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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옌데의 꿈

칠레 현대사는 오랫동안 죽음과 어두움으로 점철됐다. 1970년 11월 선거로 집권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좌파 정권을 73년 9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군사쿠데타로 무너뜨리면서다.

아옌데는 70년 9월 대선에서 좌파 대중연합의 후보로 나섰다. 그는 팽팽한 접전 끝에 36.6%를 득표해 35.4%를 득표한 우파 국민당의 호르게 로드리게스를 눌렀다. 표 차이는 3만9338표에 지나지 않았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헌법에 따라 의회 투표를 거쳐 아옌데가 대통령이 됐다. 집권한 아옌데가 과감하게 진보정치를 펼치자 우파는 군사 쿠데타를 부추겼다. 미 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은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이를 지원했다.

아옌데는 쿠데타 직후 대통령 관저인 모데나 궁에서 라디오 생방송으로 국민에게 작별 연설을 했다. 그 암울한 순간, 아옌데는 희망을 강조했다. “내 나라의 노동자들이여, 나는 칠레와 그 운명에 대한 신념이 있습니다. (중략) 이 어둡고 쓰라린 순간은 극복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위대한 시대가 다시 열릴 것입니다.”

쿠데타군은 도주로를 열어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그는 연설 직후 경호원들에게 투항을 지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AK-47 자동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 소총에는 ‘방법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은 친구 살바도르에게, 피델로부터’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무장혁명으로 정권을 탈취한 카스트로가 선거로 당당히 정권을 차지한 동지에게 보낸 글이었다.

아옌데 지지자들은 그의 자살을 믿지 않았다. ‘직접 소총을 들고 쿠데타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했다’ ‘쿠데타 병력이 체포한 뒤 총살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아옌데는 ‘순교자’로 받들어졌다.

정권을 찬탈한 피노체트는 억압적인 공포정치를 폈다. 반정부 활동을 벌이거나, 또는 꾀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았던 3000여 명이 행방불명됐다. 대부분 살해된 뒤 암매장되거나 비행기에 실려 태평양 바다에 버려졌다. 피노체트는 감옥과 수용소에 수감 중인 반정부 인사를 찾아가 살해하는 ‘죽음의 캐러밴’이란 처형 전문 부대를 운영했다. 비밀경찰인 DINA를 세워 국내외에서 반정부 인사 암살 공작도 벌였다.

공포정치가 너무도 혹독했기에 군사정권이 무너졌음에도 칠레 국민의 상처와 좌우 갈등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추락한 대정부 신뢰도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벌어진 조사에서 아옌데의 자살이 사실로 밝혀졌어도 믿지 않는 사람이 상당수다. 쿠바의 카스트로조차 아옌데의 자살을 인정했는데도 말이다.

그런 칠레가 700m 깊이의 땅속에 갇혀 있던 광부 33명을 구출하면서 좌우를 뛰어넘는 국민 단합을 이뤄내고 있다. 죽음과 불신이 아닌 생존과 신뢰의 분위기가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세상을 바랐던 아옌데의 꿈이 이뤄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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