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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버리 아서왕이 성배를 찾은 곳은…

영국을 구한 전설적인 영웅 아서왕과 용맹의 상징인 ‘원탁의 기사들’. 그들이 성배를 찾아 떠나는 모험, 더 이상 성스러울 수 없는 목표를 향한 위대한 인물들의 도전의 실체는 어떤 것이었을까? 과연 전설처럼 멋지고 용감하며 신성하기만 했을까?
뮤지컬 ‘스팸어랏’은 1975년 몬티 파이톤의 코미디 영화 ‘몬티 파이톤과 성배를 찾아서(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가 원작이다. 2005년 초연 당시 토니상 최우수뮤지컬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한 브로드웨이 걸작 뮤지컬이 10월 1일부터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 중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뮤지컬 맛보기 선물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명 뮤지컬 패러디가 넘쳐난다. ‘오페라의 유령’ ‘맨 오브 라만차’ ‘캣츠’ ‘미스 사이공’ ‘그리스’ ‘헤드윅’ ‘점프’ ‘지킬과 하이드’ ‘코러스라인’ 등이 없었다면 이 뮤지컬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소한 안무부터 캐릭터·음악·노래의 전형성까지 작품 구석구석을 도배하는 기존 뮤지컬들의 조악한 패러디는 과연 무엇을 위한 설정일까. 패러디를 위한 패러디의 열전 속에 어쨌든 스토리는 간신히 맥을 이어 전개된다.

호수의 여인에게 엑스칼리버를 넘겨받아 왕으로 인도된 아서(박영규·정성화). 혼란의 시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함께 싸울 기사들을 모으지만 랜슬롯·로빈·갈라하드·베데베르 등 모여든 기사들은 전설 속 용맹함과는 거리가 먼, 엉뚱하고 겁도 많은 보통 사람들이다. 인간적인 아서왕과 오합지졸 다섯 기사는 나라를 구하겠다며 전설의 도시 캐멀롯으로 향하지만 나라를 구하기는커녕 술과 유흥에 빠져 목표를 상실한다. 뭔가 역사에 남을 위대한 일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아서왕은 신에게 의탁하고, 신으로부터 잃어버린 성배를 찾으라는 위대한 목표를 부여받은 그들은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그러나 인생이란 원래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법. 성배를 찾아 떠난 여정은 각종 난관에 부딪히면서 눈앞의 목표는 자꾸만 바뀐다. 결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올려야 한다는 느닷없는 과제를 부여받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 뮤지컬 대박 흥행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연예인’이 없기 때문이다(브로드웨이 원작에서는 유대인 라인으로 조성된 브로드웨이 풍토를 꼬집어 ‘유대인 제작자’를 찾아야 하는 설정이란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작품 전체에 등장하는 각종 유명 뮤지컬 장면 패러디의 의미가 드러난다.

한 무대에 오른 10여 개 유명 뮤지컬 캐릭터는 흥행을 위해서는 스타 연예인을 앞세워야 하는 국내 뮤지컬계의 씁쓸한 현실을 작정하고 고발한다. ‘삐까번쩍한 세트, 엄청난 특수분장, 최신 무대기술, 천상의 목소리, 간지 좔좔 안무도 주인공이 연예인이 아니면 아무 소용없다. 관객석은 텅텅 비고 투자자는 쫙쫙 빠진다’는, 화려한 무대 뒤 어두운 현실에 대한 냉소적 자아비판이다. 연예인 숭배 풍토 속에 연예인과 더블 배역을 맡아야 하는 뮤지컬 전문 배우의 설움을 토로하는 주인공들. 박영규, 슈퍼주니어 예성 등 스타 연예인을 적극 기용한 본작품 스스로에 대한 자조적 고백이다. 그러나 비관스러운 현실조차 웃음에 섞어 날려 보낼 뿐, 어떤 무거운 사색도 요구하지 않는다. ‘인생 뭐 있나, 웃어 보자’면서.

연예인을 잡아 뮤지컬을 올려야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하는 아서왕에게 호수의 여인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준다. 당신이 바로 연예인이며 이미 뮤지컬 무대에 서 있지 않느냐고. 어디 뮤지컬뿐이겠는가? 우리의 인생 또한 목표를 정해도 잘 풀리지 않아 방향을 잃고 절망하기 쉽다. 인생은 어느 광고 카피처럼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어느새 그 언저리에 와 있고 결국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었음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전설 속 영웅들의 삶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내 곁엔 아무도 없어. 너도 나도 쟤도 혼자’라는 아서왕의 우울한 독백에 ‘인간은 누구나 혼자지만 서로를 돕기 위해 있다’는 호수의 여인의 격려처럼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돕기 위해 존재하며 성공을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뮤지컬의 성공을 위해 많은 유명 뮤지컬의 존재를 필요로 했듯.
성배 또한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쳤을 때 비로소 발견된다. 객석에서 발견된 성배는 관객들에게 ‘당신의 성배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각자에겐 저마다 다른 성배가 있겠지만, 그 성배는 거룩하고 신성해 먼 곳으로 모험을 떠나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 공연장에서 기분 좋게 쏟아 낸 웃음 속에서도 성배의 한 조각 정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2011년 1월 2일까지 한전아트센터.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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