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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정치인’에게 던지는 두 가지 질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기자가 대학에 입학한 해는 1983년이다. 미완으로 끝난 80년 서울의 봄과 5·18 광주항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던 때였다. 캠퍼스는 온통 화염병의 불꽃과 최루탄 가루로 얼룩졌다.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갔다. 목이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쳤다.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화된 세상, 남녀·빈부·귀천을 따지지 않는 평등한 삶,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자유와 평화가 넘쳐나는 세상을 갈구했다. 외치고 또 외치면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그때 우리를 움직이게 한 건 정치적 계산이나 이해타산이 아니었다. 우리가 소중하다고 믿었던 가치, 민주주의·평화·자유·평등·인권 같은 가치를 실현하려는 거였다. 이런 ‘진보적 가치’는 폭력·투옥,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게 만든 최고의 목표이자 이상이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내 또래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이제 한국 정치, 특히 야당을 이끌어가는 한 축으로 떠올랐다. 이른바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6·2 지방선거를 전후로 정치의 전면에 우뚝 섰다. 더러는 당 지도부에 입성했고 일부는 크고 작은 지방정부의 수장이 됐다. 보수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지금, 그들은 다시 ‘진보의 가치’를 앞세우고 있다. 진보는 그들을 보수와 구분 짓는 장치다. 지방선거에서 그들은 무상급식의 전면 실시를 공약으로 내세워 열세를 딛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한나라당은 이를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지만, 어차피 권력이란 게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우선적 권한을 갖는 것이라고 본다면, 비난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플러스 요인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무상급식이 인권·평등·복지와 같이 그들이 강조해온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한다면 그리 비난만 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지난주 사망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에 대한 조문을 놓고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행태 때문이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끝내 황 전 비서에 대한 당 차원의 공식 조문을 하지 않았다. 박지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원내대표단이 사흘 만에 빈소를 찾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온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두 가지가 궁금해진다. 민주당은 왜 당의 공식 조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또 조문을 가지 않기로 한 게 당의 공식 결정이었다면 왜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것일까.
공당이라면 이런 의문들에 당연히 답해야 한다. 정치는 계산이 아니라 신념으로 하는 것이다. 철학과 노선에 따라 편을 가르고 정책을 개발하는 게 정당정치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한나라당·민주당 등으로 나뉘어 따로 당을 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황 전 비서 사망과 같은 논쟁적 주제에 대해 침묵하는 건 스스로 철학과 정책의 부재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왜 북한 문제만 나오면 그토록 강조해온 ‘진보적 가치’가 작동하지 않는지도 궁금하다. 그들이 추구해온 진보적 가치는 무엇인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인권 탄압을 받지 않으며, 누구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투표를 하고 그에 따라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하자는 것 아닌가. 남북 통일도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 아닌가. 북한은 인권 탄압과 반민주, 독재의 오명에 이어 3대 세습까지 감행함으로써 봉건왕조로 회귀하고 있다. 그럼에도 ‘진보적 가치’를 앞세우고 있는 그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은 지난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결혼하고 싶은데, 결혼 전에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하면 결혼을 못하게 되지 않느냐”고 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민노당과 자신의 선택이라고 했다. 북한을 비판하면 남북관계가 경색돼 통일이 어려워질 것이란 도그마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침묵하면 통일이 앞당겨지는가. 시대착오적이며 성숙되지 못한 유치한 발상이다.

같은 시대, 같은 경험을 했던 그들에게 묻고 싶다. 30여 년 전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 가치와 신념을 지금도 여전히 소중하다고 믿는지 말이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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