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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때문에 물 말랐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겠느냐”

심재한 박사가 2008년 가을 생태조사 때 천성산 밀밭늪에서 발견한 도롱뇽<1>. 취재팀이 8일 천성산 밀밭늪에서 촬영한 가재<2>와 끈끈이주걱<3>. 천성산 정상에 있는 화엄늪에는 억새가 많이 자라고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다<4> .신인섭 기자 심재한 박사 제공
7일 오후 5시 경남 양산시 주남동은 소독차가 다니고 있었다. 주민들은 주변에 공장 지역이 있어 가끔 소독차가 와 소독하고 간다고 했다. 천성산 바로 아래 위치한 주남동에는 350여 가구가 모여 산다.

“비 오면 물 많고 가물 땐 적고 그렇지”
마을 중간에 있는 축사에서 주민 이정원(71)씨를 만났다. 이곳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지금까지 계속 살고 있다는 이씨는 8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축사에서 소에게 여물을 주고 있었다. 그에게 천성산 터널 공사를 하기 전과 후 달라진 점을 물었다.

“달라진 건 없어요. 예나 지금이나 비가 많이 오면 산에서 물이 많이 나오고, 적게 오면 적게 나와요. 전이랑 똑같아요”라며 “만약 공사 때문에 물이 말라 버렸으면 큰일났죠. 우리 동네는 천성산 물로 사는데 동네에서 제일 먼저 알고 난리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남동 주민들은 천성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한다고 했다.

“우리도 처음에 산에 터널을 뚫는다는 말을 듣고 산에 물 빠질까 봐 걱정 많이 했어요. 환경도 환경이지만 우리한텐 당장 쓸 물이 필요하잖아요. 공사 한창 할 때 큰 트럭이 마을 길로 왔다 갔다 하니까 먼지도 많이 나고 위험해 불편했던 것 말고는 아직까진 문제없어요.”

이씨는 주남동 주민 20여 명이 모여 만든 ‘곰산악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여기저기 산에 같이 가는데 천성산에는 매년 한 번 정도 가요. 지난해도 갔어요. 그때 봤을 땐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어요”라며 축사 옆에 있는 개천을 가리켰다. “여기 밑에 있는 개천물도 그대로잖아요.”

“그럼, 괜찮은 건가요?”라고 묻자 그는 정색하며 “아직까지는 굴 파기(터널 뚫기) 전이랑 달라진 게 없다는 거예요. 흙도 아니고 돌을 뚫었는데 그 영향이 나타나려면 몇 년은 걸리겠죠. 자연은 아무도 모르는 거요.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후에 역사가 말해 주겠지요”라고 했다.

이씨 축사에서 10여 분 산 쪽으로 걸어 올라가자 ‘마음의 쉼터’라는 간판의 작은 식당이 보였다. 삼겹살·찌개·막걸리 등을 파는 이 식당을 운영하는 이정석(65)씨는 이곳이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씨 역시 주남동에서 태어나 계속 같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천성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저장하는 물탱크와 그 물을 주민들 집까지 연결하는 수도의 관리 담당자였다. 마을 주민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의 양이 계절이나 강수량에 따라 매번 달라져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으는 탱크를 설치했다. 현재 산에 4개의 탱크가 설치돼 있다. 비가 많이 와 물이 많이 내려오면 그 물을 모아 사용하고, 가뭄으로 물이 모자라면 전기를 이용해 지하수를 퍼 올려 탱크에 물을 채운다고 했다.

“우리 마을은 수도요금이 없는 셈이에요. 물은 완전 공짜지 머. 물세가 기본으로 1년에 1만2000원 나와요. 근데 이건 수도시설 유지비 때문에 걷는 거고, 물을 써서 돈 내는 건 거의 없죠. 가뭄이 들어 물이 안 내려오면 지하수를 퍼올리는 데 사용하는 전기료가 나오겠죠.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라며 “우리 집이 1년에 3만원가량 나오는데 이 정도면 아주 많이 쓰는 거예요. 우리는 가족도 많고 가게를 해 물을 많이 쓰거든요.”

물 탱크 관리를 위해 3~4개월마다 천성산에 오른다는 이씨는 “풀이나 동물이야 내가 봐서 아나요. 그냥 지나가는거지”라며 “나는 물 때문에 가는 거니까 올라가면 물만 보고 와요. 아직까진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없어요. 물이 내려오는 게 조금이라도 달라졌으면 동네 사람들이 제일 먼저 알죠. 당장 먹을 물이 없는데 가만있겠어요?”라고 했다.

