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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마잉주 대만 총통께

“중화민국(대만) 최고 국경일인 쌍십절(雙十節·10월 10일) 99주년을 맞아 기자를 빈객(賓客)으로 초청해 주신 데 대해 대한민국 언론을 대표해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총통과 대만 정부 관계자들의 배려 덕분에 그제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성대한 기념식과 경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또 대만의 주요 기관과 명소(名所)들을 둘러보는 귀한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분주한 일정 중에도 총통께서는 각국에서 초청된 언론인들을 일일이 친견(親見)하는 후의를 베풀었습니다. 저의 축하 인사에 또렷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답례한 것은 한국민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우정의 표시였다고 생각합니다.



중화민국의 국부(國父)인 쑨원(孫文) 선생이 주창한 민족·민권·민생이란 삼민주의의 기치 아래 반청(反淸)혁명이 일어난 것이 신해년(辛亥年)인 1911년 10월 10일이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앙시앵 레짐이 무너졌듯이 신해혁명으로 청조(淸朝)가 붕괴되면서 중국은 수천 년의 전제 왕정시대를 마감하고,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이 됐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숱한 좌절과 시련을 겪었고, 수많은 중국인의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했습니다. 혁명 100주년을 목전에 둔 지금, 중국은 대만은 물론이고 본토(本土)에서도 역사의 새로운 중흥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제가 느끼고 있는 것은 자유와 번영의 감미로움입니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가 매년 평가하는 ‘언론의 자유’ 순위에서 대만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언론 활동이 자유로운 나라입니다. 한국보다 순위가 높습니다. 제가 만난 한 대만 정부 관리는 “언론의 눈에서 자유로운 대만 공직자는 아무도 없다”며 “언론인이야말로 이 시대의 제왕(帝王)”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10일 쌍십절 기념식에서 “대만은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화라는 ‘이중의 기적’을 이뤘다”고 연설하고 있다. [타이베이 AP=연합뉴스]
타이베이 거리에는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2009년 1인당 명목 GDP(국내총생산)에서 한국과 대만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지만 구매력을 감안한 소득은 대만(3만1776달러)이 한국(2만7938달러)보다 높았습니다. 그만큼 물가가 안정돼 있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의식주(衣食住)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샤오강(小康) 사회를 지나 대만은 지금 확실히 선진국 문턱에 올라와 있습니다.



총통께서는 쌍십절 경축사에서 대만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화를 중국어권에서 전례가 없는 ‘이중(二重)의 기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무한한 자부심을 나타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대만은 그동안 이룬 성취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대만은 반체제 작가였던 고(故) 보양(柏楊) 선생이 『추악한 중국인』에서 통탄했던 시끄럽고, 더럽고, 무질서한 나라가 더 이상 아닙니다. 대부분의 대만인은 교양이 있고, 높은 교육 수준과 친절하고 세련된 매너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약속시간은 잘 지켜졌고, 일 처리에는 소홀함이나 빈틈이 없었습니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기념행사를 지켜보면서 생각한 것은 ‘국가란 무엇인가’란 명제였습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대만도 큰 나라는 아닙니다. 면적은 남한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는 2300만 명입니다. 더구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13억 인구의 중국의 위세(威勢)에 눌려 있습니다. ‘하나의 중국’을 요구하는 중국의 압력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가 대만과 국교를 단절하면서 대만과 수교하고 있는 나라는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23개국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대만은 강한 나라입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평가한 2010년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대만은 세계 8위를 차지했습니다. 싱가포르와 홍콩을 제외하면 아시아에서 한국(23위)이나 일본(27위)보다 높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글로벌 경쟁력 순위에서도 대만은 133개국 중 12위로 최상위권입니다. 특히 IT(정보기술) 산업에서 대만은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스크 롬, 반도체 테스팅, 주문형 반도체 생산, 광학 디스크 등 6개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념식 퍼레이드에서 ‘타이완 넘버원(Taiwan No. 1)’이란 구호가 등장한 것은 아마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가의 규모나 국력의 순위, 수교국의 숫자보다 더 소중한 것은 국민의 삶입니다. 업적을 자랑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발전의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보살피는 자세일 것입니다. 지난달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만 국민의 9.8%만이 중국과의 통일을 바라고 있을 뿐, 절대 다수인 86.2%가 사실상의 현상유지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국력의 크기와 순위를 생각한다면 통일을 원해야 마땅하지만 그보다는 각자의 삶이 더 소중하다는 현실적 사고의 결과라고 봅니다.



여러모로 한국과 대만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습니다.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것도, 분단과 통일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심지어 ‘공정한 사회’와 ‘정의로운 사회’로 표현만 다를 뿐 압축성장의 후유증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대만은 삼성이나 LG·현대 같은 한국의 대기업이 부러울지 모르지만 한국은 대만의 탄탄한 중견·중소기업들이 부럽습니다. 외양보다 내실을 통해 국민이 행복한 나라의 전범(典範)을 보여줄 수 있다면 한국에도 자극이 되겠지요. 대만 국민의 행복과 총통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타이베이에서> 배명복의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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