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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안가

청와대 정문에서 서쪽으로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아담한 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1993년 7월 문을 연 ‘무궁화동산’이다. 산책로·쉼터 등이 조성돼 여느 공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안전가옥을 헐어내고… 어려웠던 민주화의 길을 되돌아보는 역사의 배움터’라는 표지석만이 존재의 의미를 짐작케 해준다. 이곳은 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최후를 맞았던 ‘궁정동 안가(安家·안전가옥)’가 있던 자리다.



안가의 공원화 당시 김영삼 정권은 ‘권위주의 시대 밀실정치의 청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밀어붙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서거한 안가의 연회장 처리가 문제로 떠올랐다. 독재자라는 비판이 있지만 피 흘리며 숨을 거둔 ‘그때 그 사건’의 현장을 사람들이 마구 짓밟고 다니게 할 순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후세에 터만이라도 남겨주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결국 공원과 어울리지 않게 큰 돌무더기를 쌓아 사람 왕래를 막기로 했다. 박 대통령의 흔적은 길이 30m, 높이 3m의 돌담 밑에 겨우 남아 있다.



대통령 안가의 정식 명칭은 ‘청와대 별관’이다. 70년대 이후 청와대 주변 궁정동·청운동·삼청동 등지에 10여 채가 있었다. 최고 권력자의 은밀한 유흥 장소로, 정치자금을 받는 정경유착의 장소로 쓰인 어두운 과거를 품고 있다. 원래 안가는 수사기관이 범죄 피해자나 증인을 보호하기 위해 확보하는 은신처(隱身處)를 지칭한다. 말 그대로 경호와 보안상 안전하다는 뜻이다. 미국은 70년대 마피아와 전쟁을 벌이면서 증인들이 잇따라 보복 살해되자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후 은신처, 즉 안가(safe house)를 대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수사기관의 안가가 따로 있다. 검찰은 살인·강도·가정폭력 등 범죄의 신고자나 피해자가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안전가옥을 제공한다.



타계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97년 망명 이후 안가에서 줄곧 지내왔다. 중무장한 20여 명의 요원이 지키고, CCTV·방탄유리 등 보안장비가 설치된 서울 논현동의 2층 양옥집에서 북한의 암살 위협에 떨며 13년을 지내온 그의 심정은 상상이 간다. 궁정동 안가에 대해 박정희 정권의 공과를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했어야 한다는 논란이 지금도 있다. 외국은 사소한 것도 역사의 일부로 본다. 노(老)망명객의 안가는 남북분단의 냉엄한 현실을 상징한다. 보존을 검토해봄 직하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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