“물 뜨다 살모사 만난 적도 있어”
양산시 하북면에서 사는 이용화(58)씨는 거의 매일 천성산에 오른다. 습지 보호지역인 화엄늪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2006년부터 낙동강유역환경청 소속 습지감시원이 된 이후 계속하고 있는 일이다. 그는 차로 30여 분을 달려와 20여 분을 걸어 오전 9시에 화엄늪에 도착하면 오후 6시까지 그곳에 머문다. 이씨는 8일 오후 3시에도 화엄늪에 있었다. 이씨와 함께 둘러본 천성산 제1봉에서 비스듬히 아래로 펼처진 화엄늪(약 12만4400㎡)에는 나무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평일 100여 명, 주말 700~1000여 명에 이르는 등산객의 습지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밀밭늪과 마찬가지로 억새와 진퍼리새가 많고, 늪 안쪽에서 질퍽한 습지와 도랑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습지 한쪽에서 길이 약 1m, 깊이 30cm 정도의 구덩이를 발견했다. 이씨는 멧돼지가 영역을 표시해 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근처에 멧돼지가 많다며 한 번 내려오면 저렇게 근처에 풀을 다 쓰러뜨리고 자기 영역 표시를 해 놓는다고 했다.

2006년 이후 4년간 달라진 점을 묻자 목에 걸고 있던 망원경을 건네주며 늪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여기 화엄늪이 달라진 건 딱 하나예요. 2006년이랑 비교해 다른 건 저기 보이는 나무가 많이 자란 겁니다. 예전에는 작은 나무였거든요. 이젠 제법 많이 컸어요. 물은 큰 변화가 없어요. 전이나 지금이나 비가 많이 오면 습지에 물이 많고 가뭄이면 물이 적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물은 항상 늪에 있어요.”

이씨는 지금까지 습지 감시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지난해 했다고 한다. 화엄늪 바로 옆에 있는 초소에서 사용할 물을 뜨러 평소처럼 습지 안으로 들어갔다가 뱀과 맞닥뜨린 것이었다.

“물을 뜨고 뒤돌았는데 눈앞에 살모사가 머리를 세우고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아, 진짜 무서워 죽을 뻔했지요. 안 움직이고 가만있으니까 풀 사이로 사라졌어요”라며 “여긴 뱀도 많고 도롱뇽도 엄청 많습니다. 올봄에도 웅덩이마다 도롱뇽이랑 도롱뇽알 천지였습니다”고 말했다.

“밀밭늪 목책 친 후 훼손 줄어”
안종학(47) 양산시청 기획계장은 2007·2008년 환경관리 계장으로 일했다. 8일 오후 전화 통화에서 그는 “환경계장일 때 매년 밀밭늪에 4~5번씩 다녀왔어요. 도롱뇽이야 천성산에 천지빼까리(너무 많아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다)입니다”고 말했다. 안 계장은 환경 담당 업무를 맡게 되자 천성산의 여러 습지에 직접 가 봤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습지를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7년 천성산 밀밭늪에 갔던 그는 습지가 등산객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됐다.

“고속철도 공사다 뭐다 말이 많았지만 밀밭늪은 등산객이 다 훼손하고 있었습니다. 별도로 구획을 나눠 울타리를 쳐 놓지 않아 등산객들은 거기가 생태 늪인 줄도 모르고 들어가더라고요. 일단 사람들이 들어가면 습지는 훼손되죠. 그래서 2008년 나무울타리를 만든 겁니다. 그 뒤로는 밀밭늪을 아는 사람만 가요. 그래서 자연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된 것 같습니니다.”

천성산 내원사 성불암에서 생활하고 있는 정민 스님은 조금 다른 얘기를 했다. “재작년부터 겨울만 되면 물이 말라 버려요. 여름에는 잘 나오는데…. 올겨울도 걱정이네요.” 30여 년째 성불암에서 생활하고 있는 스님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지난겨울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청소는 마른걸레로 하고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 너머 다른 암자에 가서 해결했다고 했다.

“고속철도 운행한 후에도 생태조사해야”
“저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 천성산 터널 공사가 산에 사는 양서·파충류에 미친 영향을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변함없다’였습니다. 공사 전과 후가 달라진 것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건 2010년 10월 13일 현재까지의 결과예요. 다음 달 고속철도가 개통되고 날마다 KTX가 다니면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기차가 다니면 진동이 생기는데 특히 곤충이나 양서·파충류는 진동에 아주 민감해요. 재확인이 꼭 필요해요.”

충북대 강상준 교수와 팀을 이뤄 천성산 밀밭늪과 법수원계곡에서 생태조사를 진행한 한국 양서·파충류 생태연구소 심재한(49) 소장은 야생동물이 살려면 물과 은신처, 먹이가 있어야 하는데 밀밭늪은 세 가지가 모두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천성산 밀밭늪은 자연 생태계가 스스로 유지되는 공간으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했다.

13일 수원 연구소에서 만난 심 소장은 고속철도가 개통한 뒤에도 반드시 천성산 생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설 시공업체들을 보면 그래도 공사 전이나 도중에는 생태조사를 진행하는데 일단 공사가 끝나면 쉬쉬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공사 입장에선 공사 후 생태조사를 했다가 뭐 하나라도 잘못 나오면 문제가 생길까 봐 꺼리는 거죠. 하지만 이건 끊임없이 자연을 개발하는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가져야 하는 의무입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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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