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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기획] 공사비 두 배 부풀리기 … 10년 전 단종된 굴착기에 비밀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혁신도시 건설현장. 지난주말 어스름한 새벽부터 15대의 덤프트럭이 줄을 서서 상차(흙과 모래를 차에 싣는 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덤프트럭 운전만 20년째인 이형길(42·가명)씨의 일당은 50여만원 . 점심시간 빼고 10시간을 일하니 시간당 5만원을 버는 셈이다. 언뜻 보면 꽤 짭짤해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이씨의 덤프트럭은 이날 341㎞를 달리며 135L의 기름을 썼다. 이 날짜 경유시세가 1520원이니 기름값만 20만5000원이 들었다. 매달 차 할부금으로 180여 만원, 차량보험료로 월 35만원(연 420만원)이 들어간다. 게다가 1년에 두 번 교체하는 타이어 비용(총 1600만원)과 각종 수리비까지 계산하면 그가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어느 건설사 하청업자의 로비 고백 - 건설비리 조장하는 ‘표준품셈’
20년 경력 덤프트럭 기사 동행취재

충북 진천군 혁신도시 건설현장에서 덤프트럭 운전자 이형길(42·가명)씨가 흙을 싣는 동안 대기하고 있다.
이씨는 “일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눈비가 오면 일을 못 한다”며 “월수입 300만원이 넘을 때도 있지만 수입이 지출보다 적은 달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공사의 발주자인 진천군청이 제시한 표준품셈에는 ‘15t 덤프의 시간당 단가는 6만4170원’이라고 돼 있었다. 이씨가 운전하는 25t 덤프 단가는 품셈표에 나와 있지 않지만, 같은 비율로 환산하면 한 시간에 약 10만2000원꼴이다. 이씨가 실제 받는 금액 과 무려 5만2000원이나 차이가 난다. 이씨는 표준품셈을 근거로 하청업체에 찾아가 항변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대기업 하청을 받는 이 건설업체는 오히려 이씨에게 하소연을 했다 . 이씨는 “하청업체가 내민 계약서를 보니 설계 단가의 채 반도 안 되는 가격에 계약을 했더라”며 “결국 대형 건설사들이 표준품셈에 근거한 일당으로 공사를 수주한 뒤 실제 근로자에게는 절반만 주는 셈 아니냐”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품셈제도=시장단가보다 비싼 표준품셈은 ‘공사비 부풀리기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표준품셈에 따르면 덤프트럭은 4차로 이상의 포장도로를 적재 상태에서 시속 30㎞로 주행하게 돼 있다. 적재량은 15톤 기준 5~8㎥다. 그러나 덤프연대 측은 “평균적으로 덤프는 4차선 도로를 40~60㎞로 달리고 적재량은 10~12㎥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표준품셈은 실제 현장 가격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셈이다. 표준품셈은 새로운 기계나 공법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유연하지 못하다. 표준품셈은 굴착기 단가를 산출할 때 대부분 한 번에 0.7㎥의 흙을 퍼 올리는 ‘0.7㎥ 버켓(대우07굴착기)’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대우07굴착기는 현장에서 없어진 지 10년이 넘었고, 최근에는 대부분 1~2㎥ 버켓을 사용한다”고 했다. 같은 시간에 두 배 이상의 일을 하는 기계가 있는데도 구형을 기준으로 단가를 산출해 공사비가 부풀려지는 셈이다.





◆수주액의 절반만 받는 하청업체들=턴키나 대안입찰 방식의 경우 대형건설사는 정부가 제시한 설계금액의 평균 93% 에 공사를 따낸다. 표준품셈에 근거해 시장가격보다 많이 부풀려진 정부 설계가격을 거의 다 받는다는 얘기다. 반면 하청을 줄 때는 철저히 시장가격에 따른 최저가 방식으로 계산한다. 전체 공사비의 절반 정도만 하청업체 몫인 셈이다.



신영철 건설경제연구소 소장은 “부풀려진 표준품셈에 의해 세금의 상당 부분이 대형 건설업체에 돌아가고 하청업체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건설 현장은 개선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며 “표준품셈을 없애고 과거 비슷한 공사의 계약금액을 바탕으로 한 시장단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강태경 실장은 “표준품셈을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2006년 이후 매년 현실에 맞게 개정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2006년 국토해양부(당시 건설교통부)는 품셈기준을 한차례 대폭 개편했다. 강 실장은 “표준품셈이 국가가 획일적으로 정한 기준으로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각기 다른 여건에 맞춰 적용하고 있어 과거에 지적됐던 문제들은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탐사1·2팀 김시래·진세근·이승녕·강주안·고성표·권근영·남형석 기자, 이재동 인턴기자(고려대 4학년), 이정화 정보검색사



◆표준품셈=정부·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사의 공사비를 산출하는 정부고시가격.






외국에선 어떻게 하나



표준품셈을 처음 사용한 일본에서는 1993년 ‘실적공사비 적산제도’가 전면 도입됐다. 실적공사비 적산제도란 정부의 표준화된 규정에 의해 일일이 가격을 매기는 대신 비슷한 공사 종류의 시장단가를 이용해 공사비를 산출하는 것을 말한다. 80년대 말 ‘거품경기’로 인해 공사 예정가격이 부풀려지고 이에 따른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표준품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단가제’로도 불리는 실적공사비 적산제도를 도입한 뒤 일본의 건설물가는 급속도로 안정됐다. 좋은 예가 철근 공사가격이다. 건설공사비가 시장단가로 매겨지기 전인 90년대 초 일본의 철근 공사가격은 t당 12만 엔 수준이었다. 그러나 토목공사에 시장단가를 도입한 뒤 그 비용은 6만~7만 엔대로 떨어졌고, 이후 4만 엔대까지 값이 내렸다. 품셈을 시장단가로 바꾼 뒤 가격이 3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미국도 국가 표준품셈을 쓰지 않고 철저히 발주자가 시장단가에 의해 계약금액을 산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낙찰업체가 비슷한 공사를 한 경험이 있을 경우에는 당시 계약금액을 적용해 공사비를 산출한다. 새로운 공법이나 기술이 도입됐을 경우에는 민간 원가 계산회사에 용역을 줘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게 한다.



영국은 미국처럼 유사사업 계약단가를 활용함과 동시에 ‘실적공사비 정보’를 통해 계약금액을 매긴다. 실적공사비 정보는 건설잡지 등의 기술자료와 가격정보지, 정부 발행자료, 적산정보시스템 기관을 총 망라해 산출한 정보를 뜻한다. 이를 통해 책정된 예산은 발주기관 전문가와 인증된 적산사의 보정을 거쳐 최종 계약금액으로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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