 전문가들의 놀이마당이었다”며 “하지만 요즘 금시장은 개인 투자자들이 뛰어들어 주식이나 주택 시장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금시장은 버블의 중간단계
그래서 요즘 닷컴이나 주택시장 거품을 바탕으로 최근 금시장을 분석해보려는 움직임이 많다. 미국 금융분석회사인 팩트셋리서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금값과 닷컴주가·주택가격을 비교해보니 패턴이 아주 비슷하다”며 “하지만 금값 수준이 닷컴이나 주택 가격의 정점엔 미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미 경제전문 매체인 블룸버그가 80년대 초와 현재 금값을 비교해보니 팩트셋리서치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왼쪽 그래프 참조>

크리스 엘리스 팩트셋리서치 부사장은 “분석 결과는 거품론과 가치론 두 가지로 모두 해석할 수 있다”며 “금값 흐름은 거품 증상을 보이는 자산과 비슷하지만 아직 정점에 이르지는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 주택시장 거품을 사전에 분석해낸 딘 베이커 미 경제정책연구소(CEPR) 공동대표는 최근 미 스마트머니와 인터뷰에서 “금값이 하이먼 민스키의 버블 패턴을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맨위 그래프 참조> 96년 숨을 거둔 민스키는 생전에 금융버블 최고 전문가로 꼽혔다. 민스키는 생전에 “거품은 값싼 돈과 높은 기대 수익 등을 바탕으로 부풀어 올라 대중 참여→열정→탐욕→새시대 논리(합리화)→현실 부정→붕괴 순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베이커는 “현재 금값은 대중참여 단계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의 분석은 최근 개인 투자자들이 금 ETF를 통해 금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사실과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개인 투자자보다 먼저 금 매입에 나선 현명한 투자자(스마트 머니)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올 8월 유로머니는 “지난해 금에 베팅한 소로스와 에릭 민디치, 데이비드 아인혼 같은 스타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일부 금을 내다팔아 현금화했다”고 전했다. 베이커의 분석대로라면 금값은 거품의 중간단계쯤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금값은 열정과 탐욕, 새시대 논리 등의 단계를 거쳐 붕괴할 수도 있다.

마크 파버는 “모든 자산가격 급등이 거품은 아니다”며 “최근 금값 상승은 달러의 근원적인 문제 때문에 빚어진 구조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쉽게 금값이 꺾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파버도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 투자는 ‘굴드-헌트 에피소드’가 되기 십상”이라며 “개인 투자자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는 했다.

미국 굴드-헌트 몰락은 타산지석
파버가 말한 ‘굴드-헌트 에피소드’는 1860년대와 1980년대 초 금과 은 투기를 주도했다가 몰락한 제이 굴드와 넬슨 헌트의 이야기를 말한다. 두 사람은 금융 역사가들이 말하는 ‘검은 금요일(Black Friday)’과 ‘은빛 목요일(Silver Thursday)’의 주인공들이다.

굴드는 남북전쟁으로 돈이 많이 풀린 상황을 이용해 1869년 금을 매집했다. 처음에는 금값이 급등해 재미를 봤으나 미 재무부 등이 보유한 금을 처분하고 나서는 바람에 파산했다(9월 24일 금요일).

헌트는 70년대 후반 금값과 더불어 오르는 은을 1억 온스나 사들였다. 헌트도 80년 3월 은을 팔자는 주문이 밀려들면서 끝내 파산했다(3월 27일 목요일).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달러 가치가 의심스러울 때 투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굴드는 미 북부가 남북전쟁을 치르기 위해 발행한 금과 태환되지 않는 화폐(그린백) 때문에 유동성이 넘쳐났을 때 금을 매집했다. 헌트가 은 투기에 나선 70년대 후반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했다.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어느 날 갑자기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팔자 주문에 당했다는 사실이다. 굴드는 미 재무부 등 그 시절 최대 금 보유 세력의 매도에 당했다. 헌트는 평범한 사람들이 은값이 치솟은 틈을 타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내놓은 은쟁반과 은촛대 때문에 무너졌다. 굴드나 헌트 모두 가격이 오르면 팔자 주문이 늘어나는 시장 원리에 당한 셈이다. 이는 요즘 금 투자자들도 벗어나기 어려운 시장의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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